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스피네타 일 로제 디 카사노바라벨에 인쇄된 코뿔소가 인상적인데 알브레히트 뒤러의 판화라고 한다.
임승수
적포도 품종인 산지오베제, 그리고 산지오베제의 클론인 프루뇰로 젠틸레 품종을 반씩 섞어서 양조했다고 한다. 로제 와인의 그 은은하다면 은은하고 어정쩡하다면 어정쩡한 양파 껍질 색깔은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침용(Maceration)이라는 와인 제조 공정을 통해서다. 적포도의 껍질, 씨앗, 줄기 등을 포도즙과 접촉하게 해 색소, 타닌, 향기 성분 등을 추출하는 과정이다. 침용을 길게 가져가면 레드 와인, 하지 않으면 화이트 와인, 어정쩡하게 하면 로제 와인이 된다.
로제 와인은 레드나 화이트와 비교해 생산량 및 소비량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비율로 따지면 대략 5~10% 정도다. 레드처럼 진득하지도 않고 화이트처럼 마냥 경쾌하지도 않은, 그 경계인과도 같은 어정쩡함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녀석을 꼭 데려가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있다.
잔에 담긴 로제 와인의 은은하고 투명한 붉은 빛깔은 산들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연분홍 철쭉만큼이나 봄을 떠오르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그러니 4월의 모임에는 안성맞춤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최 과장이 카톡으로 알려준 메뉴에는 봄나물 파스타가 등장하는데, 분명 오일 베이스의 파스타일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4월 14일에 영접했던 로제 와인과 오일 파스타의 그 미칠듯한 저세상 궁합은 4년 가까이 흐른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뇌리에 생생하다.
그래! 이 녀석을 가져가면 친애하는 전우들이 분명 만족할 거야. 하지만 아무래도 성인 다섯 명에 와인 한 병은 턱없이 부족하니 다른 두 병을 더해서 총 세 병을 가져갔다.
드디어 4월 22일 오전. 와인 세 병을 들고서는 아내와 파주 출판사 사옥에 도착했다. 우리 부부를 포함해 다섯 전우가 둘러앉은 탁자에는 전날 카톡으로 전달받은 예의 그 음식들이 즐비하다. 준비한 로제 와인을 개봉해 각자의 잔에 따라주고서는 기름기 좔좔 흐르는 파스타로 냉큼 젓가락을 가져갔다. 입에 넣고 꼭꼭 씹으며 음미하는데, 너무나도 익숙한 맛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