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야 꽃대긴 줄끝에 매달려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전미경
호야도 화분을 넘쳐 아래로 아래로 향했지만 기둥을 세울 줄 몰라 화분을 그냥 높은 곳에 두고 줄기를 아래로 흐르게 했다. 그게 얼마 전 일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런데 아래로 뻗은 줄기 끝에 꽃대를 세우고 꽃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생존력에 감탄할 따름이다.
꽃이 피고 지고, 꽃이라고 불러졌을 때 꽃은 꽃이 된다. 엄마는 내가 소개팅을 나갈 때면 항상 "꽃으로 보여야 할 텐데"라며 응원 아닌 응원을 하셨다. 아직 꽃으로 불렸던 적이 없었던걸 생각하면 아마도 나는 다육이 호야를 닮아있는 것 같다. 언젠가는 꽃을 피우는. 피울지도 모르는 희망을 갖게 하는.
생전 외할머니는 나이 먹도록 혼자 있는 나를 보곤 "얼른 꽃을 피워야 할 텐데"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나는 "할머니, 십 년마다 한 번씩 피는 꽃이 있대요. 백 년마다 피는 꽃도 있고요" 그 말에 할머니는 황당한 표정으로 웃으며 "그런 꽃이 있다고 정말?" 반문하셨다.
그러면 나는 "그럼요"라고 대꾸하면서 아직 꽃필 때가 아니어서 그렇다는 맹랑한 소리를 했었다. 그때는 모면하고자 둘러댄 말이었는데 실제 꽃 피우는 시기가 다 다른 식물들을 볼 때면 사람도 각자 꽃피는 화양연화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기다리는 일은 아름답고 고독하다. 흔들리는 잎을 보면서 바람의 존재를 아는 것처럼 가끔은 형태 없는 것들을 그리워할 때가 있다. 맑은 어느 날 뜬금없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피할 곳을 찾는 게 순서다. 미련 없이 가던 길을 멈춰야 한다. 망설일 필요도 없다. 그래야 곧 쏟아질 소나기를 맞지 않는다. 방향을 잃지 않는 게 삶의 지혜다.
바람이 분다. 나뭇잎들이 쉴 새 없이 흔들린다. 흔들리면서 살아있음을 노래한다. 호야꽃에 들떠 있던 그날, 어떤 이의 죽음을 들었다. 안정된 직장과 가정을 가진 그녀가 왜 스스로 세상과 이별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해할 수 있는 죽음이 어디 있겠냐만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그녀의 조건. 그녀를 본 적은 없지만 예쁘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전 내 책을 샀다고 했다. 연결고리는 그것뿐이다. 그녀라는 꽃은 그렇게 전화기를 통해 한 단어로 정리되었다.
한동안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다. 여전히 바람은 불고 잎들이 쉴 새 없이 흔들린다. 그래 잘 매달려 있어라. 삶도 그런 것이다. 흔들리면서 버티는 것. EDM에 강강술래를 한다고 해도 빛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균형 잡고 리듬을 타는 것이 인생이다.
4년 만에 호야꽃이 피었다. 무성하게 넝쿨진 호야잎을 보면 누가 봐주지 않아도 인고의 세월을 버틴 아우성 없는 외침이다. 이상하게도 꽃은 넝쿨들이 없는 긴 줄기 끝에서 피어났다. 언뜻보면 매달려 있는 것 같다. 언발란스하게 바닥에 늘어진 긴 줄기를 처음 보았을 때 잎이 돋지 않아 이리저리 밟히기도 하고 거추장스러울 때도 있었는데 꽃을 피우기 위해 긴 외로움을 온몸으로 이겨내고 있었던 걸 생각하면 숙연해진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밤마다 소쩍새도 천둥도 그렇게 울었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피어난 한 송이 꽃이다. 그 어떤 누구도 스스로 세상과 등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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