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정누리
친구들과도 작년 여름 라오스를 갔다. 뉴스에선 항상 북적거리는 공항 인파를 꼬집는데, 빠듯한 지갑으로 해외여행을 간 것이 왠지 찔린다. 공교롭게도 당시 우린 셋 다 학생이라 돈이 넉넉지 않았다. 하지만 정보와 체력은 나름대로 있다. 어떻게든 효율적으로 여행을 다녀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쓴다. 수시로 올라오는 저가항공 동남아 특가딜을 잡고, 현지에서도 툭툭이라는 교통수단을 다른 관광객과 합승해 가격을 깎고, 같은 기념품이라면 어떤 마트가 싼 지도 발로 뛰며 체크한다.
며칠 동안 사서 고생하자, '굳이 이렇게까지 와야 했나?'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하지만 분명 내게 여행은 단순히 먹고 즐기는 것의 의미가 아니었다. 라오스는 내게 하나의 인풋(Input)이었다. 50, 60년대 우리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재래식 주방의 아궁이, 함께 트럭을 탄 신혼부부 인도인 관광객의 에피소드, 한국인들을 보고 수줍은듯 도망가는 라오스의 학생들 등등. 보지 않으면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 바깥에는 잔뜩 있다. 나는 돌아와 이것을 여행기로 써 작은 원고료를 받았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 나는 고물가 시대에도 여행을 포기하지 않는다.
차도 마찬가지다. 주유비, 유지비, 세금까지 생각하면 이 시기에 차를 사는 것은 그야말로 바보다. 그러나 난 절약을 위해 무조건 대중교통만 타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시간과 체력도 아낄 수 있을 때 아껴야 한다. 발이 넓어야 인연이 하나라도 더 닿는다. 기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굴러만 가는 중고차 한 대를 과감히 산다.
과거 촬영 알바를 했던 공장 사장님에게 전화를 건다. 반갑게 받아주신다. 혹시 요즘은 일이 없냐고 묻는다. 차가 있어 예전처럼 다른 직원 분들이 카풀(Capool)해주시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린다. 사장님 목소리가 흔쾌하다. 난 일을 하나 더 구했다. 고물가 시대, 20대인 내게 중요한 것은 절약보다 조금 더 무모한 투자였다.
어릴 적 <빈대가족 천원으로 살아남기>라는 만화책을 읽은 적이 있다. "돈을 절대 쓰지 않는다. 정말, 정말, 정말 필요하면 딱 천 원만 쓴다." 변기 물탱크에 벽돌 넣기, 빗물 받아서 빨래하기, 못 쓰는 옷 잘라 커튼 만들기. 기발하고 다양한 절약 방법들은 어린 내게 큰 감명을 불러일으켰다. 당장 집에 돌아가 다 쓴 페트병을 반으로 잘라 연필 꽂이를 만들었으니. '500원씩 아껴서 어른이 되면 궁전을 지어야지.' 그때를 생각해 보면 오늘의 모습이 참 다르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지금은 지금의 세상에 맞는 절약을 실천 중인 셈이다. 청년 세대들이 미래가 보이지 않아, 저축 대신 과소비를 한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면, 저축보다 더 확실한 투자로 전략을 바꾼 것은 아닐까. 때로는 쓰는 것이 아끼는 것보다 돈이 남는다. 어른들이 들으면 황당할 말이다. 허나 오늘의 행복 없이는 미래도 즐겁지 못하다는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안다. 우리는 지금도 조용히 나름의 방법대로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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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 시대, 그래도 할 거 다 하고 사는 비결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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