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멈춰야 할 집게손가락 억지 논란

등록 2024.09.02 11:38수정 2024.09.02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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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강부회(牽强附會)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에게 유리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최근 하루가 멀다고 반복되는 '집게손가락 억지 논란'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자성어다.

집게손가락은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손동작 중 하나이다. 조금, 약간 등 적은 양을 표현할 때 사용하기도 하고, 물건을 집을 때도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손동작인 집게손가락을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을 비하할 때 사용하는 표식"이라고 주장하는 집단이 있다.

이들은 기업에서 제작한 특정한 창작물(영상, 게시물, 홍 보물 등)에 집게손가락 모양이 사용되면 이는 분명 "남성을 비하하려 는 페미니스트의 소행"이며 "이를 처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 은 집게손가락 모양이 들어간 창작물을 생산한 기업에 악성 민원을 넣고, 해당 기업과 계약을 맺고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신상을 스토킹해 사이버불링, 폭언, 협박 등을 자행한다. 페미니스트인 당신이 남성을 비하하기 위해 창작물에 집게손가락을 넣었고, 그런 당신을 똑바로 고쳐놓겠다는 것이다.

이런 논란에서 사용된 '집게손가락'은 그들의 주장과 같이 남성을 비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물건을 잡고, 손동작을 취하는 등 아주 자연스럽게 일반적으로 '집게손가락을 사용하는 상황'에서 사용되었다. 또한, 자신의 생계와 안전을 모두 버리고 '남성을 비하하기 위해' 집게손가락을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여성 노동자는 없을 것이다. 즉, '집게손가락 논란'은 음모론이며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에 불과하다. 그러나 기업 또한 이러한 악성 민원을 무시하거나, 강경하게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악성 민원의 피해자인 여성 노동자들을 검열하고 규제하고 있다.

남성 비하를 위한 집게손가락 사용이라는 억지 논란뿐만 아니라 실제로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사상검증 또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페미니스트 여성 노동자에 대한 사상검증은 주로 게임업계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위협적이다. 게임업계에서 디지털콘텐츠 창작자로 일하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위해 SNS를 운영하는데, 이때 여성 노동자들은 자신의 SNS에 여성 인권을 지지하는 의사 표현(게시글 업로드, 좋아요 등)을 할 때 "너 페미지"라는 식의 사이버불링을 경험한다.

지난해 청년유니온이 '2023 게임업계 사이버불링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게임업계 종사자들이 노동현장에서 사이버불링, 성차별 등을 경험한 비율이 굉장히 높게 나타났다. 특히 사이버불링을 직접 경험한 비율은 24.19%, 주변에 피해를 경험한 사람이 있는 비율은 50%에 달했다. 이들 중 50%는 회사가 사이버불링 문제를 대처하지 않았고, 41.3%는 사이버불링 피해자를 불이익 조치하였다고 밝혔다. 이는 실제로 게임산업 현장에서 페미니스트에 대한 사상검증과 사이버불링이 일어나더라도 피해자 보호조치가 시행되지 않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응위원회는 지난 8월 8일 서초경찰서 앞에서 넥슨 ‘집게 손’ 억지 논란 피해자가 제기한 사건에 대해 성평등 수사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응위원회는 지난 8월 8일 서초경찰서 앞에서 넥슨 ‘집게 손’ 억지 논란 피해자가 제기한 사건에 대해 성평등 수사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청년유니온

고용노동부는 올해부터 감정노동 보호조치 이행실태 점검 대상에 게임업종을 포함한다고 발표했으나 여전히 게임업계 페미니즘 사상검증으로 노동권을 침해당하는 피해는 지속되고 있다. 특히나 피해를 입고 있는 많은 여성 노동자는 직종 특성상 디지털콘텐츠 창작자로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일한다. 이 경우 페미니즘 사상검증과 사이버불링의 피해를 입더라도 노동권을 보호받을 수 있는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남녀고용평등법 등을 적용받기 어렵다. 프리랜서 노동자 또한 노동권과 노동 안전을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지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여성 노동자에 대한 페미니즘 사상검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추가 대응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는 근로감독 외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대응책이나 메뉴얼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최근 서초경찰서는 페미니즘 사상검증 피해 사건을 전형적인 피해자 탓하기 태도를 보이며 가해자를 불송치했다. 불행 중 다행히도 재수사 결정을 내렸지만, 서초경찰서의 태도는 현재 대한민국 사회가 페미니즘 사상검증과 사이버불링 등 여성 노동자가 경험하는 인권침해에 얼마나 무감각한지 보여준다. 정부는 늦었지만 반복되는 '페미니즘 사상검증'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여성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프랑스 등 몇몇 국가는 '인권실천 책임법' 등을 도입해 기업이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 또한 기업의 인권경영 의무를 규정하고, 피해 노동자를 보호하고 재발 방지 조치를 마련하는 등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면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심순경 청년유니온 조직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168호 9,10월호 '청년GO함' 꼭지에도 실렸습니다.
#집게손 #페미니즘 #청년 #사상검증 #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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