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 전 쌍방울 그룹 회장이 지난 7월 12일 오후 경기 수원시 수원지방법원에서 진행된 뇌물공여 및 정치자금법위반, 외국환거래법위반 등 혐의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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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열린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항소심 재판에서 재판장인 문주형 부장판사의 질문은 날카로웠다. 증인으로 출석한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과 이 전 부지사 측 변호인의 문답이 오가는 도중 갑자기 끼어들며 아래와 같이 물었다.
"(증인은) 리호남이 술을 잘 못한다고 했다. 리호남이 (2019년 7월 필리핀에서 열린) 2차 국제대회 때는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얼굴을 보인 사실도 없다고 했다. 그런데 (2018년 11월 말 중국 심양에서) 리호남과 김성혜(아태위 실장 겸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 박철(아태위 부위원장)을 비롯해 쌍방울 직원들이 같이 술을 같이 마셨다고 했다. 반 공개적으로 얼굴을 드러낸 거 아닌가? 북측 인사들만 있는 게 아니라 쌍방울 직원들도 있는데서 리호남이 얼굴을 보였다고 한 거다. (증인은) '리호남은 다른 사람이랑 술자리 안 한다, 둘이만 만난다' 했는데 그 말과 지금 술자리 모임하고는 모순되는 느낌이 있다."
이에 대해 김 전 회장은 다소 당황한 듯한 모습을 보이며 "(2018년 11월 말은) 처음 인사하는 자리였다. 리호남이나 박철이나 나이가 비슷한데, (나이 어린) 김성혜에게 고개를 숙이더라. 제가 양주를 많이 마셔서... 아마 김성혜가 와서... (리호남은) 서 있고 했다. 김성혜 때문일 것"이라고 답했다.
문 재판장은 김 전 회장을 향해 '리호남이 (2018년 11월 중국 심양 술자리에서) 얼마나 있다가 현장을 떠났냐'라고 확인했고, 김 전 회장은 "헤어질 때는 술이 많이 취해서, 의식을 잃을 정도라서, 리호남이 얼마나 오래 있다 갔는지 모른다"라고 했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의 진술을 근거로 북한 공작원 리호남이 2019년 7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2차 국제대회에서 쌍방울 측으로부터 70만 달러를 받았으며, 이것이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의 방북 비용 중 일부라는 입장이다. 검찰은 지난 6월 1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 전 부지사 등을 묶어 제3자 뇌물 혐의로 기소한 상황이다.
'리호남 부존재' 캐물은 부장판사의 질문
이날 문 부장판사는 작심한 듯 2019년 7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2차 국제대회 당시 김 전 회장이 리호남과 만났다는 상황을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특히 리호남이 어떤 과정을 거쳐 필리핀에 오게 됐는지를 집중적으로 확인했다. 다소 길지만 재판정에서 오간 문답을 그대로 전한다.
재판장 : "리호남을 만나서 70만불 줬다는데, 그럼 리호남과 어떻게 만나기로 한 거야?"
김성태 : "사전 합의할 때 오기로 약속했다."
재판장 : "사전합의면 언제?"
김성태 : "(2019년) 5월이다."
재판장 : "(2019년) 5월 12일 합의할 때, 방용철(전 쌍방울그룹 부회장)이 방북비용 협상하고 했을 그 무렵인가? 300만불 이야기할 때인 건가? 그때라면 다음 국제대회에서 돈을 받겠다는 것까지 (논의가) 있었다는 거냐?"
김성태 : "필리핀에서 준다는 건 협의가 안됐다. 본인이 온다고 약속을 했다."
재판장 : "와서 받아간다고? 리호남이 왔다는 건 당시에 그럼 어떻게 알았나?"
김성태 : "저희한테 연락이 왔다."
재판장 : "누가?"
김성태 : "방용철 위챗(중국 SNS)이나, 채OO이라고, 직원 통해서 연락이 왔다."
재판장 : "리호남 본인이 연락했다는 건가?"
김성태 : "그건..."
재판장 : "증인은 모르는 거네."
김성태 : "언제 온다 하면 어디로 오라고 하면. 몇 시에 만나자 하면..."
재판장 : "그럼 약속시간과 장소는 누구한테 들었나?"
