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방비 상태에서 당한 한밤중의 날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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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잤을까? 무엇인가 얼굴을 내리치는 강한 충격이 나를 깨웠다.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악~."
얼굴 전체가 얼얼하고 눈앞이 깜깜했다. 머리가 띵하고 눈엔 핏발이 서는 느낌이었다. 내 비명에 깬 남편도 사태를 파악하고는 어쩔 줄 몰라 한다. 잠결에 옆에서 곤히 자는 내게 팔꿈치를 있는 힘껏 휘두른 것이었다.
"앗!! 괜찮아? 아, 진짜 어쩌지?? 미안! 미안!"
도저히 사과를 받아줄 기분이 아니었다. 왼쪽 눈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것이다. 눈뿌리가 빠질 듯 묵직했다. 무방비 상태에서 당한 이 한밤중의 날벼락이 억울하고 분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당연히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고의가 없더라도 피해자가 있으니, 그는 명백한 가해자이다. 누군가와 격투를 벌이는 꿈을 꿨다고 한다. 어이가 없었다. 누굴 이토록 세게 패주고 싶었을까? 실수를 가장한 본심은 아니었을까? 합리적인 의심을 해본다. 통증 때문에 자리에서 쉬이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안압이 올라갈까 자리에 누워 한참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런 것에 개의치 않지만 몇 년 전, '삼재( 무속에서 말하는 인간이 9년 주기로 맞이하는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시기, 위험에 대비해 몸을 사리고 조심해야 한다)'라는 시기에 유난히 사건 사고가 잦았다.
하룻밤 사이에 응급실을 두 번이나 간 적도 있었고,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다 집 계단 아래에서 멋지게 슬라이딩 하고 늑골골절이 되기도 했었다. 이어지는 악재에 굿이라도 벌여야 하나 호되게 당한 해였다. 근데 삼재는 작년에 끝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헛웃음이 나왔다.
'집 안에서 자다가도 이렇게 다칠 수 있구나.'
시퍼렇게 멍이 든 채 출근하면 사람들이 나를 어찌 생각할까? 만나는 사람마다 일일이 해명해야 하나? 그냥 전화해서 당분간 출근 못 할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통증이 조금 줄어든 것 같아 일어나 거울을 봤다. 안구의 핏줄이 다 터졌으리라 상상했지만, 거울 속 나는 생각보다 멀쩡했다. 눈두덩이만 조금 벌겋게 발적 되고 부었을 뿐 외관상 큰 이상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조금만 눈을 굴려도 눈뿌리가 빠질 것 같았다. 머리를 숙이지 않고 조심조심 겨우 세수했다. 남편은 여전히 미안한 기색으로 어쩔 줄 몰라 한다.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았으면
똑같이 한 대 치고 싶은 욕구를 누르며 꼭 쥔 주먹을 풀었다. 진정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안과 전문병원은 문도 열기 전에 사람들로 북적였다. 소아청소년과, 이비인후과, 안과 등 병원이란 병원은 모두 오픈런을 해야 하는 요즘이다. 접수하고 대기실에 앉아 욱신거리는 눈두덩이를 감싸고 기다렸다.
자초지종을 들은 의사 선생님은 남편을 곁눈질하며 웃었다.
"자다가 그런 일을 당하고 오시는 분들이 종종 있어요. 대부분 별 이상 없이 괜찮더라고요."
안압과 시력 측정, 시신경 검사까지 받았고, 의사의 말처럼 큰 이상은 없었다. 안구 타박상은 당분간 조금 불편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호전된다고 했다. 몹시 아프면 얼음찜질을 해주라고. 시트콤 같은 하루의 시작, 우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서둘러 일터로 출근했다.
다음날은 눈 주변으로 멍이 들고 욱신거렸다. 남편은 꿈속에서 통쾌한 핵 펀치를 날린 죄로 내내 나의 눈치를 봤다. 짜증이 났지만 한편으로는 회사의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욕구불만이 분출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애먼 사람에게 분출하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