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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몬·위메프 '줍줍' 대표가 했던 말 "고객의 입장에서"

과거 경영철학 "사람이 핵심"... 큐텐그룹 구영배 회장의 '명암'

등록 2024.07.25 18:25수정 2024.07.2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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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얘기해주세요. (환불) 돼요, 안 돼요?" (7월 24일 밤, 위메프 본사 항의 방문한 소비자의 말)

티몬·위메프·인터파크커머스 등 e-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들의 입점 판매자 대금 정산 지연 사태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최근 이들 업체가 정산 지연을 판매자들에게 통보하고 판매자들이 소비자 주문을 취소하면서 그 여파가 환불까지 불확실해지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번 사태로 인해 1000억 원 이상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티몬·위메프 등의 이용자 숫자 또한 869만 명에 달하고 월간 거래액이 1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사태 수습이 잘 이뤄지지 않을 경우 대금을 지급 받지 못한 업체들의 줄도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소비자들의 불안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금 정산 지연 사태가 알려지면서 "본사에 가서 가구라도 들고 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들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회자되다가 급기야 24일 밤에는 200명이 넘는 소비자들이 위메프 본사에서 환불을 요구하고 항의를 진행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자리에서 류화현 위메프 공동대표는 "지금과 같은 피해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며 "소비자 피해가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티몬·위메프 모기업 큐텐... 몸집 불리기 두고 '줍줍' 평가
 
a  25일 새벽 서울 강남구 위메프 본사가 정산 지연 사태와 관련 상품을 환불받으려는 고객들로 붐비고 있다.

25일 새벽 서울 강남구 위메프 본사가 정산 지연 사태와 관련 상품을 환불받으려는 고객들로 붐비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이와 같은 입장이 현실로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티몬이나 위메프 등이 모두 자산보다 부채가 많은 완전 자본 잠식 상태이기 때문이다. 

신용분석보고서를 보면 티몬은 2022년 말 기준 자산 1461억 8400만 원, 부채 7847억 5600만 원으로 자본총계가 -6385억 7100만 원이다. 영업이익 또한 -1526억 1500만 원에 이른다. 티몬의 지난해 감사보고서는 현재까지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위메프도 비슷한 상황이다. 지난해 위메프 자본총계 또한 -2440억 원이어서 이들 두 회사의 완전 자본 잠식 규모는 9000억 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들 업체의 모기업인 큐텐(Qoo10)의 무리한 몸집 불리기를 이번 사태의 핵심 원인으로 꼽고 있다. 싱가포르 기업 큐텐은 2022년 티몬, 2023년 위메프, 그리고 올해 AK몰에 이어 미국 온라인 쇼핑 플랫폼 위시를 1억 7300만 달러(약 2400억 원)에 인수했다. 일각에서는 위시 인수가 큐텐 그룹 현금 유동성 부족의 큰 요인이 됐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티몬이나 위메프 등에 대한 인수 과정을 두고서는 '줍줍(줍고 줍는다는 뜻)'이란 평가도 따른다. 이들 업체는 인수 당시 이미 자본 잠식 상태의 적자기업들이었던 데다가, 국내 이커머스 시장이 쿠팡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기업 가치가 과거에 비해 크게 하락했던 상태였다. 인수 방식 역시 지분 교환을 통한 자회사 편입 형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객의 입장에서"... 지마켓 '구대리'로 불렸던 대표
 
a  2009년 4월 16일 이베이(eBay)의 지마켓 인수 발표 당시 모습. 사진 가장 오른쪽이 구영배 큐텐그룹 회장이다.

2009년 4월 16일 이베이(eBay)의 지마켓 인수 발표 당시 모습. 사진 가장 오른쪽이 구영배 큐텐그룹 회장이다. ⓒ 연합뉴스

 
큐텐 그룹을 이끄는 오너는 구영배 회장이다. 과거 지마켓을 국내 이커머스 1위로 끌어올려 한때 '이베이도 두려워하는 남자'라는 별명이 있었을 정도로 이커머스 업계에서는 신화적인 인물로 꼽힌다. 지마켓은 2004년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됐고, 2009년에는 미국 이베이에 5500억 원에 매각됐다. 


이와 같은 성공으로 인해 구 회장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는데, 특히 그의 경영 철학이 소개된 경우가 여러 번 확인된다. <월간조선>은 2006년 3월호를 통해 "천방지축 튀는 직원들을 모아놓고 마음껏 아이디어를 펼치게 하는 게 지마켓의 방식"이라며 "구영배 대표는 군림하는 대신 이들의 심부름꾼을 자처해 '구대리'라고 불린다"고 소개했다. 

'구대리'가 경영적 차원에서 어떤 의미인지 구 회장이 직접 기고문을 통해 설명한 적도 있다. 구 대표는 2009년 2월 11일자 <한국경제> '손을 더럽혀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른 분야 일까지 굳이 해봐야 하나 생각이었지만 막상 기계를 다뤄보니 옆에서 보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며 "그때부터 '손을 더럽혀라(Make your hands dirty)'는 말처럼 경험을 최고의 자산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가 특히 강조한 경험은 고객 입장에서의 경험이다. 

