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0일 괴산의 한 카페에서 임희선 작가.
김현정
- 모래섬 D-469에는 "사람들은 무거운 눈물을 바다라고 불렀다. 모래섬에 가려면 반드시 이 바다를 건너야 했다"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작가님은 무거운 눈물의 바다를 다 건너셨나요? 아니면, 아직 건너는 중이신가요? 만약, 다 건너셨다면 눈물의 바다를 건너는 데 어떤 방법이 도움이 됐나요?
"지금은 다 건넜다고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물론 언제 또 그 바다에 빠질지는 모릅니다. 사실 계속 모래섬에 있을 수만은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언젠가 몸이 갑자기 안 좋아질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면에서 힘든 상황이 올 수도 있을 겁니다.
처음 진단을 받고 무척 힘들었는데 어느 순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이 병을 극복하고 이겨내야겠다는 생각은 큰 도움이 안 됐습니다. 오히려, 이 병과 평생 함께 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니까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 글과 사진, 그림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시는데요, 그중에서 어떤 걸 가장 좋아하시나요?
"유치원 때부터 그림책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그림을 그리고 창작하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대학을 정할 때 용기가 안 났어요. 그래서 차선으로 광고를 택했습니다. 졸업 후 영화 마케터로 2년쯤 일하다 보니 '이 일을 계속하면 10년 뒤에 내가 행복할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더 늦기 전에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을 해보기로 마음먹고 퇴사했죠. 연남동에 있는 그림책 아카데미에서 2년간 공부를 하다 보니 순수 미술에 관심이 생겼어요. 그래서 베를린에 그림을 공부하러 갔습니다."
- 서울, 베를린, 괴산은 작가님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지명입니다. 각 지역이 작가님께 어떤 의미가 있나요?
"서울은 제가 선택한 곳은 아니고, 주어진 장소였습니다. 태어나 보니 서울이었죠. 베를린은 꿈을 이루고 싶어서 선택한 곳이었어요. 유학 생활 중 몸이 많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갔다가 골수 검사를 권유받았어요. 혼자서 그런 일을 감당하기에는 무서워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는 인생이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베를린 하면 실패가 떠오릅니다."
- 베를린 병원에서 문제를 잘 찾아낸 덕에 치료도 받고 책도 만들게 됐으니 베를린을 치유와 행복의 출발점으로 여기면 어떨까요?
"맞아요. 괴산에 오고 나니 또 그렇게 느껴집니다. 제가 베를린에서 돌아올 무렵, 한국에 계시던 부모님은 괴산으로 귀촌할 계획을 세우고 계셨어요. 처음에는 선뜻 따라가겠다는 결심이 서지 않았어요. 시골 생활이 엄두가 나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돌봄이 필요한 상태였던 터라 혼자 서울에 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1년만 살아보기로 마음먹었어요. 괴산을 생각하면,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저한테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나중에 괴산을 떠난다면 이곳 사람들이 많이 생각날 거 같아요. 여기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결혼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