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간을 문화유산으로 보전하려는 사람들

헛간과 아미쉬 그리고 우리의 두레

등록 2024.08.20 08:27수정 2024.08.20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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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기자말]

 전통 Barn은 전원에 서정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이런 Barn의 문화적 상징성에 주목해 미국과 캐나다, 유럽 등에서는 다양한 Barn 보호단체들이 생겨나고 있다.
전통 Barn은 전원에 서정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이런 Barn의 문화적 상징성에 주목해 미국과 캐나다, 유럽 등에서는 다양한 Barn 보호단체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안수

이곳 미시건 농촌의 광활한 옥수수밭과 콩밭 초록에 아름다운 리듬을 부여하는 것이 '반(Barn 헛간)'이다. 대개가 1층인 주택에 비해 장엄할 만큼 넓고 높기도 하지만 짙은 갈색이 초록에 대비되어 더욱 존재감을 드러낸다. 때로는 초록 지붕으로 개성이 더 두드러지기도 한다.

반이 대부분 갈색인 이유는 페인트가 사용 되기 전 나무의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특정 재료의 혼합물로 반을 칠했기 때문이다. 그 재료는 주로 석회나 생선기름에 구리나 철산화물을 혼합하여 칠함으로써 방부제 역할은 물론 벌레가 나무를 훼손하거나 곰팡이가 침투하는 것을 막았다.


이것이 검붉은 빛을 띠게 되었다. 오랜 시간 이 색이 반의 지배적인 색이 되다보니 페인트가 보급되고도 갈색이 주된 색이 되었다. 눈이 많이 내린 겨울철의 경우에는 백색의 대지에 갈색은 헛간의 위치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편리함도 있었다.

 100년 이상 된 이 Barn 3층 높이로 맨 아래에는 가축들의 우리로, 위층은 곡물과 건초를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100년 이상 된 이 Barn 3층 높이로 맨 아래에는 가축들의 우리로, 위층은 곡물과 건초를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안수
 기존의 전통적인 Barn들은 세월의 마모를 버터내지 못하고 점점 사라지고 있다.
기존의 전통적인 Barn들은 세월의 마모를 버터내지 못하고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안수

미국 반의 기원은 중세 유럽의 헛간이다. 초기 미국 이민자들이 유럽에서 사용하던 반의 설계방식을 미국의 풍토에 맞게 변형해서 적용한 것이다. '반'은 농촌에서 작물이나 건초, 연장을 보관하거나 가축우리로서 기능하는 중요한 건물이다.

농사에 필요한 집에서 해야 할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는 작업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농업이 기계화된 시대에 단순하고 우람한 전통적인 헛간의 용도가 감소함에 따라 다시 세울 필요가 없어졌다. 남은 반들도 목조 건물의 특성상 관리가 되지 않으면 나무가 상해서 허물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기존의 반들도 점차 모습을 감추고 있다.

 농촌에도 이제는 더 이상 전통적인 Barn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기계화된 현대의 쓰임에 맞는 작은 창고들로 대체되고 있다.
농촌에도 이제는 더 이상 전통적인 Barn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기계화된 현대의 쓰임에 맞는 작은 창고들로 대체되고 있다. 이안수

이런 사라지는 전통 농업 건축물인 반을 문화유산으로 보존하자는 운동을 하고 있는 이들을 캘훈카운티박람회(Calhoun County Fair)에서 만났다. 반을 보존하는 일은 농업 역사와 전통을 보존하는 일일뿐만 아니라 그것이 지역의 정체성이 담긴 사회와 국가의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는 일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반은 건물 자체뿐만 아니라 반을 세우는 방식에 아름다운 공동체의 미덕이 있다. 농촌의 필수적인 구조물인 이 거대한 '헛간을 짓는 일(barn raising)'은 크레인이 없던 시절 가족만의 몇몇 일손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이유로 어느 한 집의 헛간 짓는 일에는 마을사람 모두가 동원되는 공동의 일이 되었다. 이 일에 나타나지 않는 사람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이며 더구나 이 일을 하는 데는 품삯이 지급되지 않았다.

