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운남성 상형문자 함께 가다, together
양윤미
- 이 문자는 '함께 가다'라는 뜻이에요. 색연필은 없지만 볼펜으로라도 예쁘게 색칠해줄게요.(웃음)
함께 울고 웃는 삶이 담긴 시집, <니들의 시간>에 '함께'라는 의미의 상형문자를 그려주던 김해자 시인의 미소는 상상했던 대로 포근하고 따스했다. 북토크 내내, 그분의 고운 눈빛이 내 쪽을 향할 때마다 마치 "시인내림"을 받는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연해주 사는 우데게족은 / 사람 동물 귀신 구분하지 않고 모두 '니'라 부른다는군요 / 과거와 현재 미래 안에 깃든 모든 영혼을 니로 섬긴대요
("니들의 시간"중에서)
쉰이 넘어서야 그나마 시인답게 사는 것 같다고 고백하는 김해자 시인. 그녀가 이번 시집에 담아낸 시의 정신은 너와 나를 구분 짓지 않는 우데게족의 '니'라는 이름에 있다. 너와 나 사이에 억압적인 선을 긋는 "니"에 맞서서, 너와 나를 같은 영혼의 이름으로, '니'로 부르자는 인류애적 정신이 이 시집을 관통하고 있다. 그녀는 이웃의 부재로 인해 많은 사회적 문제가 양산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가 노트와 펜을 들고 다니며 이웃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받아 적는 이유는, 잃어버린 문법이자 옹알이와도 같은 '니'의 정신을 적확한 언어로 표현하고자 함일 것이다.
또한, 수철리 산 174-1번지, 다녀오겠습니다, 비명 곁에서 비명도 없이, 시간여행 연작 등의 작품에서는 그녀가 짚어낸 적확한 언어들로 지난했던 한국의 역사를 실감 나게 육독(肉讀)할 수 있다. 그녀의 시를 따라, 그녀가 조명한 장소에 다다른 독자들은 김해자 시인이 놓아둔 "바위 뛰기 펭귄"이란 쪽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차고 넘치는 결여여, / 우리는 한밤중에도 들을 것이다 / 번갈아 언 발 떼며 알 데우는 소리 / 지난한 희망이여, / 우리는 한낮에도 얼음장 밟는 소리에 / 귀 기울일 것이다
("바위 뛰기 펭귄"중에서)
시를 쓰다 보면 머리에 찌릿, 하는 통증이 와서 오래 글을 쓰기가 어려워졌다는 김해자 시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한다고 고백했다. 초승달 모양의 수술 자국에만 마치 트라우마처럼 하얀 머리카락이 돋아나고 있지만, 멈추지 않고 나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바위 뛰기 펭귄이 바위에 부딪히고 바위로부터 떨어진다 할지라도, 크레바스 너머를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듯이 말이다.
"고통을 잠시 웃겨서라도 살아야겠다 "노래하는 그녀의 농담은 아프다. "농담처럼 살아남은 나는 신의 음식"이라는 서글픈 농담은 해맑아서 더 슬프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악물고 희망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했던 차이나 미에빌의 말속에서 꾸준히 뛰어가고 있는 바위 뛰기 펭귄 같은 그녀를 본다. 환하게 웃으며 신음을 들이키는 김해자의 시의 뿌리는 분명, 희망에 닻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