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속에 고이 간직한 다큐멘터리

외규장각 고문서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박병선 박사

등록 2001.02.08 00:32수정 2001.02.08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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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1월의 마지막 월요일 늦은 밤. 나는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몇 년 동안 내 가슴 속에 고이 고이 간직하고 있던 보물 하나를 빼앗긴 기분이었다. 가슴 깊숙히 묻고 있었던 어떤 이야기, 아니 언젠가는 내가 하고야 말겠다고 매년 다짐해 오던 어떤 다큐멘터리 기획을 빼앗긴 듯한 데서 온 허전함이었다.

KBS ‘한민족 리포터’에서는 200년 해외동포상을 받은 사람들을 다룬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다. 그 주의 주인공은 파리 국립도서관 사서로 있으면서 프랑스가 약탈해 간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들의 존재를 알렸던 사학자 ‘박병선’박사였다.


‘고문서에서 찾은 자존의 역사, 박병선 여사’. 50분 인물 다큐멘터리치고는 해외 촬영이라서 그런지 작품성이 그리 뛰어나지 못했다. 방송 다큐멘터리의 한계라고나 할까? 그녀의 현재 삶의 모습 몇 컷으로 그녀의 인생, 그것도 파란만장한 만큼 위대한 일들을 일구어낸 격정적 삶 전체를 보여주려고 애쓰고 있었다.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이해도 가능하다. 길면 열흘 정도의 해외 촬영의 여유가 주어졌을테고 거기에 약간의 자료화면을 이용해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 하니 담당 연출자도 어찌할 수 없이 최선의 수준에서 수습을 하는 작품이었을지 모른다.

오늘 이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꺼집어 낸 것은 작품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바로 박병선이라는 인물 때문이다. 그녀는 다큐멘터리 감독에 대한 막연한 꿈을 가지고 있던 내게 좀더 확실한 꿈을 그릴 수 있게 해 주었다.

내가 박병선 여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조연출로 막 방송일을 시작하던 96년도였다. 당시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고문서의 반환을 둘러싼 조그만 잡음들이 있었다. 93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이 방한시 고문서의 반환을 약속했는데 그가 돌연 죽고나서 반환을 위한 협상이 전혀 진전되지 않고 있었다. 이미 국내 방송에서 프랑스가 약탈해 간 외규장각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있었지만 시의성을 생각해서 다시 한번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보고자 자료 조사를 할 때였다.

외규장각 관련 신문기사들을 이리저리 뒤지는데 몇 건의 기사에서 아주 짤막하게 박병선 박사를 언급한 내용들이 있었다. 아주 짤막한 언급들이었지만 왠지 끌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접을 수가 없었다.


1934년 서울 태생, 1955년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 취득, 1972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의 직지심경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임을 밝혀냄, 1978년 베르사이유 국립도서관에서 외규장각 문서 발견, 1979년 10월 외규장각 문서의 존재 밝힘, 1980년 국립도서관 사서직 사직, 1993년 프랑스에서 발견된 300여권의 외규장각 문서를 해석한 요약본 발행.

그녀가 프랑스에서 있으면서 밝혀낸 우리 선조들의 두 문화재는 박병선 박사의 삶에 어쩌면 짐이었을 것이다. 외규장각 고문서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면서 프랑스 도서관쪽의 압력으로 사서직을 관둘 수밖에 없었고, 그의 업적을 치하해야 할 대한민국 정부는 오히려 그녀에게 괜한 짓을 해서 외교관계를 불편하게 했다는 비난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한 일은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나 세계사의 관점에서나 엄청난 일이었다. 쿠텐베르그의 그것으로 추정을 하던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는 직지심경으로 바뀌었고,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로부터 약탈당해 그 행방마저 묘연했던 외규장각 고문서의 존재를 세계에 알려 한불간 고문서 반환논의에 시발점을 제공한 것이다.

그리고 한자에 아직 능통하지 않은 상태에서 혼자의 힘으로 외규장각 고문서 해석서까지 내놓았다. 13년이라는 기나긴 작업이었다. 그녀의 외규장각 고문서 해석은 국내 학자들도 해내지 못했던 위대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그야말로 고단한 일이었다. 해석 작업을 위해 개인 타이프라이터를 고용하는 등 자비로 연구와 해석작업을 진행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아주 최근까지도 큰 영광이 주어지지 않았다.

