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 락커룸에 쌓여있는 머리카락
허윤경
샤워장 안의 광경은 더욱 황당했다. 한쪽 벽에 수건이나 타올을 임시로 걸어둘 수 있게 설치된 봉에 팬티와 브래지어들이 널려있던 것이다(더 정확하게는, 적나라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출입구 쪽이라 내가 안 보려고 해도 안 볼 수가 없는 위치였건만... 샤워장을 빠져나가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속옷을 챙기지 않았다.
내 두 눈은 졸지에 봉변을 당했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논하기에 앞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싶었다. 공공장소에서 해도 되는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의 구분은 상식일 것인데, 이래도 되나 보다 하는 무지함과 부도덕함에 할 말을 잃을 지경이었다.
그 뿐인가. 먹던 생수병이나 커피를 '누군가 치우겠지' 하며 그냥 버려두고 가는 사람들, 사용한 수건을 회수함에 넣지 않는 사람들, 선풍기를 죄다 틀어 사용한 후 끄지 않는 사람들... 사실 어른들이라고 다르지 않으니 단지 나이가 적고 많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
평소 운동을 마치고 탈의실에 들어서서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비치되어 있는 무선청소기로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들을 빨아들이는 일이다. 결벽증이나 '청소병'이 있는 게 아니라, 샤워하고 나온 맨 발바닥에 이물질(특히 머리카락)이 묻는 게 싫어서이다.
옷을 입고 소지품을 다 챙긴 뒤 마지막으로 하는 행동 역시 처음과 같다. 다음 사람이 쌓여있는 내 머리카락을 피하려 까치발로 다니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런 건 헬스장에서 알아서 관리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맞다, 헬스장 직원들은 정해진 시간에 맞춰 탈의실을 정돈하고 샤워실 청소를 하는 등 자기들이 맡은 업무를 할 것이다. 나는 그들의 '할 일'을 대신해 주는 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