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한국사회, 제3의 길은 없는가

현대·동아건설의 몰락, 그리고 우리들의 삶

등록 2000.11.01 15:10수정 2000.11.01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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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가 다시 흔들리고 있다.

지난 60-70년대 경제성장 신화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현대건설은 급전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1차 부도를 내고 가까스로 최종부도는 막았지만, 연말까지 버티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동아건설은 퇴출위기에 직면했고, 연대 채무보증을 섰던 대한통운까지 법정관리 신청 수순에 들어갔다. 이들 대기업의 몰락이 얼마나 많은 하청기업과 직원들에게 피해를 안겨줄지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현대건설과 동아건설의 몰락은 그동안 추진된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정부가 'IMF 위기 졸업'을 말한지 2년이 다 되었건만, 정작 대표적 부실기업들이 여전히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화근 덩어리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들 부실기업에 대한 정부의 원칙적인 처리방침이 알려지자 연쇄부도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주가가 상승하고 있는 사실은, 이들 부실기업에 대한 신속하고도 원칙적인 처리를 정작 시장은 요구해 왔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정부의 우유부단한 정책이 상처를 더욱 곪게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대마'(大馬)의 죽음이 가져올 충격파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이들 기업에 끌려다닌 것이 문제가 된 셈이다.

정부가 구조조정에 따른 고통의 감수를 국민에게 설득하는 사이에도, 정작 대기업 집단들은 정부의 의지를 시험하며 여전히 경영권다툼, 변칙상속, 차입경영같은 구태를 반복하였다. 그 결과가 오늘 다시 겪고 있는 혼돈이다. 정부는 조만간 퇴출기업 명단을 발표하며 다시 구조조정의 고삐를 당긴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다시 서둘러야 할 일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 드리워져 있는 침체와 절망의 그늘은 단지 수십 개의 기업들을 시장에서 퇴출시킨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니다. 거기에는 좀더 근본적인 우리 사회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2000년의 한국사회는 체념과 절망의 땅이 되어가고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부(富)를 거머쥔 일부 계층을 제외하고는 너나 할 것 없이 고통을 겪고 있다.


수많은 봉급생활자들은 제자리 월급에 늘어만 가는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한 채 적자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교사 남편의 월 228만원 박봉(?)을 호소한 어느 교사 부인의 하소연이 네티즌 사이에서 논란거리가 되었지만, 13년 교직생활에 적자 가계부를 하소연하는 처지나 '그래도 나보다 훨씬 낫다'고 이를 야유하는 네티즌이나 처량하기는 매한가지이다.

'대박'의 꿈을 향해 퇴직금을 털고 대출을 받아 코스닥 시장에 뛰어든 수많은 '개미'들은, 이제 원금의 10분의 1밖에 남지 않은 계좌를 놓고 한숨을 내쉬고 있다. 부도와 구조조정으로 거리로 내몰리고, 주식투자로 빚더미에 오른 슬픈 사연들이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다.

이제 '어렵다'는 말은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구성원들 대부분의 입에서 나오는 탄식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과연 희망은 있는 것일까. 오늘의 고통을 참고 견디고 나면, 그래도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은 가능한 것일까. 그 희망조차 보이지 않을 때 우리 사회는 체념과 절망의 늪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한 희망은 고통도 이익도 같이 나눈다는 사회적 신뢰가 존재할 때만 가능하다. 고통은 전가받고 이익을 배분할 때에는 소외된다고 생각하는 계층이 광범하게 존재하는 한, 그 사회는 발전의 동력을 찾기 어렵다. 사회적 재분배를 통해 사회구성원 대다수가 안정감을 갖게 될 때, 비로소 그 사회는 내일의 희망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독일 총리 슈뢰더는 경쟁력 강화를 통한 사회복지체제의 유지를 독일식 '라인 모델'의 성공비결로 꼽고 있다. 참여민주주의형 원리에 기초한 사회적 시장경제야말로 독일사회가 발전하는 활력이 되어왔다는 것이 슈뢰더의 견해이다.

반면, 동아시아 발전모델을 거쳐 IMF 사태의 파국을 맞고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모델에 경도되어 있는 한국사회에서는 중산층을 포함한 사회구성원 대다수의 삶이 몇몇 대기업집단에 의해 휘둘리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현정부 역시 '생산적 복지'의 개념을 제시하고 국민의 기초생활을 보장하려는 등 사회적 시장경제의 문제의식을 갖고는 있었지만,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후방에 위치하는 한계를 드러내었다. 그 결과, 지금까지의 정책과 현실로는 사회구성원들의 정상적이고 균형있는 삶이 보장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눈앞의 기업 구조조정도 필요하지만, 사회구성원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희망이 필요하다. 오늘의 고통을 넘어선 후에 우리는 어디에 서 있게 되는 것인가. 이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제3의 발전모델을 찾기 위해 우리는 IMF 사태 이후 3년 남짓하게 걸어온 길을 자성과 함께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참고 견디라는 말과 함께, 그러고 나면 무엇이 달라지는 것인가를 말해줄 수 있는 정부를 우리는 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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