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축구경기를 보면서 치킨과 맥주를 먹으며 행복을 느낀다.
심정화
어렸을 때도 야들야들한 닭다리는 늘 그림의 떡이었다. 아버지가 월급날 통닭을 한마리 사오시면 엄마는 제일 먼저 닭다리를 뜯어 아버지와 하나뿐인 아들 앞에 놓아주셨다. 퍽퍽한 가슴살을 한 겹 한 겹 벗겨 아껴 먹으면서 한 손에 닭다리를 들고 뜯는 오빠를 보고 있자면 어찌나 부럽던지.
그때의 그 닭다리는 내 마음속에 두가지 다짐을 심어놓았었다. 이 다음에 커서 돈을 많이 벌면 꼭 통닭을 두 마리 사서 나도 닭다리를 먹겠다는 것과 절대로 아들을 낳지 않겠다는 것.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이 제일 먼저 닭다리를 집어 들었다. 바삭한 튀김옷을 입은 닭다리살을 한입 베어 무는데 고소한 맛과 함께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이어서 먹은 쫄깃한 날개살과 부드러운 허벅지살도 정말 맛있었다.
마지막으로 한 조각만 더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배만 남았을 때 남은 닭다리 하나를 마저 먹으려다가 잠시 고민했다. 아이들이 와서 남은 치킨을 먹을 수도 있는데 가슴살만 남아있으면 아쉬워할 것 같았다. 결국 닭다리 대신에 가슴살을 집었다.
손흥민 선수가 골을 넣을 때 환호성을 지르며 함께 좋아하는 식구들이 없는 건 살짝 아쉬웠지만, 혼자서 치킨과 맥주를 먹으며 축구경기를 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다. 오랜만에 갖는 나 혼자만의 시간이 무엇보다 편하고 좋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나혼자 산다'를 꿈꾸나 싶기도 했다.
남은 치킨을 보관용기에 옮겨 담으며 생각했다. 인생 뭐 있나? 여섯 식구가 통닭 한 마리를 나눠 먹으면서 기름 묻은 손가락을 빨며 아쉬워 하던 어린 시절에 비하면, 치킨 한 마리를 혼자서 통째로 차지할 수도 있는 지금, 이만하면 성공한 거 아닌가.
쉰 해가 훌쩍 넘어갈 동안 뭐 하나 이루어 놓은 것 없어 내 자신이 초라하게만 느껴지던 요즘, 혼자 먹은 치킨 한 마리에서 '행복'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는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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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주부인데요, 혼자 먹으려고 치킨 주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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