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마을 선배들의 부고를 받고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먹먹했다.
곽규현
얼마 전, 고향 마을 선배 두 분이 잇따라 세상을 떴다는 부고를 접했다. 주로 부모 세대의 부고를 받다가 선배들의 부고를 연이어 접하니 마음이 퍽 심란했다. 선배들은 만 60세인 나보다 나이가 세 살 정도 많은 형님들이다. 어릴 때부터 같은 동네에서 자라서 가족들까지 잘 안다.
만 60을 갓 넘긴 나이. 이제 인생 2막을 시작하며 노후를 보낼 나이지, 아직 세상을 등질 나이는 아닌데... 갑작스럽게 날아든 두 번의 비보에 가슴이 먹먹했다. 사는 게 바빠서 연락도 제대로 못 하고 살았던 선배들이지만, 벌써 하늘나라로 가다니 인생의 무상함이 느껴진다.
고인이 된 한 선배는 향우회나 동문회에 애착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분이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모임에서 가끔 얼굴을 봤던 기억이 난다. 주기적으로 한 번씩 고향 마을 어르신들을 대접하는 모임을 누구보다 앞장서서 주도하고, 깍듯하게 모셨던 선배였다. 바쁜 와중에도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선후배도 일일이 챙겨주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다른 선배는 사는 지역이 달라서 오랫동안 보지 못하고 살았지만, 예전에 명절 때 고향에 가서 마주치면 서로 안부를 묻곤 했다. 두 선배 모두 그동안 가족들을 먹여 살리며 열심히 살다가 이제야 한시름 놓을 나이였는데... 그저 안타까운 마음 뿐이었다.
60대 되니 친구 부모님들의 부고 소식이 자주 들린다
우리 부모 세대, 즉 노부모 세대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자연의 이치로 죽음을 받아들이곤 했다. 하지만 의학도 발달하는 요즘, 이른 나이에 맞게 되는 죽음은 어떨지, 당사자와 가족들의 심정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나의 가까운 친구 중에는 아직 유명을 달리한 친구는 없지만, 친구들의 형이나 동생이 이른 나이에 처자식을 남겨둔 채 세상을 뜬 경우는 더러 있다.
지병이 있어서 오랜 기간 투병 생활로 고생하다가 생을 마감한 사람도 있고, 갑작스러운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다. 친구들은 형제의 죽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됐고, 죽음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언제든 자신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임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사실 나는 늦게 태어난 늦둥이 막내라 부모님이 90대 연세에 돌아가셨음에도 친구들 부모님들보다는 일찍 세상을 뜨신 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는 15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는 9년이 지났다. 부모님의 별세는 어느 정도 예상하던 일이라 큰 슬픔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사별로 받아들였다. 대체로 나의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신 이후에 친구들의 부모님이나 장인, 장모님도 많이 돌아가셨다.
얼마 전에도 친구의 부친, 예전 직장 동료의 장인이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받았다. 하지만 아직 나와 같은 세대의 부고를 접하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어쩌다가 한 번씩 일찍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들으면 또 다른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내 큰 형님은 36년 전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그해, 40세의 젊은 나이에 큰 형수님과 어린 삼 남매를 남겨두고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해 갑자기 돌아가셨다. 오래전의 일이지만 그날이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난다. 잊으려 해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나는 형제의 죽음이 가족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직접 보고 겪으면서 살아왔다.
부모님은 큰 형님을 가슴에 묻으시고 자식 잃은 한을 품은 채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철없는 막내였던 내게도, 늘 믿고 의지하며 따랐던 큰 형님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다. 집안의 기둥이었던 큰 형님의 부재로 집안 전체가 흔들렸다.
그때부터 나의 사고방식과 행동 방식은 크게 달라져 집안 문제를 깊이 고민하고 책임지는, 철이 들어야만 하는 삶으로 변했다. 또한 죽음이란 누구에게든 뜻하지 않게 들이닥칠 수도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사고는 어쩔 수 없지만, 내가 어쩔 수 있는 것들에 최선을
고령화 시대, 인생 100세 시대라고 말하지만 100세까지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80세까지도 건강하게 살 것이라고 장담하기가 어렵다. 지금 건강하다고 앞으로도 계속 건강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의지와 상관없는 불의의 사건사고는 더더욱 예측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건강과 안전에 신경을 쓰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다. 건강하게 생활하는 매 순간이 행복이다. 건강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일상이 그만큼 소중하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는 말이 있다. 전적으로 공감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