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티 마을 큰돌이네 집 - 개정판 밤티 마을 1 이금이 (지은이),한지선 (그림)
밤티
큰돌이네 가족은 동생 영미와 아빠, 할아버지, 그리고 큰돌이까지 모두 네 명이다.
큰돌이 아빠는 오토바이에 연장 가방을 싣고 다니는 목수다. 그런데 엄마가 떠난 뒤로는 술에 취한 모습을 보이는 날이 더 많다. 술 취한 아빠는 무섭다. 큰돌이를 향해 큰소리치고, 함부로 대하기도 한다. 큰돌이는 아빠를 피해 옆집 쑥골 할머니 댁 외양간에서 잔 적도 많았다.
큰돌이 엄마가 큰돌이네를 떠난 지 2년이 넘었다. 하지만 학교로 몰래 찾아와 열심히 돈을 벌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면 데리러 오겠다는 말을 했다. 그래도 아빠는 엄마 이야기만 나오면 화를 내고, 집에서 엄마의 흔적을 모두 지웠다. 사진 한 장도 없으니 큰돌이 동생 영미는 엄마 얼굴도 모른다.
할아버지는 어려서 병을 앓은 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시는 분이다. 사람들의 입 모양이나 몸짓을 보고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아신다. 2년 전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큰돌이네가 할아버지와 함께 살기 위해 밤티마을로 왔다.
그리고 영미, 오빠 껌딱지라 오빠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면 날마다 버스 정류장에 가서 기다린다. 큰돌이가 아빠에게 야단맞고 집에서 쫓겨날 때도 꼭 따라나선다. 하지만, 쑥골 할머니의 주선으로 나무와 꽃들로 예쁘게 꾸며진 마당이 있는 집으로 입양을 가게 된다. 엄마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영미는 친절한 아줌마의 모습을 보며 진짜 엄마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가족의 해체는 큰 사고다. 교통사고보다 더 큰 상처를 남긴다. 받아들일 수 없는 슬픔 앞에서 그 모든 상황이 자신의 잘못이라 여기게 된다고 한다.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들은 '내가 엄마 말을 듣지 않아서', '내가 아빠를 힘들게 해서' 같은 이유를 떠올리며 깊은 자책에 빠져버린다.
큰돌이도 아무것도 지킬 수 없는 상황 앞에 무너진다. 엄마도 영미도 모두 떠난 집에서 홀로 울음을 터트린다. 자기 가족이 영락없이 훨훨 흩어져 버린 민들레 꽃씨 같다며.
어른들은 종종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말하며 아이들의 마음은 묻지 않고 제멋대로 결정을 한다. 큰돌이의 아빠도, 할아버지도, 영미를 부잣집에 보내자고 한 옆집 쑥골 할머니도 그리고, 영미의 새엄마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따로 있어도 잊을 수 없어요
부잣집 딸이 된 영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밤티마을을 조금씩 잊어간다. 예쁜 옷을 입고, 엄마 아빠의 사랑을 받으며 노랑 모자를 쓰고 노랑 가방을 들고 유치원에 가며 행복해한다. 하지만, 영미 마음에 오빠는 지워질 수 없는 존재였다.
어느 날 오빠와 함께 찔레순을 따먹던 일이 불현듯 떠오른다. 옆집 장미 넝쿨에서 퍼지는 향기가 영미에게 찔레꽃 향기 같았기 때문이다. 영미는 오빠를 생각하며 침대 밑에 작은 상자를 두고 차곡차곡 작은 물건들을 쌓기도 한다.
새엄마가 이사 이야기를 꺼내자 다급해진 영미는 길도 모르면서 그 상자를 들고 밤티마을을 찾아 나선다. 상자 속에는 오빠에게 보여주고 싶은 신기한 학용품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영미가 상자 속에 담은 것들은 그저 아이의 호기심 어린 욕심이 담긴 물건이 아니라 그리움이었다.
밤티마을의 큰돌이도 영미를 잊을 수 없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새엄마 덕분에 아빠가 달라지고, 집도 깨끗해졌지만, 새엄마가 빡빡 목욕을 시켜주고 새 옷도 입혀주자 '영미가 있었더라면 예쁘게 머리도 빗어주었을 텐데'라고 동생 생각을 한다. 새엄마 덕분에 자기 방이 만들어졌을 때도 '영미만 있으면, 이제 영미만 있으면 되는데……'라고 생각한다.
