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의 정원풀의 정원, 130.3×387.8㎝, 비단에 수묵과 은분, 2024
성민우
풀의 초상
성민우가 그간 집중해 온 '일년생-풀'의 소재적 시원(始原)을 조선시대나 중국 송·원대 '초충도(草蟲圖)'에 기댈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전의 것들이 수기와 수양의 상징으로 기능했을 뿐만 아니라 사실주의적·실용주의적 형태를 지닌 반면, 작가의 작업 '일년생-풀'은 그것의 '존재 자체'(Being itself, 開示性)를 대상으로 하며, 이를 생태적이고 지구적인 사유로 확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달리 볼 필요가 있다.
소재(素材)의 미학은 과거의 전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작가에게 '일년생-풀'은 그 자체로 삶과 죽음의 반복이며,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풀의 생명은 주어진 환경을 부여 받고, 그에 성실하게 적응하면서 완성되며…풀의 생태는 분명하게 생과 번식, 그리고 죽음으로 반복"되는 존재인 것이다." (작가 노트 부분)
성민우의 작업에서 풀과 벌레의 재현은 '비사실주의적'이다. 작가는 이전의 '초충도'나 '본초서'에 그려진 사실적인 배경과는 달리 '비현실적 재현'을 만들어내고 있다. 작가가 구상한 재현은 '현실의 재현'이 아니다. 작가가 담아내는 것은 '존재-자체의 재현'이자 '존재의 열림'(開示性)이다.
작품에는 존재의 환희와 메마름, 생명의 빛과 어두움이 드리워져 있으며 자연의 환상과 현실이 담겨 있다. 그렇기에 작품 안에서 풀-존재는 "내게 귀 기울일 필요는 없소. 그러나 나는 여기 있소"라며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풀과 벌레, 그들의 삶을 아무리 재현해 내려 애써도 그것은 사실적일 수 없다. 나의 재현은 그래서 비현실적인 재현일 뿐이다. 그러므로 나의 그림은 사실적이지 않다. 현실을 그대로 바라보고 그 순간의 기억들과 나의 눈과 손으로 담아낸 것 뿐이다." (작가 노트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