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자가 일했던 건물의 화장실
강은솔
"친구의 조카 소개로 산재 신청하게 되었어요"
20년 정도 일하니 몸도 여기저기 말썽이었다.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고 하셨다. 손가락이 제대로 펴지지 않았고 어깨와 무릎에 참기 힘든 통증이 느껴지고 허리를 굽힐 때마다 지끈거렸다고 한다. 재해자의 건강보험 요양급여 내역에는 2~3일에 한 번꼴로 정형외과에 간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고된 노동에 지친 몸을 물리치료로 달래가며 일을 이어나갔던 것이다. 본인의 아픔이 산업재해일 줄은 몰랐다고 했다.
청소를 하다 넘어져 다쳤을 때도 "산재 신청은 곧 해고"라는 생각에 꿈도 못 꾸었는데, 사고가 아닌 질병이 산재임을 인지하고 신청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일상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하청노동자가 산재신청을 한다는 것은 더 이상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동일하게 여겨지는 듯하다. 재해자의 산재 신청도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더 이상 쓸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 일을 완전히 그만둔 후에야 이루어졌다. 그조차 정말 손에 꼽히게 운이 좋았던 경우였다.
경로당에서 만난 어르신의 조카가 노무사라 이선화님이 받은 수많은 수술이 산재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재해자는 우연히 들은 이 정보를 그냥 흘려듣지 않고 딸에게 찾아보라고 했다. 그렇게 우연히 노무법인을 찾았고 나를 만났다. 허리 수술을 받은 것은 시간이 너무 오래 흘러 신청하기 힘들었지만, 운이 좋게도 어깨와 양쪽 무릎은 2년 전에 수술해 산재 신청이 가능했다. 그렇게 우연과 운이 겹쳐 이선화님은 퇴사한 지 2년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산재를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선생님은 깨끗한 곳에서 일하셨네요"
재해자와 함께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질판위)에 진술을 하러 갔다. 워낙 명석하시고 말씀을 잘하셔서 별걱정 없이 회의실로 들어갔다. 질판위 위원이 재해자에게 "그래도 선생님은 깨끗한 곳에서 일하셨네요"라고 한마디 하셨다. 이전까지 덤덤하게 말씀을 잘하시던 재해자는 그 말을 듣고 "깨끗한 곳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도 힘들어요"라고 하며 눈물을 흘리셨다. 질판위가 끝난 후 그녀는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그렇게 울컥하더라고. 깨끗한 곳을 유지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잘 모르는 거 같아서"라고 말씀하셨다.
질판위 위원이 나쁜 의도로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고 위로 차원에서 한 말로 느껴졌기에 그 당시에는 그 말이 왜 그렇게 서럽고 슬픈지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그녀랑 나눴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 보니, 그 감정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껴지는 듯했다. 수십 년 동안 청소일을 하면서 참아왔던 억울함, 불안함, 서러움 등의 감정과 신체적 고통에 대한 말을 꺼내놓았을 때 돌아오는 대답이 "그래도 선생님은 깨끗한 곳에서 일하셨네요"라면 그것이 어떤 맥락이었든 그 누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산재가 승인된 후 재해자와 만나 밥을 한 끼했다. 그녀는 자신이 너무나 운이 좋았음에 감사한다고 했다. 그녀는 내게 한전에서 같이 일한 동료를 소개해주었다. 그 동료는 또 운이 좋게도 이선화님과 친분을 유지해 산재에 대해 우연히 알게 되었다. 재해자와 동일하게 허리, 어깨, 무릎이 아팠다. 마음 한편이 답답해지는 느낌이었다. 운이 닿지 않아, 오랜시간 고된 노동으로 인해 망가져버린 몸을 그저 자기 탓으로, 자신이 온전히 감당해야 할 몫으로 여기며 살아갈 80만여 명의 청소노동자들의 삶은 어떠할지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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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깨끗한 곳에서 일했다"는 말에 눈물 쏟은 청소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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