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9일 저녁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9주년 기념 특별 강연회에서 '국민의 정부'의 업적과 역사적 성격에 대해 특강하고 있다.
남소연
광주민주화운동에 이어 6월항쟁으로 민주화운동의 활성화, 그리고 동구 공산권의 변화가 정부의 북방정책으로 연계되면서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운동을 연구할 수 있는 길이 트였다. 이제까지 우리 독립운동사 연구는 반쪽에 치우쳐 연구된 측면이 있었다.
1980년대 후반기 이후부터 금기되었던 일제강점기의 사회주의 운동사를 연구하는 젊은 연구자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고 학문적 성과도 높아져 갔다. 이에 힘입어 같은 뜻을 가졌던 성균관대 성대경 교수와 합심해서 온전히 두 사람의 사비로서 일제 시기 사회주의운동 인명사전의 원고를 작성했고, 창비사가 출판을 맡아 줌으로써 1996년에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사회주의 운동 인명사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주석 1)
선각자들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공간에서 우리말 사전을 펴내었다. 강만길은 그런 심경으로 식민지 시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의 행적을 알리는 사전을 성대경과 함께 준비했다. 예나 지금이나 사전 편찬은 개인이 해내기 어려운 작업이다. 많은 인력과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땅히 국가기관이나 대학에서 해야 할 과제였다.
1980년대 젊은 연구자들이 팔을 부치고 사회주의 독립운동사 연구에 나섰으나 기초적인 자료가 턱없이 부족했다. 분단과 전쟁, 독재정권의 극우 이데올로기의 여파로 이 분야의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까닭이다. 똑같이 독립운동을 하고도 이름도 없이 사라져 버린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은 수없이 많았다. '존재하지만 실존이 없는' 상태나 다름없었다.
강만길과 성대경은 1992년 신년 하례식에서 뜻을 모으고 사전 편찬이라는 고된 여정에 나섰다. 편집위원으로 염인호, 임경석, 임대식, 지수걸 교수를 위촉했다. 강만길과 성대경의 편찬 의도를 직접 들어 보자.
해방 후 남한 역사학계의 경우 일제시대의 좌익전선 운동을 민족해방운동의 일환으로 보기보다 공산주의 운동으로만 보는 데 한정되었다. 1970년대에 와서 일부 대학의 연구소에 한해서 반공주의적 관점에서의 공산주의 운동사가 연구·정리되었을 뿐이었고, 개인 연구자로서는 1980년대 이전까지는 본격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연구할 엄두조차 내기 어려웠다. 해외 동포 연구자들의 연구가 약간 있었으나 반공주의적 시각을 완전히 벗어나기는 역시 어려웠던 것 같다.
한편 북쪽 학계의 경우도 사회주의 운동사 중 해방 후 정권을 담당한 계열이 아니면 모두 종파주의로 간주하여 그 역사성이 인정되지 않게 되어 갔다. 이같이 일제시대 민족해방운동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사회주의 운동의 대부분이 해방 후 민족분단체제 아래서의 반공주의와 유일사상 체제에 의해 역사상의 제 위치를 찾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노정(路程)은 느릴지언정 그 방향만은 언제나 옳게 잡히게 마련이다. 남한의 경우 1980년대 후반기에 와서 군사독재정권의 기세가 꺾이면서 학문자유의 공간이 조금은 넓어지기 시작했고, 그 틈을 타서 주로 30대 젊은 연구자들에 의한 일제시대 사회주의 운동사 연구가 '폭발적'으로 추진되어 민족해방운동의 한쪽 공백을 메워 갔다. 젊은 연구자들의 정력적인 연구는 찬사를 보낼 만했다. (주석 2)
지난한 작업이었다. 다행인 것은 1980년대 이후 젊은 연구자들이 상당수 배출되면서 50명 정도의 필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중에는 중국 옌볜대학의 박창욱 교수도 포함되었다. 때맞춰 중국과 소련의 비공개 자료들도 속속 입수되었다. 준비한 지 4년 만인 1996년 여름에 빛을 보게 된 사전에는 약 2천 명이 수록되었다.
이 사전에는 약 2,000명이 수록되었다. 이들이 모두 사회주의자라고 장담할 수는 없고, 다만 사회주의 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는 있다. 그래서 책 이름도 '사회주의자 인명사전'이 아니고 '사회주의운동 인명사전'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종일관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했던 사람만을 수록한 것은 아니다. 중간에 그만둔 사람도, 심지어는 변절하여 친일파로 전락한 사람도 일단 사회주의 운동에 참가한 이상 수록했고 그 사실도 밝혔다.
책 이름을 '한국사회주의운동 인명사전'이라 했지만 사실은 일제시대의 사회주의 운동 인명사전이다. 그 활동이 해방 후에까지 걸친 사람도 일제시대 활동을 중심으로 다루었고, 해방 후부터 사회주의 운동에 참가한 사람은 일단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앞으로 자료가 더 발굴되고 연구가 진행되는 대로 수록범위도 넓히고 잘못된 점도 수정해 나가려 한다. 기탄 없는 질정이 있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주석 3)
독립운동사 연구에 크게 기여하게 된 이 사전이 일반에게는 낯설지만, 연구가들에게는 필수 자료가 되었다. 강만길은 소회를 간략하게 적었다.
"<한국사회주의운동 인명사전>이 간행되자 이 사전에 등재된 사람들의 후손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해방 후에는 죄인으로 다루어져 왔던 조상들이 사상적·역사적 '감옥'에서 해방되어 민족해방운동 주역으로 등장하게 된 데 대한 안도와 기쁨을 말하는 것이었다."(주석 4)
주석
1> <역사가의 시간>, 299쪽.
2> 강만길·성대성, <책을 펴내면서>, <한국 사회주의운동 인명사전>, 창작과비평사, 1996.
3> 위와 같음.
4> <역사가의 시간>, 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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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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