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가 떨어졌는데요. 총무님, 어려우셔도 마트에 다녀오셔야겠슈."
마을 들어오는 길로 자꾸만 들어오는 차들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덕림마을 축제추진위원회 총무는 이 말을 듣고 대답할 사이도 없이 뛰어나갔다. 벌써 두 번째 행보였다.
지난 5월 31일 충남 부여군 장암면 점상3리(덕림 마을)의 반딧불이 축제 기사를 <오마이뉴스>에 썼었다. 마을에 반딧불이가 출현하는 야간 경치가 좋은 곳이 있고 주민 주도적인 축제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관련 기사: 여기로 오세요... '반딧불이' 별천지가 펼쳐집니다 https://omn.kr/28uv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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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1일 덕림마을 반딧불이 축제에 모여든 인파 내가 쓴 오마이뉴스 기사를 보고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덕림마을이 술렁술렁, 북적북적 했다. ⓒ 오창경
환경이 거의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아서 불편한 축제라고 공언했고, 환경 보전 문제도 있고 해서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고 기사를 썼다. 그렇기에 초청장을 보낸 지역 사람들만 올 줄 알았다. 덕림마을 사람들도 외부인들의 방문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로 국수를 삶았고 행사 준비를 했다.
그런데, 오후 6시가 가까워지면서 놀랄 일이 벌어졌다. 차량이 마을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축제 추진위원장과 마을 사람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대외적인 행사를 주도해 본 경험도 없고 축제의 개념도 잘 모르는 순박한 시골 마을 사람들이 벌인 일이 너무 커졌다.
"현수막을 두 장 밖에 안 걸었는디 그걸 보고 오는 건 아닐텐디, 이게 어쩐 일이래유."
"반딧불이를 보겠다고 이 많은 사람들이 이 골짜기까지 찾아서 온 거, 맞남유?"
마을 사람들은 들어서는 차량과 멀리 주차해 놓고 걸어오는 인파를 보고는 놀라서 말문을 잇지 못했다. 차량을 통제하고 주차와 축제장 안내를 담당했던 마을 주민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진땀을 흘렸다.
"아니, 어디서들 오셨슈? 우리 마을을 어떻게 알고 온거유?"
마을 안내를 맡았던 총무님은 외부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인터넷 기사를 보고 왔죠. 반딧불이 나오려면 아직 멀었죠? 우린 울산에서 왔는데요"
"뭐라구유? 그 멀리서 그까짓 반딧불이를 보러 왔다구유. 보통 정성은 아니네. 근디 큰일 났네, 손님 맞이할 준비도 제대로 안 됐는디...."
서울, 부산, 울산... "반딧불 보러 해외 가려다 여기로 왔어요"
연달아 들어오는 사람들은 가까운 도시인 대전과 군산뿐만 아니라 서울, 부산 등지 먼 곳에서도 온 사람들도 있었다. 사진가들이 많이 찾아올 거라는 예상과 달리 연인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쓴 기사가 <오마이뉴스>를 통해 포털 사이트들에도 올라왔다는 것은 찾아오는 사람들이 알려줘서 알았다. 그 기사가 일으킨 파장이 이렇게 클 줄은 기사를 쓴 나조차도 짐작하지 못했다. 반딧불이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존재라는 것을 확인한 셈이었다.
"우리 마을이 생긴 이래 최대의 사람들 왔네유. 이걸 어쩔거유. 기자님이 책임지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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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딧불이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든 사진가들 대낮부터 찾아와 반딧불이 사진을 찍기위해 좋은 위치를 선점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하는 사진가들 ⓒ 오창경
주차 안내를 하다가 지쳐서 손을 놓고는 흐르는 땀만 닦던 마을 사람들이 나를 돌아보았다. 나 역시 기사를 보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기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날 덕림마을에는 불빛 없는 밤길을 뚫고 자정을 넘도록 찾아오는 사람들로 한밤중 농로까지 막히는 교통 대란이 일어났다.
