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선생의 <산천재>남명 조식선생은 산청군 덕천면(지금의 시천면)에 서재 <산천재>를 짓고 강학에 힘썼다.
박태상
선조에게 올린 상소 (1)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 길은 남에게 구하는데 있지 않고, 임금 자신이 선을 밝히고 몸을 정성스럽게 하는데 그 요본이 있는 것입니다. 이른바 선(善)을 밝힌다는 것은 이치를 궁구함을 이름이요, 몸을 정성스럽게 한다 함은 몸을 닦는 것을 이름입니다.
사람의 성정 속에 만리(萬里)가 모두 갖추어져 있으니 인의예지가 곧 그 체(體)요, 만선(萬善)이 모두 그 체로부터 나옵니다. 심(心)은 이(理)가 모이는 바, 주체요, 신은 심을 담는 그릇이니, 그 이치를 궁구함은 장차 용(用)에 이르게 하려 함이요, 몸을 닦는 것은 장차 도(道)를 행하고자 함입니다. 그러한 이치를 궁구하는 바탕인즉 독서이니, 의리를 강명해서 응사(鷹事)의 당부를 구하는 것이 그것이요, 몸을 닦는 요방인즉 체가 아니면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궁리수신의 요본을 마음 속에 간직하여 그 홀로 있음을 삼감은 천덕이요, 이것을 밖으로 발해 성찰해서 힘써 행하는 것이 왕도인데 그렇게 되도록 하는 공부는 반드시 경으로써 주를 삼아야 합니다. 이른바 경이란 늘 자기가 처해 있는 환경을 정제엄숙하게 하고 자기의 마음을 늘 밝게 깨어있게 하여 일심이 주인이 되어 만사를 제어함을 말함이니 공자(孔子)가 이른바 경으로써 몸을 닦는다고 한 것이 이것입니다.
까닭에 경을 주로 삼지 않고는 심을 좌정시킬 수가 없고 좌정시키지 않으면 천하의 이치를 궁구할 수가 없으며 이치를 궁구하지 않고서는 사물의 변화를 제어할 수가 없습니다.
전하께서 과연 능히 경으로써 몸을 닦아, 천덕에 달하고 왕도를 행하여 반드시 지선의 경지에 이르른 뒤에야 그친다면, 심명과 심성이 함께 이르고, 물(物)과 아(我)가 아울러 다할 것이며 나아가 이를 정교에 베푼다면 마치 바람이 부는 대로 구름이 가는 것처럼 백성들이 보다 기꺼이 따라와 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형편을 말한다면 우선 임금 자신의 심성이 좌정돼 있지 않아 정사는 사사로이 처리되는 것이 많고, 그러다 보니 정령이 발하여도 백성들은 이에 거부반응을 나타내어 나라의 기강이 서지 않은 지가 여러 해입니다.
하온지라 비상한 왕위를 떨치지 않고서는 이미 흩어져서 뒤죽박죽이 된 세태를 끌어 모을 수가 없고, 큰 장맛비로 축여주지 않고서는 7년 대한에 말라 있는 풀잎을 윤택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불세출의 영재를 보필로 얻어 상하가 함께 정성을 다하고 협화하고, 온 나라 사람들이 같은 배를 탄 운명공동체임을 자각한 연후에야 차츰 무너지는 것을 받치고 말라비틀어지는 것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재를 얻는 것은 임금 자신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임금 자신이 몸을 닦지 않으면 자신에게 사람을 저울질하고 보는 능력이 갖추어 있지 않아 선악을 모르고 그러한 혼맹한 눈으로 사람을 취하고 버리면 그는 모두 정(正)을 잃을 것이며 또한 임금이 직접 인사를 관장하지 않고 남에게 맡긴다면 누가 임금과 더불어 치도를 이룩하려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임금이 몸을 닦는다는 것은 그가 바로 정치를 하는 근본이며 어진 이를 얻어 쓴다는 것은 그 정치를 성공시키는 근본이며, 수신은 또한 사람을 취택하는 근본이 되나니, 사람을 잘못 쓰면 군자가 야에 있고, 소인이 조정을 독점하고 국사를 멋대로 처리하게 됩니다. (다음 장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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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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