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참사시위이태원참사시위
랑희
2024년 7월 27일, 뜨거운 공기를 가르며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서울역까지 걸었다. 쏟아지는 비에도 아스팔트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비가 멈추면 도로는 머금은 물기와 함께 열기를 다시 토해냈다. 내가 "물속에 있는 거 같아"라고 말하자 동료는 "사우나에 갇힌 것 같아"라고 대꾸했다.
행진 대열 맨 앞에는 영정을 든 아리셀 참사 희생자 가족들이 섰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은 가슴에 꼭 안았지만,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은 가슴에 담기에 너무 커 보였다. 참사의 책임자들이 마음을 다해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다면 그 슬픔이 조금은 덜어지지 않았을까. 그런데 에스코넥·아리셀은 사과는커녕 형사처벌을 면하겠다고 가족들과 개별적으로 합의를 시도했다.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화성시청은 장례도 치르지 못한 유가족들에 대해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나섰다. 게다가 위로의 말을 골라도 부족할 때 혐오의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사람들까지 있다. 유가족의 슬픔은 분노와 함께 눈물로 흘렀다.
도시를 가득 채운 습기보다 더 숨 막히는 일들을 34일간 버텨 온 유가족들이 파란 리본을 만들어 행진 참가자들에게 나눠주었다. 먼저 떠난 사랑하는 이가 파란 하늘에서 지켜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조그만 리본에 꾹꾹 눌러 담았을 그 마음을 생각하며 가방에 걸려있는 노란 리본과 보라 리본 옆에 매달았다.
걸음을 옮기면서 '이 길을 이렇게 또 걷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2월, 이태원 참사 100일을 앞두고 영정 뒤를 따라 이 길을 걸었다. 그리고 1주기였던 지난 10월에도 걸었고, 눈발이 날리던 올해 1월에는 '이태원 참사 특별법' 공포를 촉구하며 다시 영정을 안고 시청광장 분향소에서 대통령실을 향해 걸었다. 그렇게 피해자들이 걷고 울고 외치면서, 때로는 소리를 삼키고 머리카락을 자르고 곡기를 끊으며 19개월의 시간을 온몸으로 견디어 간신히 '10·29 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 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냈다.
그런 정치는 없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 후, 정치권에서 들려온 자평을 들으며 부아가 났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 이후 여야가 서로 '양보'해 합의에 이르렀다거나 대통령실 대변인의 "협치의 첫 성과"라는 식의 말이라니.
체감온도 영하 20도가 넘는 혹한에서 밤새도록 1만 5900번의 절을 하는 간절한 마음을 외면했던 대통령과 여당이었다. 합의를 호소하고 눈물을 삼키며 법안을 양보한 유가족들을 지우고 정치인과 대통령의 결단이나 노력으로 이뤄진 것처럼 내놓는 말들이 듣기 싫었다.
여당과 일부 언론은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두고 참사 초기부터 이때까지 끈질기게 참사를 '정치화/ 정쟁화'한다며 비난했다. '진상규명은 이미 충분하고 특별법도 불필요하다'는 것이 비난의 요지다. 그래서 세월호참사를 소환 하기도 했고, 때로는 유가족을 위하는 양 훈계를 하기도 하고, 사회적 비용을 계산하며 갈등이 벌어질 사회를 걱정하는 체 하기도 했다. 말을 내놓음으로써 일어나지 않을, 또는 일어나 지 않아야 할 일이 발생하는 효과를 만든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정치적 효과'라 할 수 있지 않겠나.
유가족을 위한다면 유가족의 말을 경청하고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할 국가의 역할을 찾아야 할 것이고, 사회적 갈등이 걱정 된다면 어떻게 함께 해결해 나갈지 대안을 만들고 슬픔을 함 께하는 공동체의 마음과 태도를 제안하면 될 일이다. 그런 정 치는 없었다. 국가의 책무를 피하기 위한 정략적인 말만 있었 을 뿐이다.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대책을 마련하며, 책임을 묻는 것은 참사 피해자의 권리이고 정치·사회 공동체의 의무 이다. 나는 공동체의 의무를 다하는 정치, 피해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정치, 안전사회로의 전환을 추진하는 정치를 원한다. 그런 정치가 가능하기 위해서 사회적 참사에 대한 정치적 책임, 공동체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진상규명, 시스템의 작동과 국가의 책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