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정문 외부 연결통로
이현우
시내버스를 승차하기 위한 통로는 더욱 난관이다. 계단을 한참 내려와 횡단보도를 건너 정류장으로 향한다. 이는 청량리역, 용산역도 마찬가지다. 다른 교통수단으로 환승하기 위해 이렇게 많이 이동할 수밖에 없나. 다른 설계 방식은 없었을까.
임산부, 휠체어 이용자 등 교통약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런 이동 통로는 미로이자 험지다. 에스컬레이터도 운영되지 않을 때가 많은데 이럴 때 계단을 오르기 힘들 노약자, 임산부에게는 고행길이다.
휠체어나 유아차 이용자는 서울역 콘코스와 외부 1층 간 경사가 심하다 보니 직선거리로는 경사로 각도가 충족되지 않아서 빙글빙글 돌아가야 한다. 경사로 안내표지판이 있지만, 눈에 잘 띄지 않고 조형물마저 설치되어 있어 시선을 더 분산시킨다.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 발간한 철도역사 설계(2019)에 따르면 곳곳에서 교통약자를 배려한 설계 방침을 볼 수 있다. 출입홀을 예시로 들면, 장애인들이 쉽게 출입할 수 있도록 단차를 없애야 하며 회전문 등은 설치하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한다. 철도역사 내부는 교통약자를 배려했지만, 외부와의 연결에 있어서 교통약자가 배려되지 않았다는 점이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민자역사 문제, 과도한 상업시설... 무엇이 우선인가
두 번째는 주변 공공시설과의 연계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구 서울역 역사는 문화역서울284라는 이름으로 원형을 그대로 복원한 복합문화공간으로 탄생했다. 전시, 공연 등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의 무대가 되고 있다. 신 역사에서 구 역사로 가려면 상업시설을 통해 가거나 외부 광장으로 나와 이동해야만 한다. 접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서울로7017(이하 7017)은 고가도로를 재생한 공원이다. 7017에서 바라보는 서울역 주변 야경도 볼만하다. 차량의 방해 없이 서울역에서 회현역까지 이동할 수 있는 산책로다. 7017도 접근성이 떨어진다. 신역사가 준공된 이후에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신역사를 설계할 당시 고가도로로 이용되던 7017이 신역사로부터 떨어져 있는 건 합리적인 설계안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보자면 현재 7017은 신역사에서 접근성이 떨어진다.
상업시설 규모도 문제다. 남진 외(서울시정연구원, 2002)는 민자역사의 문제 중 하나로 '사업성 위주의 과도한 상업시설 개발'을 꼽는다.
서울역 대합실은 늘 사람이 붐벼 앉을 자리는 찾기 힘든 반면 상업시설이 압도적으로 많다. 현재 서울역, 용산역, 청량리역, 수원역 등의 철도역은 역무시설보다 상업시설이 훨씬 넓다.
더구나 민간은 영리를 추구하니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공공성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코레일 또한 공공성보다는 사업성에 비중을 두고 있다는 게 문제다. 서울시정연구원 보고서(본문 176쪽 등)에 따르면, 코레일은 민간으로부터 이익배당금을 받는데, 이게 상업시설의 사업성에 따라 배당되기 때문이다.
도시설계 관점에서 서울역의 문제는 '공공성 결여'라는 다섯 글자로 압축할 수 있겠다. 대중교통 접근성이 취약하고, 대합실 규모는 부족하며, 주변 공공시설과 연계성도 떨어진다.
한국 도시설계의 수준이 낮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는 것일까. 합리적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고 싶다. 건축 기술적 한계라면 납득할 수 있겠지만 경제적인 이유라면 납득할 수 없다.
조심스럽게 예상해 보자면, 이는 민자역사 개발의 문제점이지 않을까. 서울역은 민자역사다. 민자역사는 민간 자본이 투입되어 건설된 역사(驛舍)다. 민간 자본이 투입되는 대신 민간은 역의 일부 공간 권리를 지닌다. 70년대 이후 역 이용객의 수요는 급격히 증가하지만, 기차역은 수요를 감당하지 못했다. 철도청은 만성적 재정난에 시달렸고 결국 고안해 낸 것이 '민자역사'다.
민자역사는 대규모 상업시설을 동반한다. 경제적 타당성을 확보하여 지속적인 운영을 가능토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역을 보자. 신역사는 남쪽 편에 조성되었다. 구역사 뒤편으로는 마트가 있고 구역사와 신역사 사이에는 쇼핑몰이 자리 잡고 있다. 용산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출입구와 대합실 사이에 민간상업시설이 위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