 주로 농업에 종사하는 아미쉬 사람들. 필요한 것을 스스로 생산해 충당하지만 남는 농산물은 파머스 마켓을 통해 팔기도 한다.
주로 농업에 종사하는 아미쉬 사람들. 필요한 것을 스스로 생산해 충당하지만 남는 농산물은 파머스 마켓을 통해 팔기도 한다. 이안수
 아미쉬 여성의 복식은 검정이나 파란색의 단색으로 지은 긴 드레스이다. 아미쉬 공동체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단순함과 겸손, 평등을 반영하고 있다. 교회모임이나 공공장소에서 항상 머리에 흰색이나 검정색의 '프레이어 캡(Prayer Cap)을 착용한다.
아미쉬 여성의 복식은 검정이나 파란색의 단색으로 지은 긴 드레스이다. 아미쉬 공동체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단순함과 겸손, 평등을 반영하고 있다. 교회모임이나 공공장소에서 항상 머리에 흰색이나 검정색의 '프레이어 캡(Prayer Cap)을 착용한다. 이안수

농번기에 농사일을 서로 도와 함께 일을 했던 우리의 품앗이인 두레공동체의 모습과 유사한 방식이다.


미시건에는 아미쉬공동체가 여럿 있다. 며칠 전 다녀온 쉽슈와나(Shipshewana)만큼 크지 않지만 오래된 박람회가 열린 캘훈 카운티(Clhoun County)를 비롯해 힐즈데일 카운티(Hillsdale County), 세인트 조셉 카운티(St. Joseph County), 메이슨 카운티(Mason County), 아씨올라 카운티(Osceola County), 클레어 카운티(Clare County) 등에 산재해 있다.

아나뱁티스트(Anabaptist 재침례교도)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현대 기술을 받아들이는 대신 18세기 유럽에서 이주해 온 당시처럼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마차를 이용하는 전통적인 간소한 삶을 고수하고 있다.

 더 크고 더 장대한 것을 추구하는 것과는 반대로 느림과 소박함을 지키고 있는 아미쉬마을 사람들의 교통수단은 말이 끄는 마차이다.
더 크고 더 장대한 것을 추구하는 것과는 반대로 느림과 소박함을 지키고 있는 아미쉬마을 사람들의 교통수단은 말이 끄는 마차이다. 이안수
  공동체의 미덕을 지키며 소박한 삶을 이어가는 이들의 모습은 삶 자체가 거룩한 기도로 보인다.
공동체의 미덕을 지키며 소박한 삶을 이어가는 이들의 모습은 삶 자체가 거룩한 기도로 보인다. 이안수

남자는 수염을 기르고 모자를 쓴다. 여성은 드레스와 기도 모자인 보닛을 쓴다. 가족과 마을공동체의 유대가 깊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모두 모여 바를 짓는 전통이 여전히 남아있는 곳도 아미쉬마을이다.

현란한 속도와 물질에 더 맹종하는 현 세태에 공동체의 미덕을 지키며 소박한 삶을 이어가는 이들의 모습은 삶 자체가 거룩한 기도로 보인다.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배틀크리크의 파머스 마켓에 들렀다가 작은 농산물 부스를 지키고 있는 아미쉬 부인을 만났다. 이 분은 세인트 조셉 카운티의 레오니다스(Leonidas)에서 오신 분으로, 우리가 지난주 쉽슈와나에 가던 길에 지나쳤던 작은 타운십이다.

그곳에도 300여 가구가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한다. 아미쉬의 농산물은 말이나 노새를 이용해 밭을 갈고 사람의 노동으로 수확하는 전통적인 방식의 농법이다. 화학비료나 살충제가 거의 사용되지 않은 만큼 유기농이거나 지속가능한 농법으로 제배된 농산물이다. 이들은 자급하고 남은 것들을 이처럼 내다 팔기도 한다.

 미시건의 전형적인 농촌 풍경.
미시건의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안수
  도시 밖으로 나가면 옥수수밭과 콩밭이 펼쳐진다.
도시 밖으로 나가면 옥수수밭과 콩밭이 펼쳐진다. 이안수
아내는 옥수수와 고추, 호박, 토마토 등을 샀다. 가격도 싸서 아내는 '이래도 괜찮은지' 물을 정도였다. 흰 보닛에 남색 단색 원피스를 입은 부인께 사진을 찍어도 될 지를 물었다. 기꺼이 카메라 앞에서 어께까지 감싸며 밝게 웃어주었다.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에 서둘러 판매부스를 정리하는 일을 아내가 돕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빗줄기가 너무 강해 함께 피신해야 했다. 그럼에도 함께 비를 맞는 선택은 대지 가이아에 무해한 삶을 지속하는 이분의 꼿꼿한 삶에 바치는 감사와 예의였다.

미시건의 곳곳을 돌면서 이곳의 삶을 살피다보니 반과 아미쉬공동체의 규율과 마을에서 협력하고 상조하면서 다양한 공동 작업을 함께 수행하던 우리의 전통적 두레정신과 서로 맥락이 닿아있음이 경이롭다.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홈페이지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BARN #반 #아미쉬 #미시건 #미국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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