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회의 입장하는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10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건전재정은 관치의 검증된 무능과 시장주의 신념이 결합해 만들어 낸 합작품인데, 이제는 한국경제를 위협하는 시스템 리스크로 진화하고 있다. 정부의 세수펑크 처방전은 국채발행 금지와 부자감세 원칙은 손대지 말고 급전으로 돌려막거나 그것도 안 되면 국민들이 알아서 더 허리띠를 졸라매라는 것이다. 지금처럼 민생곳간을 털어 나라곳간을 채우려 하면, 결국 재정은 더 불건전해지고 민생은 더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체불명의 건전재정이 재정 이슈에 국한되지 않고 경제정책 전반에 2차 충격을 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 건전재정의 부산물인 세수펑크 충격을 한국은행 급전이나 기금(외평기금, 주택도시기금 전용 등)으로 돌려막는 사이, 재정운영 시스템이 무너져버렸다. 둘째, 경제가 어려울 때 일방적인 민생 긴축재정을 강요해 구조적 소득충격이 만성적 내수불황으로 이어지는 단초를 제공했다. 셋째, 최근 재정발 경제위기, 즉 2년 연속 '1%대 저성장 쇼크'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진짜 건전재정은 경기가 어려울 때 재정을 풀어 경제를 살려내고 경제가 좋아져 다시 곳간을 채우는 전문 역량을 요구한다.
건전재정에 더 불건전해진 나라살림
부자 뺀 건전재정이 불러온 초유의 세수펑크 사태도 문제지만, 국채발행 없이 땜질 처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2차 가해는 더 큰 문제다. 국세실적 추이를 보면, 건전재정 원년인 2022년에 396조 원을 기록한 후, 2023년 344조 원, 2024년 337조 원(본예산 기준 정부추정액)으로 급감 추세를 보인다. 건전재정발 세수펑크에 나라살림이 급격하게 쪼그라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영업자에 비유하면, 코로나사태에 준하는 매출 충격이 발생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재정운영 시스템이 망가지면서 이제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총체적 난국에 빠진 것이다.
세수추계를 둘러싼 경제관료들의 행태는 더 가관이다. 문재인 정부 때에는 역대급 초과세수가 발생해 "과소추계" 의혹이 일어난 바 있다. 당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기껏해야 '20조 원+α'라며 애써 숫자를 줄이려 했지만, 결국 엄청난 규모의 초과세수(2021년 +61.4조 원, 2022년 +52.5조 원)가 발생했다. 세수 예측만 정확했다면, 필요한 곳에, 필요한 재원을 더 빨리, 더 많이 투입해 코로나 경기충격을 조기에 진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처럼 그때도 정책 실패를 책임지는 경제관료는 아무도 없었다.
세수오차율(세입예산 대비)
▪ 전 정부: '21년(21.7% · +61.4조 원) ⟶ '22년(15.3% · +52.5조 원)
▪ 현 정부: '23년(-14.8% · -56.4조 원) ⟶ '24년e(-8.1% · -29.6조 원)
반면, 윤 정부가 기록한 2년 연속 대규모 세수펑크 참사는 유례를 찾기 어렵고,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초과세수 사례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2023년에는 –56.4조 원이라는 믿기 어려운 세수 결손을 기록했는데, 이 중 44%(-24.6조 원)가 법인세 감소분이다. 올해에도 –29.6조 원의 결손이 예상되는데, 이중 절반 정도가 법인세 감소분이다. 건전재정이 내민 청구서로 인해 중산층과 서민경제는 민생 긴축재정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건전재정발 세수펑크에 망가진 재정운영 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