이날 덕림병사 앞은 초저녁부터 허공만 바라보는 사람들 때문에 마치 하늘이 쫙 갈라지는 이적이라도 기다리는 신흥 사이비 종교 집단 같았다. 덕림마을 사람들은 전국에서 반디(반딧불이)를 보러 온 사람들을 더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저는 이 반딧불이를 보러 코타키나발루에 가려고 했어요. 기사를 보고 바로 여기로 온 거예요. 너무 환상적이에요. 이제 외국에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축제 날(6월 1일), 덕림마을 반디들은 기다리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정도로, 하늘의 별들이 허공에 내려와 춤을 추는듯한 풍경을 실컷 보여주었다. 초등생 아들과 동행한 어떤 아빠는, '반디들을 충분히 보고 즐기고 가슴에 품고 돌아간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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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부여의 아직 공개되지 않은 반딧불이 스팟 덕림마을의 반딧불이를 계기로 시골마을의 반딧불이 핫플레이스 몇 군데를 찾았다. 별자리, 은하수 라는 단어만으로도 동화같은 시골의 밤을 제대로 즐기게 되었다. ⓒ 양병관
덕림마을 반딧불이 축제는 성공적이었다. 그날 이후 열흘 간 덕림마을에는 늦은 시간까지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6월 10일 무렵에서야 반딧불이들의 짝짓기 시기가 끝나면서 방문객들의 발길이 줄기 시작했다. 앞서 유명 관광지에서나 볼 수 있는, 인파가 몰린 풍경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했던 덕림마을 사람들은 의아해하면서 다른 동네에 자랑하기에 바빴다.
'그까짓 반디가 뭐 대단한 거라고...' 했던 몇몇 덕림마을 사람들은 그제야 다른 데는 없는 소중한 자원이, 자기 동네에 살고 있다는 자존감이 반디처럼 반짝반짝 빛을 내며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우리 논에 토종 우렁이가 그렇게 많대유, 그게 반딧불이 먹이라면서유? 잡아 오려다가 반디들 한티 양보했슈."
덕림마을 사람들은 환경 보전과 제초제, 살충제 남용과 빛 공해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반디가 일으킨 작은 불빛이 덕림마을 사람들의 자존감 상승과 함께 농촌살이의 패러다임을 바꾸게 했다.
내친김에 반딧불이로 마을 사업을 잘 진행하고 있는 지역까지 선진지 견학을 다녀오는 열의를 보이며, 내년 반딧불이 손님맞이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반딧불이처럼 나도 둥둥 떠다니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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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림마을 반딧불이와 별자리 시골마을의 밤의 세계는 반딧불이 뿐만 아니라 별자리, 은하수도 있다. ⓒ 양병관
반딧불이 기사로 덕림마을 사람들의 자존감을 상승시킨 보람과 함께 나한테는 '밤드리 노니다가~(신라 향가 <처용가> 중)' 밤 12시 넘어서야 집에 들어가는, 소위 '바람이 나는' 일이 생겨버렸다. 어느 날 불쑥 내게 날아온 반딧불이들 때문이었다.
자려고 누우면 천장에 별자리 같은 반디들이 날아다니는 듯해 자리를 박차고 덕림마을로 향했다. 그날은 반디들이 얼마나 나왔는지, 사람들은 여전히 찾아오는지, 마을을 돌아보고 덕림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밤 늦게 집에 돌아오곤 했다.
깜깜한 밤, 하늘만을 향해 열린 숲 속에서 사람들이 그들이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이상한 풍경 속에 항상 나도 있었다. 그렇게 반딧불이처럼 둥둥 떠다니던 밤이 거의 보름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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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림마을 사람들의 선진지 견학 반딧불이로 마을 사업을 잘 진행하고 있는 지역을 찾아간 덕림마을 사람들
ⓒ 오창경
그것뿐만이 아니다. 나는 주변에서 반디가 나올만한 장소들을 찾아다니는 밤도깨비 짓까지 했다. 불빛은 없고 사진 경관은 좋은 곳들을 한밤중에 찾아다니며 반딧불이 무리와 조우하기를 기다렸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오지랖이 태평양이라, 한밤중에 불빛이 없는 곳을 찾아 개체수를 확인하는 짓까지 하게 되었다.
어둠이 내리면, 숲은 물론이고 불빛이 없는 곳은 절대 가지 않고 살았던 나의 라이프 스타일을 반딧불이들이 바꿔놓았다. 덕분에 내가 사는 지역의 반딧불이, 은하수, 별자리 '핫 플레이스'를 다 알게되는 한편, 아름답고 환상적인 시골 밤의 세계에도 눈을 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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