영미와 큰돌이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애틋하기 그지없다. 가까이 하기에 너무 어색한, '현실 남매'라는 신조어가 난무하고, 오빠가 없어서 오빠 어디 갔냐고 물었더니 "니 오빠 군대 갔잖아" 한다는 무관심 가득한 우스갯소리가 있는 시대에 영미와 큰돌이 남매의 애틋함은 국보급이다.
가족 해체의 시대에 가족이 어떤 것인지를 느끼게 해준다. 잃어버렸지만 기억조차 하지 못했던 소중한 보물을 찾은 기분이다.
지혜로운 영미 엄마와 멋진 큰돌이 엄마
무작정 밤티마을로 향했던 영미는 결국 길을 잃고 파출소로 가게 된다. 그 바람에 영미의 새엄마는 영미가 얼마나 밤티마을 가족들을 그리워했는지 알게 된다. 큰돌이 엄마 역시 큰돌이의 마음을 알게 된다. 큰돌이가 쑥골 할머니께 영미가 보고 싶다고 영미를 도로 데려오면 안 되냐고 졸라댔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른들은 뒤늦게야 아이들의 마음을 보게 된다. 상처가 곯아 터져 고름이 나오고서야 비로소 아이들의 마음과 마주한다. 아이들은 입이 아니라 몸으로 말한다. 어른들처럼 조리 있게 논리적으로 말할 수 없기에 마음에 병이 들고, 마음의 병은 몸까지 아프게 한다. 큰돌이도 영미도 마음의 병이 들어 시름시름 앓았는데, 병이 깊어지고야 어른들이 알게 된 것이다.
큰돌이의 새엄마가 먼저 영미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빵집에서 영미를 만난 후에 큰돌이가 병에 걸려 앓아누웠다는 것을 알리고, 영미가 밤티마을로 돌아오는 게 어떠냐고 묻는다. 참 멋진 엄마다.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낸다.
영미 엄마 역시 참 지혜롭다. 영미의 마음을 묻고 영미가 결정하도록 돕는다. 그리고 영미는 부잣집 엄마 아빠를 떠나 밤티마을로 돌아가겠다고 결정한다.
어린이 문학에서도 점점 더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아지고 있다. '동심천사주의'는 떠난 지 오래다. 그러나 '밤티마을'에는 천사같은 사람들이 있다. 좋은 어른들이 있어서 참 뿌듯하다. 세상이 살 만한 곳 같고, 살아갈 용기도 생긴다. 좋은 어른들이 챙기는 착한 아이들은 자라서 좋은 어른이 될 것이다. 그래서 또 기분이 좋아진다.
전통적인 가족 형태가 무너지고, 새로운 가족 형태가 점점 더 많아지는 세상이다. 이혼 가족은 늘고, 입양 가족도 드물지 않게 보인다. 조손 가족도 점점 많아진다고 한다. 또한 다문화 가족도 일상에서 흔하게 마주치게 된다.
<밤티마을 큰돌이네 집>은 얼핏 보면 '정상 가족으로의 회복'을 주제로 한 것처럼 보인다. 해체된 가족이 다행히 다시 뭉쳐지고 행복을 회복하는 해피엔딩 스토리 같다. 정상과 회복, 정말 '얼핏' 보면 그렇다. 하지만 조금 더 살펴보면 사람이 보인다. 아이든 어른이든 서 있는 그 땅을 굳게 딛고 일어나, 세상을 향해 손을 내미는 멋진 장면을 상상하게 된다.
몇 해 전 모 초등학교 운동회 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달리기하다 넘어진 친구를 내버려두지 않고, 함께 달리던 모든 친구가 넘어진 친구들을 향해 돌아서고, 어깨동무를 하고 천천히 함께 뛰어 결승전을 함께 밟는 장면이었다. <밤티마을 큰돌이네 집>은 딱 이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 이야기이다. '잘 사는 것보다 더 잘 사는 방법은 바로 함께 사는 것'이라고 시나브로 알게 하는 사랑스러운 동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