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기자가 받은 문자메시지지금 생각해 보니 수상한 점들이 있었다
정세진
딱 내가 원하는 조건이었고 페이도 괜찮아서 일단 가보기로 했다. 나중에 다시 뜯어보면 이상한 부분이 보인다. "안전하고 편한 일", "지인과 같이 지원"이라는 좀 쓸데없이 친절한 멘트. 하지만 당장 생활비가 급했던 나는 그런 걸 따질 생각을 하지 못했고, 더운 날씨에 모처럼 외출에 나섰다.
찍어준 주소를 찾아갔는데 막상 도착 문자를 보내니 장소를 바로 옆 건물로 변경한다. 여기서 2차 싸함. 급히 미팅이 잡혔다고 했고, 그러려니 한 나는 옆 건물 공유 오피스의 카페테리아로 올라가 대기했다. 청년 창업자나 사회적 기업들이 입주한 곳이라 뭔가 신뢰가 가는 장소라는 느낌이 들었다. 한참 후에 문자가 전송된 번호로부터 한 남성의 전화가 걸려 왔고, 오피스 내의 사무실로 들어섰다.
면접은 아직 대학생인 듯한 한 청년과 함께 진행됐다. 인터넷 쇼핑몰에 올라온 글을 타이핑해 문서로 정리하면 되는 일이라고 설명이 이어졌다. 매뉴얼만 숙지하면 되겠다 생각했고, 계약서에 사인하려는 순간 면접자는 뜻밖의 말을 했다.
"종종 자료만 가져가고 일을 진행 안 하시는 분들이 있어서요. 일종의 보증금 개념으로 9만 원(정확한 액수는 잊어버렸다)을 먼저 입금하셔야 해요."
3차 싸함이 오는 순간이었다. 심지어 그 돈은 알바를 그만둘 때야 돌려준단다. 반드시 낼 필요는 없지만 그러려면 사무실로 출근해서 일을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그러면 와서 일할게요."
하지만 그는 곧장 되받아쳤다.
"다들 그냥 돈 내고 집에서 편하게 일하세요."
어찌해야 하나.... 체감상 10분은 넘게 고민했던 것 같다. 돈부터 입금하라는 말이 이유를 불문하고 걸렸던 것이다. 옆자리 청년은 이미 사인을 끝낸 상태였다. 결국 나는 확실한 거절도 못 한 채 말했다.
"조금 생각해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러세요, 그럼."
억지로 잡아놓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그는 의외로 쿨하게 말했다. 건물 밖으로 나오면서 나는 아까의 상황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그리고 이십여 년 전, 세상 물정 모르던 학생 시절의 기억 하나가 스쳐 갔다.
당시 나는 어떻게든 용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잘 구해지지 않던 과외 대신 PC통신이나 생활정보지를 부지런히 검색했다. 그리고 '타이핑 부업'이라는 구인광고에 별 생각 없이 면접을 보러 갔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곳은 본인이 커뮤니티를 구축해 직접 운영하라는 곳이었고 교육비 명목으로 터무니없는 금액을 요구했다. 어린 마음에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재빨리 빠져나왔는데 이 나이 먹어서까지 비슷한 일을 당하다니, 내가 한심스러워졌다.
의혹은 풀고 싶다는 생각에 대체 어느 업체에서 올렸던 공고인지 알바 사이트를 다시 찾아갔다. 면접을 봤던 사무실은 아마 잠시 빌려서 눈속임을 한듯, 전혀 다른 업종이었다. 시급 13000원이라는 글이 딱 하나 보였는데 공교롭게도 모집 글은 삭제돼 있었다. 나는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별 시원한 답변은 듣지 못했다. 업체명을 모르고, 직접 금전 피해가 발생하지 않아서란다.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릴 결심을 한 이유도 이런 사례를 알리지 않으면 속았다는 기분이 도저히 해소되지 않을 것 같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