▲경기도 파주에 있는 장준하 선생 공원에서 참배하고 있는 이상철 상임고문.
조호진
경주에서 최 부자 다음으로 큰 부자였던 경주 이 부잣집에서 1935년 출생한 이 상임고문은 20대의 젊은 나이로 부산시체육회 이사 및 태권도-공수도협회장을 지냈고 40대에 벽산그룹 전무이사를 지냈다. 유신 시절, 육해공군 참모총장 출신이 사장으로 낙하하는 '대한종합식품' 전무로 일하다가 박정희 대통령 초상화를 떼어냈다가 해고되면서 불꽃 시민운동가로 출발했다.
이 상임고문이 반체제 인사로 변신한 것은 해직 교수였던 한완상 서울대 교수와 어울리면서였다. 유신 말기였던 1978년 한 교수가 일독을 권유한 리영희-강만길 교수의 저서를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대한종합식품' 전무였던 이 상임고문은 해직된 한완상 교수를 고문으로 영입하고, 한 교수는 임원 대상으로 기업의 윤리와 노동자의 권리 등의 특강을 하는 과정에서 박정희 초상화를 떼어냈고 사찰하던 형사들에게 걸리면서 '대한종합식품'에서 해직됐다.
롯데축산 영업본부장 겸 이사로 재직하던 1979년 박정희 사망 이후, '대한종합식품'이 다시 와달라고 요구했지만 이를 거절하고 48세이던 1983년 자동문을 제작하는 중소기업을 설립, 롯데월드 등에 납품하는 기업체로 성장시키는 등 50대까지는 중소기업체 CEO를 지냈다.
이 상임고문은 1987년 한완상과 이삼열 등 진보 학자들과 초교파 평신도교회인 '새길교회' 창립에 앞장섰다. 이 교회 선교부장이 된 이 상임고문은 교회 헌금으로 해직교사 후원, 문익환 목사와 단병호 의장, 민청련 사형수 김병곤, 여성노동자회 이영순 등을 후원하면서 사회개혁 및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참여연대 창립 멤버가 된 이 상임고문은 운영위원과 시민로비단장을 맡아 부패방지법 제정운동에 나섰다. 그리고, 청강문화산업대 사무처장으로 근무하던 1996년 사학비리를 목격하고 6개월 만에 그만두고 공익제보자가 되어 부패사학을 고발했다가 유치장에 갇히는 고초를 겪었다. 당시 김대중 정권에서 '국민회의' 부총재이자 전국구 1번 국회의원이었던 정희경 청강문화산업대 이사장 측이 이 상임고문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자 법무부(장관 박상천)가 체포영장을 발부하는 등 초유의 공권력을 행사했다.
이런 고초를 겪으면서 비리 사학 개혁 운동에 앞장선 이 상임고문은 사립학교법개정운동본부 정책자문위원이 되어 사학비리로 몸살을 앓던 동덕여대를 비롯해 영남대, 경문대, 서일대 등 분쟁사학 개혁에 앞장섰다.
영원한 시민운동가 이상철 선생 추모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