"사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필자는 온라인쇼핑을 통해 전자제품, 생필품 뿐만 아니라 생선까지 다양한 상품을 직접 구매한다. 고객의 입장에서 경험해 볼 수 있어 아무리 바빠도 물건을 직접 사고 서비스를 이용한다. 쇼핑을 하다 고쳐야 할 점을 발견하면 지체 없이 담당자에게 연락을 하기 때문에 몇몇 직원들은 우스갯소리로 필자를 가장 까다로운 고객 중 한 명이라고 말한다."

결국 구 회장의 당시 경영철학은 "사람이 핵심"이란 말로 요약된다. 그는 <아이뉴스24> 인터뷰에서 "지마켓 성공의 비결은 그동안 헌신적으로 일해온 직원들"이라며 "사업의 성공 역시 사람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고객 입장이 최우선이어야 하고, 그래야 고객 니즈에 잘 대응할 수 있으며, 또 그러려면 직원들의 창의성이 발현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성공 철학이었던 셈이다.

주 64시간 20분 노동 큐텐 직원... 법원 "그 고통 숙고하는 게 타당"
 
a  싱가포르 기반의 전자상거래(이커머스) 플랫폼 큐텐 계열사인 위메프와 티몬 정산 지연 사태가 점차 확산되고 있는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티몬 본사의 모습.

싱가포르 기반의 전자상거래(이커머스) 플랫폼 큐텐 계열사인 위메프와 티몬 정산 지연 사태가 점차 확산되고 있는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티몬 본사의 모습. ⓒ 연합뉴스

구 회장은 이와 같은 성공 신화를 뒤로 하고 2010년 싱가포르로 떠나는데 그때 이베이와 합작해 설립한 회사가 바로 큐텐이다. 그리고 종전에 알려진 "사람이 핵심"이라는 그의 경영철학과는 상반되는 사건이 큐텐에서 일어난다. 2021년 9월 구 회장은 직원에게 주 52시간 초과 근무를 시킨 혐의로 2심 재판에서 1심에 이어 벌금형을 선고받는다.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2018년 7월 11일 고인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다고 판단하였다. 한 사람이 죽음에 이르게 될 정도의 고통이 있었다면 그 고통이 무엇이었는지 숙고하는 것이 타당하고... (중략) 과중한 업무가 그 원인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서울중앙지법 2019고단77○○ 판결문 중)

1심 재판부가 판결문에 표를 통해 적시한 해당 직원의 주 5일(2014년 11월 24일 ∼ 11월 28일) 근무시간은 64시간 20분이었다. 9시 20분에 출근해 다음 날 6시 50분 퇴근(19시간 30분)한 것이 월요일이었고, 화요일에는 10시에 출근해 당일 23시 50분에 퇴근(11시간 50분)했으며, 수요일과 목요일에도 각각 12시간 40분과 12시간 20분을 근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요일의 경우는 8시간 근무로 추정됐다. 

2심 재판부도 "이 사건 회사에서는 과중한 업무량을 부과하고 이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하는 근로가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피해 근로자의 사망 이후 회사 내에 법정근로시간 준수를 위한 시스템을 갖고 관행을 개선하려는 별다른 조치나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직접적으로 업무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거나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로서 대부분 기간을 해외에 체류해 업무량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거나 관여할 수 없다"는 변론보다는 구 회장의 경영적 책임에 더 무게를 뒀던 것이다.

"고객의 입장에서"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상황
 
a  싱가포르 기반의 전자상거래(이커머스) 플랫폼 큐텐 계열사인 위메프와 티몬 정산 지연 사태가 점차 확산되고 있는 25일 서울 강남구 티몬 본사 앞에서 환불을 원하는 피해자들이 우산을 쓰고 사측을 기다리고 있다.

싱가포르 기반의 전자상거래(이커머스) 플랫폼 큐텐 계열사인 위메프와 티몬 정산 지연 사태가 점차 확산되고 있는 25일 서울 강남구 티몬 본사 앞에서 환불을 원하는 피해자들이 우산을 쓰고 사측을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현재 티몬·위메프 사태와 관련하여 알려지고 있는 사실 역시 "사람이 핵심"이라는 구 회장의 지마켓 성공 당시 경영철학과 동떨어져 있긴 마찬가지다. 보도에 따르면 티몬과 위메프는 정부에 퇴직연금 규약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퇴직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으로 이들 업체가 퇴직금을 자체적으로 적립하지 않았다면 직원들은 퇴직금을 받기 어려워진다. 

대통령실까지 나서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소비자와 판매자 피해가 커지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란 입장을 밝힌 상황인데도, 정작 티몬이나 위메프 홈페이지에서는 25일 오후 5시 현재까지도 현 사태에 대한 사과문이나 공지사항이 눈에 띄지 않는다. 구 회장이 과거 강조했던 "고객의 입장에서"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현 사태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구 회장의 사재 출연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벌써부터 대두되고 있다. 그만큼 구 회장의 책임과 역할이 매우 크다는 의미다. 최근 싱가포르에서 급히 귀국한 구 회장은 "지금은 상황을 안정화시키고 있는 상황"이라며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가 구 회장에게 지마켓 성공 당시 밝혔던 자신의 과거 경영철학을 돌아보는 '거울'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티몬위메프 #큐텐 #구영배 #지마켓 #인터파크커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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