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이곳에서 매일 신선한 채소를 공급받고 있다
정호갑
시골살이에서 봄은 몸이 조금 힘들다. 하지만 겨우내 보지 못하였던 예쁜 꽃과 새순을 보며 생명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에 대해 감탄하는 시기이다. 정원의 변하는 모습에 감탄하고 위로받는 시간이다. 매일 먹는 다양하고 신선한 채소는 덤이다. 이제 어느 정도 정원도 만들고 가꾸어 놓았으니, 내년에는 몸이 조금 덜 힘들려나?
여름이 되니 오후에는 햇볕이 너무 뜨거워 일하기가 힘들었다. 아내는 오전과 오후로 나눠 일하자고 한다. 그런데 나는 오전에 일하고 오후에 쉬자고 하였다. 일을 마치면 나는 바로 씻어야 한다. 그런데 씻고 나면 일하기 싫고 하루에 두 번 씻는 것이 귀찮다. 아내가 허락했다. 오전에 일하기로.
이 시기에 하는 일은 풀을 뽑고, 물을 주는 일이다. 어린 풀을 뽑을 때 중간에서 잘려지지 않고 뿌리까지 딸려 나올 때는 묘한 기분이 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미 자란 풀은 호미로 파내어야 하는데 계속하다 보면 힘들다. 내가 심은 꽃과 나무는 정성을 다하여도 죽거나, 잘 자라지도 않은데, 관심 밖에 있던 요놈의 풀은 너무너무 잘 자란다. 뽑고 일주일만 지나면 텃밭이 풀밭이 되고, 앞마당은 게으른 사람이 살고 있는 집으로 변한다.
풀 뽑는 것은 아내가 주로 하는데 일이 끝나면 손에 파스를 붙인다. 뿌리까지 뽑는데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다고 한다. 내가 해보려 하니 어릴 때 다친 무릎으로 쪼그려 앉는 것이 힘들어 아내에게 양보(?)하고 말았다.
대신 꽃과 나무 그리고 텃밭에 물 주는 것은 내가 한다. 물 주는 것도 그리 만만하지 않다. 물 주어야 할 곳이 흩어져 있어 두 시간이나 걸린다. 물을 주면서 꽃과 나무, 채소의 상태를 살핀다. 벌레가 심하면 천연 살충제를 뿌리고, 병든 잎은 따주고, 곁순은 솎아낸다.
장마가 시작되니 할 일이 생겼다.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꽃과 나무를 옮겨 심는 일이다. 제 자리가 아닌 듯한 꽃과 나무들에 제 자리를 찾아 주고 싶었다. 처음부터 심어야 할 곳에 심었으면 되는데 생각과 경험이 짧은 주인을 만나 이렇게 고생한다 싶으니 미안하다. 그런데 꽃과 나무를 옮겨 심다가 보니 뜨거운 햇볕을 견디지 못하고 시들시들하더니 죽고 말았다. 흐리고 비 오는 날이 꽃과 나무를 옮겨 심는 좋은 때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정원을 가꾸기는 처음 해보는 일이다. 4월과 5월 초까지는 이 꽃이 지면 저 꽃이 피어났다. 이어 피는 꽃들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었다. 그런데 이 꽃들이 모두 지고 나니 정원이 허전하다. 우리 정원에 피어날 다음 꽃은 달리아, 원추리, 분홍상사화, 국화이다. 달리아와 수국이 6월 중순부터, 원추리는 7월, 분홍상사화는 8월, 국화는 10월이 되어야 필 것이다.
이 사이에 피어날 꽃을 생각하지 못하였다. 장미가 오뉴월을 장식하는데 키우는 것이 힘들다고 하여 미루어 두었다. 그 사이 정원을 메워줄 꽃들에 눈을 돌렸다. 씨를 뿌리지도 않았는데 예쁘게 핀 끈끈이대나물과 채송화, 곳곳에 씨를 뿌려 둔 봉숭아와 메리골드를 한곳으로 모았다. 이들이 오뉴월의 허전한 정원을 메워줄 것이다.
세상살이도 이러한 것 같다. 위기를 맞이하면 잊고 있거나 기대하지 않고 있던 이들이 발 벗고 나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음을 이미 역사에서도 많이 보여 주었다. 그런데 그것을 아는 내가 이들을 소홀히 대해서 되겠나? 반성하면서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이들의 공간을 따로 만들고 매일 물을 주고 가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