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아빠에게 보낸 편지찌질한 아빠에게 딸이 편지를 썼다. 아빠인 내가 많이 부끄럽다
조명호
딸이 못난 아빠에게 쓴 사과 편지
스스로 찌질하고 못났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속이 상한 것은 숨길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 내 방에 들어와 혼자 누워 있었다. 평소와 다르게 절집과 같은 고요한 집안 분위기가 1시간 넘게 이어졌다. 잠시 후 내 방문이 조용히 열리더니 큰애가 들어왔다.
"아빠! 죄송해요. 내가 사과 편지 썼어요. 읽어봐 주세요. 미안해, 아빠!"
딸이 나가고 편지를 읽었다.
"...아빠가 마음에 쌓여서 오늘은 진짜 화나셨을 거예요. 그리고 아빠, 저는 우리가족이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요. 그래서 전 우리가족이 부끄럽지 않답니다. 그리고 오늘 식당에서 제가 그 말을 했을때 아빠가 화나서 식당을 나갔는 것도 전 이해해요. 그리고 저는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부끄러웠다. 낯이 화끈거렸다. 그래도 금방 이렇게 화를 풀어서는 안 된다. 몇 번이나 큰 애의 편지를 읽고 있는데 다시 큰 애가 들어왔다.
"아빠! 쉬는데 죄송해요. 제 편지 다 읽어봤어요?"
"그래, 네 마음 알았으니까 나가봐!"
난 일부러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런데요. 아빠가 이제 그만 화 풀고 다시 나랑 재미있게 놀았으면 좋겠어요. 다시 한번 죄송해요."
아이는 문을 닫고 조용히 나갔다. 그때 난 내가 패배했음을 직감했다. 찌질하고 찌질했으며, 못나고 참 못났음을 깨달았다. 스스로를 자책하며 있는데 아내의 카톡이 왔다.
"당신이 공연이나 사람들 많은 곳에 가면 자꾸 손들고 질문하고 환호하고 나서서 행동하고 그러는 것이 유나가 좀 부끄러웠나봐. 그래서 공연에 함께 가기 싫었나봐. 그 나이에는 그럴 수 있잖아. 그러니까 당신이 이해해. 유나가 아빠를 얼마나 자랑스러워 한다고.."
며칠을 그렇게 난 아이들을 가급적 피해 다녔다. 퇴근을 하면 평소와 같이 반갑게 인사를 해도 데면데면하게 대하며 내 방으로 직행했다. 함께 밥을 먹을 때도 나를 제외한 세 사람이 즐겁게 대화를 나누어도 난 일부러 근엄한 척 진지모드를 가동했다. 철없는 못난 아빠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렇게 찌질하게 행동했다.
내가 많이 부끄럽다
오늘 집에서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가는데 저 멀리 학교를 마친 큰애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친구들과 함께였다. 마침 사무실에 필요한 짐들을 들고 가는 중이라 그 짐들로 내 얼굴로 가렸다. 친구들과 함께 있는 큰애가 아빠인 날 부끄러워할까 봐… 그 짐들로 얼굴을 숨기고 원래 가던 길에서 벗어나 다른 길로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귀에 이어폰도 끼고 있어서 모른 척하기 좋았다.
무언가에 쫓기듯 급하게 우왕좌왕하면서 가고 있는데 아빠, 아빠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냐, 이건 환청이야. 우리 딸이 이 부끄러운 아빠를 친구들이 있는 바깥에서 저렇게 반갑게 부를 일이 없어. 빨리 가자. 큰애에게 들키지 전에 빨리 도망가자.
"아빠! 어디를 그렇게 급하게 가?"
큰애는 뛰어와서 날 붙잡았다. 친구들도 반갑게 나에게 인사를 했다. 난 어색하게 웃음 지었다.
"아빠! 오늘 아빠가 예매한 공연 있는 거 알지? 일찍 들어와서 같이 가는 거다!"
"어… 그래. 그래야지…"
졌다. 내가 졌다.
50살의 찌질하고 못난 아빠가 11살의 초딩딸에게 졌다. 40년 전 아버지를 '많이'부끄러워하던 내가 40년 후 아빠를 '조금' 부끄러워하던 딸에게 졌다. 나도 그 나이 때 아버지를 부끄러워했으면서 지금 아버지가 되어 자식이 아빠 조금 부끄러워한다고 삐치고 뛰쳐나가고… 내가 많이 부끄럽다.
40년 전, 비 오는 날 교실에서 우산을 건네주며 10미터 앞에서 아무 말 없이 걸어가시던 아버지, 그날 이후 바깥에서 마주쳐도 날 모른 척해 주시던 그 아버지…
오늘 아버지에게도 부끄럽고 미안하고, 내 딸에게도 부끄럽다.
내가 많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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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사는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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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부끄러움은 오롯이 내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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