처음 그녀와 그녀 주변 이야기를 이리저리 알아보고 있던 96년 겨울 나는 신문이나 언론에 보도된 내용 이상의 이야기 즉 박병선 박사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모 방송국의 파리 특파원 시절 박병선 박사와 친분이 두터웠다는 한 언론인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그 이야기를 지금 다할 수는 없지만 좌우지간 힘든 삶 속에서 묵묵히 한민족을 위해 그 어려운 일들을 그리고 본인에게 불이익을 가져단 준 일들을 해내었다는 것이었다.

박병선 박사와의 첫 전화통화가 있던 날 나는 너무나 서글펐다. 한 국가의 이익이 한 개인을 이렇게 힘들게 만들 수 있다는 현실이 싫었다. 박병선 박사는 전화 통화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한적한 파리 근교에서 살고 있다는 그녀는 한참 이야기를 한 후에 취재를 하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의사를 밝혔다. 이유는 앞에서 말했듯이 대한민국 정부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그게 고문서 반환협상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와의 통화 후 외교 통상부에 전화를 걸어 반환협상 진전 정도와 박병선 박사에 대해 문의를 했다. 하지만 담당관은 취재협조를 거절했다. 그런 취재가 잘못되면 고문서 반환에 장애가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는 그때 몇 가지 의문과 통한을 가슴에 간직한 채 사전 취재를 접지 않을 수 없었다.

첫번째 대한민국 정부의 그런 태도는 실리적인 외교인가 아니면 굴욕적인 외교인가 하는 것. 외교통상부 담당관의 태도야 물론 어떻게 해서든 고문서를 돌려 받아야 한다는 실리적인 태도이지만 침략을 통해 약탈당한 문화재를 돌려 받는 방법에서조차 굴욕적인 부분이 있다면 과연 고문서를 돌려 받는다고 해서 그 결과가 우리 민족에게 기쁜 일일 수만은 없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프랑스 사람들의 태도다. 박병선 박사가 외규장각 고문서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을 때 그녀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들로부터 비난을 들을 수밖에 없었고 따돌림을 당했다. 그리고 결국 그 도서관을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그만두게 되었다.

고문서 반환에 반대하는 프랑스 사서들의 이야기는 종종 국내 언론에도 보도되었지만 그들은 국가 이기주의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었다. 서구의 합리주의는 전세계의 역사를 바꾼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 서구의 중심에 서 있는 국가의 사람들이 그런 이기주의에 빠져 산다는 것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들의 민족이 이룬 문화적 업적도 엄청난 사람들이 왜 남의 나라에서 빼앗아 온 문화재에 대해서 그렇게 집착하고 내놓지 않으려는 것인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세번째는 박병선 박사의 고단한 삶의 역정이다. 과연 그녀는 무엇 때문에 개인을 희생해 가면서 한민족의 문화재를 지키려고 한 것일까? 개인적인 욕망의 소산인지 아니면 정말 범민족적인 이해때문이었는지 알고 싶었다.

이 세번째의 의문을 풀지 못한 상태였지만 나는 그때 진정으로 인생에서 존경할 만한 사람을 만난 듯했다. 아마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세종대왕에서 박병선으로 바뀌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요즘도 가끔 언론에서 외규장각 고문서 반환 논의에 대한 보도가 나오면 나는 박병선 박사를 생각한다. 어떤 형태로든 고문서가 반환된다면 그 영광은 박병선 박사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녀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이미 만들어졌다. 수박 겉핧기 식으로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다시 그녀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원래 방송 다큐멘터리에서 남이 한번 다룬 아이템을 다시 다루려고 하지 않는 것이 관례이며 PD들의 주된 성향이다.

하지만 박병선 박사의 경우는 다르다. 그녀에게는 아직 못다한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외규장각 고문서를 둘러싼 이야기는 무궁무진하게 남아 있다. 그 못다한 이야기들을 언젠가 내가 실력있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면 그때 반드시 다루어 보고자 하는 것이 내 작은 소망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의 드가가 제공합니다. '드가(박성호)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방문하시면 다큐멘터리에 관한 풍부한 정보들을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http://myhome.shinbiro.com/~fhu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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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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