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에 세워진 황국신민서사탑 제막식 소식을 알리는 기사. 제막식은 1939년 11월 25일에 열렸다.
동아일보(1939년 11월 25일자)
사진 속 유성초 황국신민서사비에는 皇紀二千六百年(황기2600년)이라고 적혀 있어 건립 시기도 알 수 있다. 황기(皇紀)는 초대 천황인 진무 천황의 즉위년을 원년으로 하는 일본의 기년법으로, 황기 2600년은 1940년을 뜻한다.
일제는 1940년에 황기 2600년을 기념하며 조선을 일본에 완전히 통합하고자 내세운 내선일체(內鮮一體) 표어와 함께 대대적인 황국신민화 정책을 추진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학교에 황국신민서사비를 세우는 것이었다.
이때 유성동덕공립심상소학교(현 유성초)에도 황국신민서사비가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대구사범학교, 충남 공주농업학교, 충남 보령 웅천공립심상소학교, 경북 안동 녹전소학교에서도 1940년에 황국신민서사비가 세워졌다.
역사교육을 전공한 공주대학교 교양학부 윤세병 교수는 이 사진에 대해 "일제강점기 학교의 기념사진에 황국신민서사비가 이렇게 선명하게 세워진 모습은 처음 본다"면서 "일제가 중일전쟁 이후 황국신민화 정책을 본격화한 1940년대를 상징적으로 볼 수 있는 사진"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역사 교과서의 무단통치, 문화통치, 민족말살통치로 이어지는 일제강점기의 통치 변화를 보여주는 귀한 사진"이라며, "소위 무단통치기 교원들이 칼 찬 사진처럼 역사 교과서에 실릴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사진을 제공한 이남규 작가의 장녀 이윤주씨는 "서정 추상화가였던 아버지의 삶을 정리해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해당 사진을 올렸는데, 그 사진이 이렇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사진인 줄은 몰랐다"며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다"고 말했다.
일제의 황국신민화 정책의 상징이었던 황국신민서사비(탑)는 해방 후 대부분 철거되거나 땅에 묻는 등 훼손됐는데, 해방기념비나 독립기념탑 등으로 재활용해 탈바꿈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남산에 있던 황국신민서사탑은 1947년에 철거됐고, 세종시 금남초 황국신민서사비는 '해방기념비'로, 연남초 황국신민서사비는 '대한민국독립기념비'로 탈바꿈했다. 유성초 황국신민서사비는 금남초의 경우처럼 '해방기념비'로 탈바꿈한 경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