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민 조합원
조희민
<일하다 아픈 여자들>이란 책 제목을 보니, 제가 그동안 겪은 사고의 기억들이 떠올랐어요. 저는 30대 중반에 배달 라이더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배달'의 개념조차 알지 못했어요. 사실 이전 직장에서 임금체불을 당했는데, 고용노동부를 통해 1년 넘게 싸울 수 있었던 것도 배달 라이더를 하면서 버틴 덕분이었어요.
내가 일하고 못 받은 임금을 받는 건데 노동부 일정에 맞춰 출석하고 조사를 받고 유관기관들을 쫓아다니며 자료를 준비하다 보니 평일에 근무하는 직장에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새 직장을 구하지 못해 생계가 어려워지자, 친구가 배달 대행 일을 알려주었습니다.
당시엔 쿠팡이나 배달의민족 같은 대형 플랫폼이 없어서 동네에서 운영하는 대행업체에 등록했습니다. 80cc 작은 스쿠터를 운 좋게 구했지만, 처음엔 콜을 잡는 방법도 몰랐고, 결제 방식도 어려웠던 데다, 매장 위치도 잘 못 찾았어요. 그래도 서너 달이 지나니 제법 배달 라이더 태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만 더' '한 콜만 더 받자'
일에 적응할 때쯤 비수기가 찾아왔어요. 하염없이 콜 창을 들여다보며 어쩌다 콜이 뜨면 먼저 잡으려고 손가락이 닳도록 눌렀습니다. 콜 수가 줄어드는 만큼 노동시간이 늘었습니다. 하루 8시간에서 12시간 이상을 도로 위에서 보내던 어느 날 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의 도로는 한적했어요. 어둑한 도로에서 집에 갈까 싶다가도 '한 번만 더' '한 콜만 더 받자'하면서 콜 창을 켜 둔 채로 운행했어요.
콜 창을 잠깐 들여다본 순간 제 80cc 스쿠터가 적신호에 대기 중이던 승용차의 후미를 들이박았고 저는 스쿠터와 함께 옆으로 넘어지면서 기절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한쪽 다리가 스쿠터에 깔려 고통스러웠어요. 앞 차에서 내린 분들이 119에 신고를 해주어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이송 중에도 의식을 잃었는데 타박상과 가벼운 뇌진탕 진단을 받았습니다.
더 큰 문제는 사고처리 비용이었어요. 그때는 유상운송보험이나 산업재해 제도도 몰랐고 배달 라이더 등록을 할때 업체에서 요구한 대로 산재 적용 제외 신청서에 서명도 했었죠. 저는 골절이 아니라서 라이더 보험에도 적용받지 못한다고 했어요. 정말 황망하고 답답했습니다. 병원에서 치료받으면서도 잠시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교통사고로 인한 입원이었기에 건강보험 적용도 되지 않아서, 일주일 만에 병원비는 300만 원이 넘어갔습니다. 제 과실이 100%인 상황에서 하필 상대 차량은 수입차였고 대인 합의금으로 200만 원, 차량 수리비로 100만 원 이상이 나왔습니다. 제 스쿠터 수리 견적도 50만 원이 넘었지만, 도무지 제 스쿠터까지 수리할 방법이 없었어요.
속수무책으로 좌절하며 무력하게 시간을 보내던 중 우연히 '라이더유니온'을 알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라이더를 지원하는 재단이나 사회단체인 줄 알았지, 노동조합이라곤 생각지도 못했어요. 라이더유니온에서 다방면으로 알아봐 주시고 애써주셨어요. 덕분에 '우아한 라이더 살핌기금'을 통해 병원비와 오토바이 수리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고, 사단법인 희망씨를 통해서 생활비 지원을 받았습니다.
아프고 다쳐도 불이익을 참고 받아들이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