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남문전주성 남문, 후면에 '호남제일성'이란 글귀가 보인다. 1894년 여름 백마 탄 전봉준 일행이 이 문을 통해 선화당에 든다.
이영천
7월 6일. 백마 탄 전봉준이 약간의 호위병과 전주 풍남문에 나타난다. 비무장으로 최경선 등과 차분하게 선화당에 든다.
지사끼리는 눈빛만 보아도 알아보는 법이던가. 둘은 즉시 서로를 신뢰하며, 처지를 떠나 진정 나라를 걱정하는 지사의 풍모를 보인다. 믿음이 바탕인 차원 높은 소통을 이어간다.
나라 안팎 정세와 청일전쟁, 조선을 둘러싼 열강들 특히 일본의 흉계에 대해 긴 시간 대화를 이어간다. 인품은 물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서로 같은 점은 높이고 다른 점은 차이를 좁혀나가는 무척 세련된 대화를 나눈다. 겸손과 진지함으로 진정성이 돋보였고, 배석한 최경선과 김성규도 훌륭한 조역을 수행한다.
봉준이 전주로 들어올 때 …(중략)… 가까운 동지 사오십 명과 함께 들어왔다. 선화당에서 학진을 만났는데, 학진이 길 양편에 무장군인을 배치해 놓았으므로 봉준 등은 긴장하여 얼굴색이 변하였다 …(중략)… 마침내 진심으로 함께 이야기 나누며 속마음까지 드러내 보여 의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군대의 지휘권을 봉준에게 넘겨주었다. (번역 오하기문. 황현. 김종익 옮김. 역사비평사. 1994. p197~198 의역 인용)
7월 7일, 김학진은 감사 권한으로 각 고을에 관문(官文)을 낸다. '각 수령은 집강소를 인정하고, 동학혁명군과 협의해 폐정을 개혁하라'며 집강소에 합법성을 부여한다. 유일한 통치기구로 인정한 것이다.
전봉준도 동학혁명군 총대장 자격으로 각 고을 집강에게 '감사와 관민상화 정신으로 모든 일을 협의할 것이니 각 고을 집강도 수령과 협의하라'는 통문을 돌린다.
이로써 집강소를 통괄하는 동학혁명군 총대장이 전라도를 다스리게 되었다. 이런 합법적 시공간은 일본과 전쟁을 준비할 토대가 되었다. 김학진은 선화당을 비워주며, 각 고을로 나가는 감결(甘結), 지금으로 치면 행정적 지시 공문인 것에 자기 이름도 넣어 달라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