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2주기 추모식이 11월 23일 오후 서울 광화문네거리 동화면세점앞에서 육사총구국동지회, 전국구국동지연합회 주최로 열렸다. 12.12군사반란 핵심이었던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이 참석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권우성
지난 11월 23일 뉴스를 보다가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서울의 도심 한복판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 서거 2주기 구국 추모제'를 열었다는 소식이다. '서거'와 '구국 추모'라는 글귀를 버젓이 내거는 망동에, 또다시 사면을 건의한 김대중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절망스럽다.
그 자리에 유독 눈에 거슬리는 인물이 등장했다. 12.12 군사 반란 당시 1공수 여단장이었던 박희도. 그는 단상에 올라 "전두환 대통령이 남긴 위업을 받들어 역사 바로잡기에 정진하겠다"며 목청을 높였다. 이는 역사적 평가와 대법원의 판결을 모두 부정하는 극우적 망언이다. 최근 개봉해 5일 현재 48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서울의 봄> 속 2공수 여단장 도희철(최병모 분)은 박희도를 모델로 만든 인물이다.
그는 은혜를 배신으로 갚은 군인으로도 악명이 높다. 12.12 군사 반란 당시 직속상관인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지시에 항명하고 체포에 앞장선 자다. 1년 전인 1978년 말, 지휘하는 부대의 작전 실패로 인해 강제 전역당할 위기에 내몰렸을 때 정병주 특전사령관이 나서서 그를 구해주었다.
이후 그는 반란의 1등 공신으로 승승장구하며 과거 은인의 자리였던 특전사령관을 꿰찼고, 급기야 육군참모총장 자리에까지 오른다. 전두환 정권 내내 군부의 최고 실력자로 군림하며 호가호위했다. 혹자는 그를 두고 '줄 잘 서야 성공한다는 걸 온몸으로 증명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박희도의 1공수 여단이 저지른 만행, 그리고 정선엽
박희도는 대한민국지키기 불교도 총연합 상임회장과 서북청년단 상임고문이라는 직함을 달고 극우 집회의 단골손님으로 활약 중이다. 그런데, 그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떠오르는 인물이 한 명 있다. 12.12 당시 그가 지휘한 반란군의 총에 맞아 숨진 국방부의 초병 정선엽 병장.
12월 12일 자정을 갓 넘긴 시각, 무력으로 육군본부를 제압한 박희도의 1공수 여단은 곧장 국방부 점령을 시도한다. 두 곳만 수중에 들어오면 반란군의 최종 승리로 끝나게 될 판이었다. 당시 정선엽 병장은 국방부 정문을 지키며 상관의 지시 없이는 무장 해제할 수 없다고 버티다 반란군의 총격에 사망한다.
그의 죽음은 지금껏 '순직'으로 기록됐다 무려 43년이 지난 작년에 와서야 진상이 밝혀졌다. 작년 초 대통령 직속의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 위원회는 군 작전일지와 관련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전사'로 변경할 것을 요청했고, 결국 국방부는 수용했다. '적에 맞서 싸우다 사망했다'는 사실을 공인받은 셈이다.
당시 박희도의 1공수 여단은 그의 사망 원인을 계엄군 간의 오인에 의한 총기사고로 왜곡하고 은폐했다. 심지어 총에 맞아 쓰러진 그를 확인 사살하는 만행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는 반란군에 맞선 의로운 군인이었으나, 신군부에 의해 '반혁명군'으로 낙인찍혀 한때 현충원 안장이 거부되기도 했다. 그의 가족이 풍비박산 난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1995년 검찰은 신군부의 수괴인 전두환과 노태우를 기소했다. 검찰의 흑역사로 기록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망언이 나온 직후다. 국민의 비난 여론이 들끓자 김영삼 대통령은 검찰에 특별 지시를 내렸고, 국회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나섰다.
검찰이 기소한 혐의는 12.12 군사 반란 수괴, 상관 살해 미수, 초병 살해 등 총 6개다. 이 중 초병 살해 혐의는 정선엽 병장의 사망과 관련된 것이다. 대법원이 전두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이유 중 하나였지만, 정선엽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천신만고 끝에 국방부로부터 그의 '전사 확인서'는 발급됐지만, 정선엽 병장의 온전한 명예 회복을 위해선 아직 갈 길이 멀다. 그의 죽음이 '순직'에서 '전사'로 바뀐 건 첫걸음을 내디딘 것일 뿐이다. 그의 이름이 정의로운 대한민국 군인의 표상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의 행적이 존경받을수록 그를 학살하고 직속상관을 배신한 박희도와 같은 자들의 만행이 더욱 도드라질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물구나무선 가치관을 바루는 일이기도 하다. 평생 "반란군에 순순히 항복했다면 살아남았을 텐데"를 되뇌다 돌아가셨다는 정선엽 병장의 어머니께 적어도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친 참군인"이라는 위로라도 건넬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동신고 운동장에 자리한 '정선엽 추모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