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루 시자의 건축 작품지그재그로 내려오는 철조 조형물은 지상을 향하는 게르니카의 폭격을 연상하게 한다.
김대오
소요헌은 자유롭게 거닐며 소요하기 쉽게 출입문도 없고, 창문도 따로 없이 중간 중간의 빈틈으로 빛과 비와 바람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구조다. 소요헌의 안쪽 천장에서 지그재그로 내려오는 철조 조형물은 지상을 향하는 게르니카의 폭격을 연상하게 한다. 비를 피할 수 있는 통로를 따라 걸으면 생명의 알을 만나게 되는데 임신한 여인이 잉태한 새 생명을 상징하는 듯하다.
소요헌이 사유원 설립자의 간청으로 건축되었다면, 소대는 건축가의 부탁으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새집 형상의 높이 20.5m 전망대는 팔공산 방향으로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져 있다. 소대 곳곳에는 설립자와 건축가에게 허락을 받았는지 모를 제비들이 집을 짓고 입주해 있다.
소대 창문 역할을 하는 중간 중간 비어 있는 공간으로 빛과 바람이 소통하고 풍경이 차경의 이름으로 걸어 들어온다. 꼭대기 전망 테라스에서 멀리 비와 운무가 내려앉은 첩첩의 산자락을 바라보니 마치 한 폭의 수묵화를 마주하는 듯하다.
소대에서 다시 소요헌을 거쳐 나가는 길에 요요빈빈(姚姚彬彬) 아트홀에 들렀다. 요요빈빈은 공자의 <논어> '옹야편'에 나오는 바탕과 겉꾸밈이 잘 어우러진 문질빈빈(文質彬彬)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곳에는 알바루 시자가 디자인한 가구와 드로잉이 전시되어 있는데 누드 크로키 작품들이 시선을 끈다. 좌망심재의 전통적인 수련과 모던한 건축 설계에 깃든 아방가르드 실험정신과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묘한 조화를 이루며 사유의 스펙트럼을 풍부하게 한다.
풍설기천년(風雪幾千年)과 현암(玄庵)
왔던 길을 되짚어 오르니 소백세심대와 풍설기천년이다. 일본으로 반출되는 모과나무를 매입한 것이 계기가 되어 수령이 300년 이상인 모과나무 108그루를 수집해 조성한 언덕이다.
가장 오래된 모과나무는 수령이 651년으로 고려 공민왕 재위 기간에 해당한다. 오랜 세월을 견뎌낸 고목의 두툼한 두께와 힘차게 드리운 뿌리를 마주하니 눈, 비 맞으며 어언 천년이라는 풍설기천년 정원 이름이 새삼 마음에 애틋하게 다가온다.
모과나무 위로는 배롱나무가 빗물에 근육질의 굵은 줄기를 뽐내며 분홍빛을 피워놓고 있다. 이 정원의 이름은 별유동천이다. 이백의 시 '산중문답(山中問答)'에 나오는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에서 따왔다. 여름의 끝, 쏟아지는 빗줄기에 사위어가는 배롱나무꽃은 아직 뜨거웠던 지난여름의 열기와 절박함을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