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피해범국민연대 주최 진화위법 개정 촉구 국회 본청 앞 기자회견 (2024.01.25.)
추모연대
현재 2기 진화위 조사를 바라보는 피해자들은 국가 주도의 과거사 진상규명의 반복되는 한계 속에서 힘겨워하고 있다. 한시적 조사 기간으로 인해 조사 내용이 부실해지고, 조사 권한의 한계로 조사의 진전이 없으며, 진실 규명 주체인 국가기구들이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협조하는 시늉만 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과거사 진상규명에 비협조적인 정권이 등장하여 피해자에게 또 다른 상실감을 주고 있다. 국가에 의해 고통을 당한 피해자들이 '재외상화'되는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진화위 법은 제2조에서 "1945년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 시까지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사건",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에 대해 조사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진화위는 제2조에 부합되는 사건들을 인권침해 사건으로 규정하고 조사2국을 통해 조사하고 있다.
현재 진화위의 인권침해 사건 조사는 내·외부적으로 한계를 나타내고 있다. 우선 김광동 위원장 체제에서 '부실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인권침해 사건은 법적으로 보장된 조사 권한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인권침해 사건은 피해자 진술에 근거하여 가해자, 가해 기관 조사, 자료를 통해 비로소 실체적 진실이 규명될 수 있다. 이러한 조사를 위해 진화위 법 제23조는 진술서 제출 요구, 출석요구 및 진술 청취, 자료 제출 요구 및 자료 영치, 사실 또는 정보 조회, 감정 의뢰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관련 자료나 물건 또는 기관에 대하여 실지 조사를 하게 할 수 있도록 했다.
국정원 등 가해 국가기관 조사에 난색 표하는 김광동 진화위
하지만 2024년 1월 23일 신정일씨에 대한 불법 구금 및 가혹행위 사건 조사와 관련한 국정원 자료제출 명령 외에 이 조사 권한을 행사하지 않고 있다(한겨레 2024. 1. 25. '지옥에서 보낸 7일'…진실화해위, 국정원에 첫 자료제출 명령). 제24조의 동행명령 또한 발부율이 거의 없는 상태이다. 무엇보다 24조의2에서 7까지 세분화하여 규정한 '청문회 조사'는 시도조차 못 하고 있다.
이러한 사태에 이른 가장 큰 이유는 실지 조사, 동행명령, 청문회 조사를 위해서는 위원회 전체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권력 기관과 그 기관 출신들을 직접 조사하는 것에 위원회 과반을 구성하고 있는 김광동 위원장 및 여당 추천 위원들은 난색을 표한다. 이들은 진화위 설립 목적을 왜곡하며 내부 갈등을 일으켜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진상규명 조사를 가로막고 있다. 과거 국가범죄를 진상규명하고 피해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의기투합해야 할 진화위가 내부 갈등으로 인해 조사에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둘째, 효율성과 성과 위주의 진상규명 조사 방식으로 실체적 접근이 필요한 사건들이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긴 조사 기간이 필요한 사건, '장기 미제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의문사 등은 성과가 나지 않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사건으로 전락했다. 국정원, 보안사, 경찰 등 국가 공안기구와 연계된 의문사는 해당 기관의 중요자료 조사 접근과 관련자들 소환조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안정적인 인력이 배치되지 못하고 조사관들이 수시로 바뀌며, 국가기관들의 자발적 자료 협조에만 의존하면서 조사는 더 이상 진전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만든 장본인 김광동 위원장은 의문사는 조사할 만큼 했으니 각하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진실 규명을 요구한 의문사 유가족들을 지탱한 것은 내 가족의 문제라는 것이기도 했지만, 자식들이 국가기관 공안기구인 방첩사(보안사, 기무사), 국정원(중정, 안기부), 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가기구들이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데 유가족들의 진상규명 활동 과정이 역할을 하기도 했다. 어쩌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분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셋째, 과거 청산에 부정적인 대통령 등 행정기관으로 인해 국가기관들의 조사 비협조와 가해자들의 침묵으로 인해 진상규명이 지연되고 있다. 현재 진화위는 사전 조사를 통해 어느 정도 진실 규명이 되겠다는 판단이 서야 조사 개시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이 과정에서 조사받을 기회조차 갖지 못한 인권침해 사건들이 있는데 재일동포 조작간첩 사건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군부 독재 시절에 많은 재일동포 청년들이 공안 통치로 인해 조작된 간첩 사건의 피해자가 되었다. 한국양심수동우회는 이들 조작 간첩 사건의 피해자들이 만든 단체이다. 현재 2기 진화위에 한국양심수동우회가 신청한 36건 중 보안사에서 조작한 7건은 조사 개시되어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국정원(중앙정보부, 안기부)에 의한 조작간첩 사건은 자료 비협조로 조사 시도조차 못 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비협조는 현재 진화위의 고질적인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