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3년 6월 1일 세계 환경의 날을 앞두고 광화문광장에서 ‘윤석열 정부는 환경파괴 폭주를 멈춰라’ 기자회견이 환경운동연합 주최로 열렸다. 환경운동연합은 ‘세계 환경의 날을 기념하기 무색하게도 윤석열 정부는 케이블카, 공항 건설, 녹조 방치, 오염수 투기 찬성, 기후위기 방치 등 반환경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활동가가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구호 '좋아 빠르게 가!'를 외치는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
권우성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대한민국 정부의 전통적 자세는 '관망'이다. 지금까지의
부속서 II국가 기준은 유지되어야 하며 우리도 일정 수준 돈을 낼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자율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개발도상국 기후대응에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한 현실을 인정하되, 그것은 우리가 의무공여국이 아닌 국가의 지위를 유지한다는 전제에서다.
흔히 말하는 '국익' 관점에서 책임을 최대한 회피하며 그렇다고 명분을 저버리지는 않아야 한다는 시각에서는 지극히 합리적인 방침이라 할 만하다. '
기후변화가 사기'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미국이 파리협약을 탈퇴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굳이 의무공여국도 아닌 대한민국 같은 나라가 나설 공간도 이유도 없지 않나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문제는 남아 있다.
먼저 대한민국은 탄소배출의 역사적 책임을 쉽사리 외면할 수 있는 국가가 아니라는 점에서다.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7위, 1인당 배출량 5위(IEA, 2022)는 말할 것도 없고, 역사적 누적배출량 역시 세계 18위(GCP, 2022)로 누적배출량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상위 국가라는 점에서 기후변화의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산업화 이후 역사적 누적배출량에 따라 개도국 기후재원을 할당한다고 하면, IHLEG 기준으로 필요한 선진국 조달분 연간 1조 달러의 1%인 100억 달러(14조 원)는 대한민국이 공여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정부가 자발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각종 기후기금 지원을 전부 합쳐도 이 책임분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할 정도로 미미하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녹색기후기금(GCF) 공여를 자발적으로 크게 늘리겠다고 자랑했는데 그 금액이 3억 달러(4200억 원)에 불과했다. 재정적 여유가 있는 국가가 재원을 분담해야 한다는 원칙을 적용해도 한국의 부담분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은 세계총생산의 1.5%를 산출하는 경제 대국이기 때문이다.
설령 공여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된다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극단적인 의견 대립 속에서 과연 인류는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다. 책임성과 재정적 충분성 조건 모두를 갖추고 있는 대한민국과 같은 나라도 돈을 안 내는데, 어떤 나라가 돈을 더 내려고 나설 것인가?
역사적으로 자선이 문제 자체를 해결한 적은 없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자발적 공여가 충분한 지원을 이끌어 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약탈적 성격이 짙은 민간투자로 재원 계획이 채워지고 중국과 사우디 같은 국가들이 협조하지 않을 명분이 된다.
개발도상국 전체의 탄소배출은 이미 선진국을 훌쩍 넘어섰다. 절대규모도 문제지만 증가율의 차원은 압도하는 실정이다. 1990년 이래로 선진국의 배출량은 연 150억 톤 언저리에서 억제되고 있지만, 개발도상국의 배출량은 연 80억 톤에서 220억 톤으로
3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우리 자신의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엄수한다 하더라도 개도국의 감축을 달성하지 않으면 그 효과는 무의미할 정도로 크게 반감될 수 있다. 국가이익의 차원에서도 어떻게든 개도국 탄소배출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시간조차 우리의 편이 아니다. 해결을 늦출수록 비용은 불어나는데 효과는 축소되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더 급진적이고 파괴적인 해결책으로 몰리게 될 수도 있다.
소극적 관망으로 일관하는 태도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가 아닐까? 의무공여국이 아닌 우리부터 합당한 돈을 내겠다, 우리부터 1.5℃ 경로에 부합하는 감축목표를 제시하고 화석연료 투자를 축소하겠다, 그러니 현재의 위기인식과 필요성을 바탕으로 모두가 필요한 재원을 책임지자는 입장을 주도하고 중재할 수는 없을까. 대한민국의 위치는 과거 식민지 중 유일하게 선진국에 진입한 국가로서 개도국과 선진국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라는 점에서 문제 해결의 키를 쥐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CF100(무탄소 전원 100% 사용)같은 자국 이해에 천착하는 이니셔티브에 몰두하며 원전국가의 명성에 안주할 것을 바랄 것인가, 아니면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제안자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세계사적 중심국가의 길을 걸을 것인가. 대한민국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명분과 책임과 실력 모두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다. 대한민국 정부의 새로운 시대인식과 전향적 자세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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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대 과제인데... 돈 아끼며 관망하는 초라한 윤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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