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별 토론 내용 공유하는 참여자한 참여자가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해 여성들끼리 나눈 이야기를 팀별 발표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서울여성회
본인이 중학생일 때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활성화되기 시작했다는 한 참여자는, 그 당시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에 우연히 들어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여자 연예인들의 합성 사진이 공유되는 것을 목격해 놀란 경험이 있다. 그는 이번 딥페이크 사건이 터진 뒤 그 때의 경험이 다시금 떠오르게 되었고, '그때부터도 혹은 그 예전부터도 계속 존재했던 문제인데 이것이 왜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참여자들은 딥페이크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반복되는 젠더 폭력과 성범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구조적 성차별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반드시 짚어야 한다고 입 모아 이야기했다. "가해자 개개인만 처벌하면 끝나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한 참여자는 "대안을 어떻게 만들고 제안할 것인지가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사건을 부정하는 학교, 증거가 없다며 피해자들을 돌려보내는 경찰, 구조적 성차별을 부정하는 정부. '너만 조용히 넘어가면 된다'는 식의 메시지를 사회가 계속 주고 있어요. 이 문제를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계속 반복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한 딥페이크 문제를 단순히 '기술 발전'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축소하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 의식이 공유되었다. 단순히 기술 문제를 넘어 사회적 인식과 가치관을 일치해 나가야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나아가 참여자들은 그러한 문제를 정치권과 국가가 제대로 다루게끔 목소리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떤 것이 폭력인지에 대한 기준이 확립되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 사회는 성차별 이슈에 대해서만큼은 합의점이 아예 없는 상태라고 생각해요. 폭력을 폭력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세력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잖아요. 권력 지형을 하루 아침에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성평등을 이야기할 수 있는 세력을 키워나가는 것도 중요해요.
딥페이크 성범죄는 우리 사회의 신뢰와 믿음이라는 관계의 근간을 흔드는 범죄예요.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 잘 살자는 관계를 어떻게 맺어갈 수 있는지와 같은 것들이 더 많이 이야기 되어야 해요. 각박해진 개인들의 정서를 기득권이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말을 더 널리 확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의 변화를 믿고 우리가 변화의 주인이 되는 것"
자유롭게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였던 만큼, 개인들의 솔직한 마음과 감정변화가 공유되기도 했다. 이야기를 나누며 참여자들이 공통적으로 나눴던 감정상태 중에는 '무력'이라는 키워드가 존재했다.
특히 2016년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 사건 이후 페미니즘을 접하게 된 소위 '페미니즘 리부트 세대'는 "열심히 투쟁하고 거리에 나와도 잠깐 변화하는 듯만 보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에 무력감을 느꼈다고 했다.
결혼여부, 세대, 지역 등 동일하지 않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참여자들은 이날 여성과 페미니스트들 안에서 공통으로 자리 잡고 있는 이 '무력감'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치열하게 토론을 했다.
이야기를 나누며 "나보다 더 이전 세대에서도 열심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쟁해 온 여성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참여자, "집회 현장에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회의가 있었지만 어떻게든 목소리 내는 것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다"는 참여자가 있었다. 대학 시절 여성 폭력 해결을 위해 학내 게시판에 호소문을 올렸을 때 수 많은 학생들이 포스트잇으로 화답해 주었던 뜨거운 연대의 기억을 떠올린 참여자도 있었다.
핵심은 '세상의 변화에 대한 믿음'인 것 같아요. 세상이 변화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지 않으면 결국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근본적인 성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부터 변화의 주인이 되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