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운동권을 비난하는 소리가 들린다
6월이 되면 1987년 6월 항쟁이 떠오른다. 1980년대의 대학은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는 열기로 뜨거웠다. 경북대의 소장 교수였던 필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민주화에 헌신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걱정 반, 응원 반의 심경이었다. 이 학생들은 후일 386(30대 연령,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 운동권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을 비난하는 소리가 더러 들린다. 한 예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발언을 들 수 있다. 한동훈 전 위원장은 4.10 총선을 두 달 남짓 앞둔 1월 31일 <운동권 정치 세력의 역사적 평가> 토론회에 보낸 서면 축사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신 분들의 헌신과 용기에 늘 변함없는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도 "과거 운동권이었다는 것을 특권처럼 여기면서, 정치 퇴행을 이끄는 세력이 이제는 국민의 엄중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또 지난해 12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직 수락 연설에서도 "386이 486, 586, 686이 되도록 썼던 영수증을 또 내밀며 대대손손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가르치려 드는 운동권 특권정치를 청산해야 한다"고 했다.
1월 31일 토론회의 발제자 중에는 함운경 '민주화 운동 동지회장'이 있었다. 함 회장은 서울대 삼민투 위원장이었고 1985년 서울 미국 문화원 점거 농성을 주도했던 대표적인 386 운동권이었다. 그는 몇 차례 무소속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었고 열린우리당 후보로 군산시장 선거에 나서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번 4.10 총선에서는 정치 진영을 바꾸어 국민의힘의 전략공천으로 마포구 을에 출마했었다. 함 회장은 이 토론회에서, "운동권 세력은 국가에 애착이 없으며 민족을 우선시하는 반 대한민국 세력"인데 "이를 민주화 투쟁으로 포장할 뿐"이라고 비난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운동권 출신 정치인에 대한 이들의 비난이 맞든 안 맞든, 우리 사회에서 특권을 누리는 집단은 많다. 윤석열, 한동훈을 비롯한 법조인 출신도 예외가 아니다. 한 위원장의 표현을 패러디하자면 '어쩌다 한번 취득한 자격증을 내밀고 또 내밀며 대대손손 국민 위에 군림하려 드는 법조인 특권을 청산해야 한다.'
서울법대 79학번인 윤석열 대통령이 2학년 때인 1980년에 5.18 민주화운동이 있었고 전두환이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이 되었다. 1982년에는 양쪽 눈의 시력 차가 큰 '부동시'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4학년 때 사법시험 1차에 합격한 후 9수 끝에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 기간에 운동권 학생들은 각종 불이익을 당했고 군에 강제로 입영되거나 형사 처벌을 받기도 했다.
다른 서울법대 출신 법조인의 예로 한동훈 전 위원장과 원희룡 전 장관을 보자. 한 전 위원장은 서초구 8학군 출신이며 서울법대 92학번으로 4학년 때인 95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재학 기간 대부분은 김영삼 대통령 재임기였으므로 운동권이랄 게 없었으나, 그의 행보를 볼 때 운동권에 힘을 보태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한 전 위원장의 10년 선배인 82학번 원희룡 전 장관은 달랐다. 신군부 독재의 폭압적 정치 현실과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을 접하면서 8년간 야학, 노동운동 등 운동권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1989년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 이후 진로를 변경하여 1992년 제3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런 경력을 감안하면, 함운경 회장이나 원희룡 전 장관이라면 혹 몰라도 윤석열 대통령이나 한동훈 전 위원장이 운동권을 비난한다면, 그건 아니다. 더구나 평범한 생활인이 아니라 정치인으로 자리바꿈한 마당에, 운동권과는 달리 사회 발전보다는 자신의 출세에 몰두했던 젊은 시절을 먼저 부끄러워해야 옳다. 안도현 시인은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에서 이렇게 물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이런 태평천하에 어찌서 지가 운동권에 참섭을 헌담 말이여"
세상에는 변화와 개혁을 바라지 않는 '보수파'가 있기 마련이다. 기득권층은 말할 것도 없고 늘 짓눌려 살아온 서민 중에서도 운동권에 눈을 흘기는 사람이 있다. 채만식(1902~1950)의 풍자소설 <태평천하>(1938)의 주인공 윤직원은 기득권층의 좋은 예다. 윤직원은 일제강점기에 서울에서 살면서 부재지주로서 호남의 소작인을, 그리고 고리 사금융업으로 도시 서민을 착취하며 부를 축적한다. 그는 자신의 부를 지켜주는 일제를 찬양하는 반면, 사회 변혁을 지향하는 개혁파를 증오한다.
또 윤직원은 돈 말고도 집안의 족보며, 직함이며, 혼맥이며, 가족 중 권력자 키우기 등의 '사업'을 실천해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장래 경찰서장을 시키려고 일본에 유학 보낸 손자 종학이 사회주의 활동을 하다가 경찰서에 잡혀갔다는 전보를 받는다. 이 날벼락 같은 소식에 윤직원은 절규한다.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한 정사(政事),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남은 수십만 명 동병(動兵)을 하여서 우리 조선놈 보호하여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제 것 지니고 앉어서 편안허게 살 태평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허는 것이여, 태평천하!…… 그런디 이런 태평천하에 태어난 부잣놈의 자식이, 더군다나 왜 지가 떵떵거리고 편안허게 살 것이지, 어찌서 지가 세상 망쳐놀 부랑당패에 참섭을 헌담 말이여, 으응? (출처: <태평천하>, 문학과지성사, 2005: 274면)
윤직원이 1980년대에 살면서 손자 종학이 민주화 투쟁을 하다가 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이렇게 부르짖었을 것이다. "우리가 이만큼 사는 건 다 박정희, 전두환 덕이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이런 태평천하에 지 앞길만 잘 닦아 떵떵거리고 편안허게 살 것이지, 어찌서 지가 세상 망쳐놀 운동권에 참섭을 헌담 말이여, 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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