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이자 화가인 이현지의 우화집 <주머니 인간>에 실린 ‘주인공 인간’ 편 삽화. ‘주인공 인간’은 자기 세계의 주인이며 배경과 조연들은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작품’에서 빠져나왔을 때 자신의 풍경을 진정으로 마주할 수 있다.
이현지
존재하지 않으면서 더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람
너무나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떨친 김민기. 직함을 붙이기도 힘들어 그냥 '인간 김민기'라고 불러본다. 그가 떠난 뒤 수많은 이들이 글을 올려 추모했다. 그의 지인들은 저마다 경험한 '인간 김민기'의 삶을 조각조각 묘사했다. 모자이크를 통해 드러난 그의 생애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주인공이 되기를 거부한 삶이었다. '뒷것'을 자처해온 건 겸양으로 해본 말이 아니었다.
지난 23일 서울 MBC저널리즘스쿨 강연 가는 길에 비행기편을 앞당겨 일찌감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그에 관한 책 <김민기>를 쓰고 우리 키아오라리조트에서 '노찾사의 아주 작은 음악회'를 열었던 김창남-조경옥 부부는 문상객을 맞이하느라 분주했다.
김대중 정부 경제수석이던 김태동 교수,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유진룡 전 문체부장관, 방송인 정관용 교수 등 오랜 지인들과 어울려 잠시 앉아있는 동안 낯익은 얼굴이면서도 제주로 이주한 뒤 몇 년간 만날 수 없었던 이들과 꽤 많이 인사를 나눴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죽어서 더 존재감을 뿜어내는 김민기가 사람들의 만남을 주선한 것이다.
학전과 '지하철1호선'은 부활해야 한다
유족들에 따르면 그는 서너 달 전부터 죽음을 담담하게 맞이하면서 '그저 고맙다' '할 만큼 다 했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실은 '지하철1호선' 등을 공연해온 '학전'의 간판조차 유지하지 못하는 문화계와 문화행정의 '야만성'을 지적하는 기사를 쓰고 싶었는데, 모두 다 내려놓고 떠나는 건 그의 의지였다고 한다. 학전을 유지할 후원 논의도 이뤄졌지만 '김민기 없이는 학전도 없다' '상업화는 안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전과 '지하철1호선'은 부활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유명한 문인이나 예술가들이 잠깐 묵어간 여관에도 명패를 붙여 그들을 기억하려 노력한다. 상업적이라는 느낌도 들지만 정치인 동상을 곳곳에 세우는 것보다는 뜻이 순수하지 않은가?
예술로 천민자본주의와 체제에 저항한 그였으니 지나친 상업화는 경계해야 되겠지만, 대중예술을 박제해 역사 속에 가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하철1호선'도 그의 음악도 이미 그를 떠나 대중의 것이 되었다. 1987년 시청광장 이한열 열사 노제 때 백만 군중이 '아침이슬'을 합창했다. 2015년 <한겨레> 인터뷰에서 그도 현장에 있었다고 말했다.
"앗, 뜨! 뭐 그런 느낌… 백만명이 부르는데, 그 백만명이 다 각자의 마음으로 간절하게 부르는데 내가 그걸 뭐라고 감히 말하겠나? 그때 생각했다. 아, 이건 내 노래가 아니구나."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할 때도 그의 유언을 지켰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는 게 그의 뜻일지라도 추모객들은 어디 가서 애통함을 달랠 수 있으랴.
장례식장에 가기 전, 지난 연말 '지하철1호선' 고별 공연을 봤던 학전소극장 옛터를 다시 찾아갔다. 소극장을 인수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가 '학전' 간판을 내리고 대신 '꿈밭극장'이란 간판을 달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