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생존자 김초롱씨가 지난해 1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2차 공청회에서 진술 도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남소연
"존경하는 재판장님, 10.29 이태원 참사 당사자이자 목격자이자, 생존자 김초롱입니다.
참사는 다양한 형태로 인간의 삶을 짓밟습니다. 한 겨울에도 온 몸에서 땀이 나 애꿎은 보일러만 자꾸 끄기를 반복하고, 침대에서 잘 수가 없어 참사 이후 몇 개월은 침대를 거부한채 앉아서 쪽잠으로만 자기도 했습니다. 그마저도 잠깐 잠이 들었다 싶으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다시 깨어나는 형태입니다. 먹은 것이 없지만 구토를 수없이 하기도 했고, 어쩐 일인지 씻는 것에도 관심이 없어져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마저 스스로 버리기도 했습니다. 어느날은 갑자기 집에 가는 길을 잃어버리고 여기가 어딘지 도통 모르겠어서 두렵고 어지러운 마음에 서른이 넘은 나이에 길바닥에서 그만 어린아이처럼 오줌을 싸버리게 되기도 했습니다.
정신과 상담과 전문 심리상담사와의 대화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저는 매번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경험을 했습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세상은 자꾸만 저를 치료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참사 생존자에게 진정한 치유는 진상규명 뿐입니다. 사회 모두가 이 사안을 두고 사안 자체를 인정하고, 처벌을 하고 합의에 이르러야만 진정한 치료는 그때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때, 그곳에 놀러가지 말았어야 했어요. 가지 말걸 너무 후회돼요"라고 말하던 저에게, "아니에요, 놀러가서 죽은게 아니라 일상을 살다가 참사를 당한 겁니다. 우리 모두는 어디를 가도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국가가 지켜주는게 맞는거에요" 라는 말을 심리상담사가 아닌, 국가로부터 듣고 싶습니다.
이태원 참사의 유일한 원인은, 군중밀집관리의 실패입니다. 이것외에는 그 어떤 것도 참사의 원인이 되지 않습니다. 2017년 핼러윈 당일 참사현장과 동일한 장소에서 찍은 저의 사진은 사진 자체가 증거였습니다. 20만명이 모였던 2017년 참사현장은 사람간의 거리가 충분했고,담소를 나눌 정도로 거리가 확보되어있었으며 결정적으로 2022년 10만명이 모였던 때보다 인원이 두배가 많은 날의 현장이었습니다. 군중밀집관리의 실패가 확실합니다. 저는 이 사진 한장으로, 그래 나는 정말 잘못한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펑펑 울었습니다.
참사 1주기, 이태원 현장으로 향하려던 저를 다시 한번 붙잡은 것은 이태원 곳곳에 거대한 무기처럼 서있는 바리게이드들이었습니다. 마치 가서는 안될 곳을 막는 것 같은 무언의 압박을 받았고, 바리게이드는 지난 8년간 매년 핼러윈 축제를 즐기던 저에게 이태원 현장에서 처음 보는 물건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폭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태원 지역과 핼러윈 문화는 잘못이 없다는 생각에 올해도 이태원을 나는 꼭 갈것이라고 생각했던 저는 바리케이드를 보고 정신적 충격에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직도 경찰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안전하게 시민의 귀가를 돕는 다는 것은 지금껏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바리케이드를 쳐서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바리케이드가 없어서 참사가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무엇이 중요한지 경찰은 깨닫지 못하고 이렇게 달라졌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에만 몰두합니다. 바리게이드가 없었던 지난 8여년간의 이태원의 핼러윈은 모두가 안전하게 돌아갔습니다. 군중밀집을 관리하지 않은, 기동대 출동을 명령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제대로 처벌해주셔야 합니다. 경찰이 바뀌려면, 무엇이 잘못인가를 명확히 짚어주는 사회가 존재해야합니다. 아무도 처벌받지 못하면 우리는 잘못을 해도 괜찮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학습시키고, 잘못된 것을 후대에게 물려주는 악행이 거듭될 것입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를 겪은 우리, 세월호 참사를 겪은 우리, 이태원 참사를 겪은 우리. 이 모든 것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그대로 둔 것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더이상 미래세대에 잘못된 것을 물려줄 수 없습니다. 그 시작이 바로 오늘, 이 재판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은 어른이 있다고 알려주세요. 더 나은 어른들이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을 부디,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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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상담사 아닌 국가가 치유해달라"... 법정 울린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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