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는 모래놀이. 나 또한 모래놀이에 흠뻑 빠졌다.
김대홍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이 거의 공통으로 좋아하는 놀이가 모래놀이다. 모래로 모양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건설장난감을 움직여 노는 걸 싫어하는 아이를 못봤다.
요즘은 모래가 있는 놀이터가 드물다. 동네 도서관 앞 놀이터는 모래가 깔려 있어 참 자주 갔다. 우리 아파트 후문 맞은 편 아파트 내에도 모래 놀이터가 있어 몇 번 갔다. 아이가 모래놀이를 하면 1시간 이상 놀았다. 나도 같이 건설장비를 갖고 같이 놀았지만, 흥미롭진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놀이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게 '삽질'이었다. 아들이 모래놀이를 할 때 아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 삽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계속 파기 시작하자 제법 커졌다. 깊이 파다가 길을 만들었다. 땅을 파니 자연스레 산이 생겼다. 구덩이가 생기고, 산이 생기고, 길이 생기니 아들은 더 즐기며 놀았다.
사람은 성과가 생기면 욕심이 생긴다. 나도 그렇다. 삽질 몇 번에 아들이 즐거워하니 '슬슬' 욕심이 생겼다. '더 깊게, 더 넓게, 더 높이 파면 더 즐거워하겠지?' 그렇게 나의 삽질이 시작됐다.
처음은 동네 놀이터였다. 작은 무대였다. 우연찮게 큰 무대를 발견했다. 차를 타고 동네 여기저기를 다니다가 강 옆 백사장을 발견했다. 백사장은 너비가 최소한 200m는 됐다. 백사장 바로 앞은 소나무 숲이었다. 소나무 숲과 백사장 사이엔 아주 좁은 물길이 흘렀다. 폭이 50cm 정도에 불과해 아이들이 물놀이하기 딱 좋았다. 삽질을 해서 부지런히 물길을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 물길이 사라졌다. 물길은 모래로 덮였다. 물을 보려면 200m 이상 걸어가야 했다. 과거 물길이 있었던 걸 나는 기억했다. 땅을 파기 시작했다. 물이 나올 때까지. 정말 오랜만에 하는 진실한 삽질이었다. 허리가 아프고, 목이 아팠다. 그래도 파고 또 팠다. 마침내 물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야호.'
아들, 잠깐만 아빠 모래 좀 파고
더 땅을 파니 연못이 생겼다. 파낸 흙으론 산을 만들었다. 다시 욕심이 생겼다. 더 큰 연못, 더 큰 산을 만들고 싶었다. 연못은 아들 무릎까지, 산은 아들 허리까지가 목표였다. 쉽지는 않았다. 1시간으론 어림도 없었다. '아빠, 아빠' 부르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실은 들렸지만 모르는 체했다. 왜? 더 큰 연못을 만들고 더 큰 산을 만들어야 하니까.
매번 가면 대략 3시간씩 삽질을 했다. 그러고 나면 연못이 하나, 산이 하나 생겼다. 성취감이 들었다. 결과물이 나오면 참 뿌듯해진다. 아무리 놀아도 남는 건 즐거움뿐이지만 삽질을 하니 번듯한 구조물이 생겼다. 땀 뻘뻘 흘리며 만들어서 더 보람이 들었다. 주말마다 찾았고, 어떤 날은 토요일, 일요일 연이어서 찾았다.
시간이 맞으면 아들 친구네 지인과도 함께 강변 모래밭을 찾았다. 모래놀이 장난감 세트와 삽 두 개를 들고서. 주차하면 바로 장비 챙겨서 출동이었다. 내가 삽질을 하니 아들 친구네 아빠도 같이 삽질해야 했다. 나 때문에 그 아빠도 참 고생 많이 했다. 미안한 마음이다. 그렇게 삽질을 한 아빠들이 여럿이다.
작은 산이 큰 산이 되고, 큰 산은 더 큰 산이 됐다. 이젠 멀리서도 보일 정도가 됐다. 구덩이도 점점 깊어지고 넓어졌다. 모래 테마파크를 만든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가 올 때 빼고는 강변 모래사장을 찾았다. 꽤 많은 구덩이와 산이 만들어졌다. 어느 순간 장마가 찾아왔다. 장마가 끝나자 찾아갔다. 모래 테마파크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허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