김성태 : "방용철이나 채OO 통해 들었다."
재판장 : "방용철이나 채OO 통해 들었다는 거고, 둘에게 리호남 측에서 연락을 한 것 같다는 거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디서 몇 시에 보자고 한 기억은 나나?"
김성태 : "저녁 때... 저녁 식사하고. 본 걸로 안다."
재판장 : "저녁식사를 하고... 그러니까 그 시간과 장소 약속을 듣고 갔을 거 아니야? 그걸 어느 내용으로 들었냐는 거야? 기억나는 거 아니야?"
김성태 : "그것까지는... 어디로 왔는지 모른다. 제 숙소 어디니 거기로 오라는 내용이다."
재판장 : "숙소 근처에서 봤다는 거야?"
김성태 : "호텔에서 봤을 거다."
재판장 : "증인 숙소, 어느 호텔이었나?"
김성태 : "켄싱턴인가... 거기 아니면 오카다(호텔)... 두 곳 중 하나다."
재판장 : "국제대회 당시에 두 군데인데, 그중 한 군데로 왔다는 거네."
김성태 : "네."
재판장 : "증인 호실로 왔다는 건데, 리호남은 어떻게 왔나? 혼자 왔나?"
김성태 : "제가 연락은 안 하지만, 호텔 몇 호라고 알려줬다."
재판장 : "직원이 모시고 왔다는 거네. 로비에서."
김성태 : "그것까지는 제가... 직접 온 걸로 안다."
재판장 : "리호남이 직접 와서 만났나? 만난 자리에 누가 왔나?"
김성태 : "처음에 생각할 때는 이화영이랑 같이 있어서 온 걸로 기억을 했는데, 그거는 그날 좀 죄송하지만... 술을 많이 먹어서... 누가 왔는지는... (리호남은) 둘이 있기를 좋아한다."
재판장 : "리호남이? 증인과 리호남이 있었는데 이화영이 있었는지는 모른다는 거고."
김성태 : "네. 2박 3일인가 (국제대회) 행사를 해서... 헷갈린다. 리호남이 이화영을 같이 보자고 했는데. 이화영이 보기 싫다고 해서 안 본 거 같다."
재판장 : "일단 둘이 봤다는 건데, 쌍방울 관계자는 방에 없었나?"
김성태 : "둘이 만났다."
재판장 : "둘이 봤는데, 기억 분명하지 않다? 리호남은 얼마 정도 머물렀나?"
김성태 : "두세 시간 머물렀다."
재판장 : "술도 마셨어?"
김성태 : "마셨다."
재판장 : "다과상도 있었나?"
김성태 : "리호남이 와인을 좋아해서... 과일 조금"
재판장 : "두세 시간 말하고 돈을 전달했다는 건가?"
김성태 : "네."
문 부장판사는 "그럼 리호남을 필리핀에서 본 사람이 증인 이외에 방용철이 봤을 수도 있고, 안 봤을 수도 있고, 이화영은 못 봤다는 말이다. 나머지 쌍방울 직원들이 본 사람은 있냐"라고 물었다. 이에 김 전 회장은 "채OO이 봤을지도 모른다"면서 "채OO은 소통을 하는 사이다. 다만 리호남은 저랑 만날 때는 누가 옆에 있는 걸 싫어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전 회장은 "리호남은 국제대회 뿐 아니라 그전에도 사진을 찍거나 그런 거 없다. 절대 없다"라고 덧붙였다.
이를 고려한 듯 검찰은 반대신문에서 김 전 회장에게 "리호남은 북한 공작원이라서 동선노출을 피하려고 항공 등도 노출하지 않고, 자기 숙박이나 이런 것들을 노출 안하는 게 맞지 않냐. 리호남의 여권이 여러 개 있다고 채OO이 말했다. 리호남의 숙박비를 제공하지 않은 게 맞지 않냐"라고 동의를 구했다. 김 전 회장은 "네"라고 답하며 "리호남은 어느 어느 호텔에 머무는지 모른다. 갈 때 차비하라고 돈을 줘도, 본인에 대해 알려주는 거 싫어한다. 리호남은 항상 혼자 다닌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리호남이 2차 국제대회에 존재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이날 법정에서도 확인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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