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안나호 대원들을 안내하고 환영해준 발포 봉충회 박태환 회장이 발포진성 내 '청렴광장'에서 기념촬영했다. 박태환 회장이 밟고 서있는 돌들은 '청렴박석' 으로 이순신 장군의 '청렴'함을 기리기 위해 성금을 통해 만들어졌다. 바닥돌에는 '청렴과 정직'을 다짐하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오문수
이 사건이 빌미가 되어 이순신은 보복성 징계를 받게되고 발포만호에서 파직을 당했다. 그러나 이와같은 투철한 책임감과 청렴함은 이순신이 장차 수군 최고지휘관이 되는 데 밑거름이 되었을뿐만 아니라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운 조선을 구해내는 초석이 됐다.
발포진성에는 '청렴광장'이 있다. 청렴광장은 이순신이 수군과 처음 인연을 맺었던 발포만호 부임을 기리기 위해 조성되었다. 이순신과 오동나무 고사를 바탕으로 '청렴'이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명명했다. 바닥돌에는 '청렴과 정직'을 다짐하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 공간은 충무공의 발포만호 부임 연도(1580년)를 상징한다는 의미로 전국의 시민들과 각급기관, 단체에 분양했던 1580개의 '청렴 박석(가로세로 23cm,높이10cm)'과 그 외 기부 등을 포함해 총 6237개의 바닥돌로 이루어졌다.
이순신은 발포만호로 근무하면서 바닷길, 인맥, 지역 실상을 파악하는 데 더없이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1년 전 전라좌수사로 승진한 이순신은 관할인 5관(여수, 순천, 광양, 고흥, 보성), 5포(방답, 녹도, 여도, 사도, 발포)의 수령들과 쌓은 인맥을 잘 활용했다.
파직 후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1년 전인 1591년 2월 유성룡의 천거로 전라좌수사에 임명됐다. 일본수군과 전투할 때 이순신장군 옆에는 흥양에서 인맥을 쌓았던 기라성같은 장수들이 포진했다.
녹도만호 정운과 군관 송희립, 백전노장 정걸, 흥양현감 배홍립, 사도 첨사 김완, 사도첨사 진무성, 발포진 임시만호 였던 나대용 등의 장수 들이 이순신을 보좌했다.
이순신은 1592년 5월 4일부터 8월 24일까지 크고 작은 접전 끝에 왜선 330여 척을 격파했다. <이충무공전서> 2권에 기록된 임진초 4대 해전 사상자 수는 모두 216명으로 흥양현 출신이 131명에 달해 전체의 반이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