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수록 볼 만한 리옹

<김현종의 유럽통신> 프랑스 4편

등록 2001.07.12 14:48수정 2001.07.17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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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구경을 마친 우리 가족은 약 4백 킬로미터를 달려 리옹에 도착했다. 떠나는 순간까지도 파리에 며칠 더 있자는 의견이 강했으나 정해진 일정상 파리 방문은 3일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혹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유럽 여행에 나설 후인들에게는 파리나 로마 같은 도시는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할애하도록 권하고 싶다.

수도는 그 나라 모든 것의 상징이자 그 상징적 의미 이상으로 많은 역사와 문화 유산을 가진 곳이다. 역사, 문화기행의 경제성 측면에서 얘기하자면 투자한 이상의 수확을 쉽게 거둘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하고 싶다.


프랑스 제2의 도시인 리옹은 그러나 이런 아쉬움을 많이 달래주었다. 우선 리옹으로 가는 길은 드라이브를 즐기는 사람에게 환상적인 코스다. 파리에서 남남동 방향으로 450킬로미터 안팎. 파리를 빠져나와 30여 킬로미터 달리면 우선 아름다운 바르비종 마을을 거쳐간다.

19세기 중반, 프랑스 정부는 대화재로 인해 파리 시내의 화가들이 일할 터전을 잃자 화가들을 이 마을에 집단 정착토록 지원했다. 밀레, 뒤프레, 루소 같은 미술사 속의 바르비종 파는 이렇게 태어났다. 아름다운 바르비종의 자연환경에서 마음껏 자연 그대로의 그림을 그린 것이다.

좀더 남쪽으로 달리면 바르비종을 능가하는 경관좋은 마을들이 즐비하다. 파리- 리옹간 도로 양편은 대부분 완만한 구릉과 그 위의 녹색 숲, 한쪽 평야의 노란 유채꽃과 밀밭, 푸른 하늘, 하얀 구름이 배합된 산수화 그 자체이다. 시선을 눈 앞의 도로가 아닌 먼발치 풍경에 뺏기다 보니 때로 차가 비틀거릴 정도다. 특히 구름과 하늘의 조화가 일품이다. 먹구름 아닌 하얀 구름이 군데군데 양떼 모양으로, 하늘 3, 구름 1의 비율로 떠 있었다.

구름은 하늘의 깊고도 투명한 푸르름을, 하늘은 구름조각으로 빚어진 평화롭고 원근감 넘치는 흰빛을 상호 보완해주는 구도였다. 이 지방은 부르고뉴와 프렌치 알프스에 해당한다. 보졸레 포도주는 목적지 리옹에 30분 정도 못 미친 곳에서 생산되고 있으니 점심 후 파리를 출발한다면 ‘술 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까지 가세한 광경을 볼 수 있으리라.

이 코스가 매혹적인 이유 중 또 하나는 유럽 최상의 도로 조건이다. 파리에서 50킬로쯤 빠져 나오면 리옹까지의 나머지 길을 대부분 타탄 트랙으로 된 아스팔트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다. 아스팔트 위에 육상 경기장에서 쓰는 타탄 트랙을 입힌 것이다. 가속장치를 밟으면 밟는대로 차가 튀쳐 나가도록, 탄력은 극대화돼 있으면서도 주행중 발생하는 소음은 아스팔트 도로의 절반 이하이다.

여기에 도로의 회전이나 경사도 일품이다. 완만하면서도, 한국의 중부고속도로처럼 지루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회전과 경사가 적절히 배합돼 있다. 한 마디로 내가 경험한 중에서는 최고 수준의 드라이브 코스중 하나였다. 경찰도 이를 거든다. 4백 킬로미터 거리를 평균 시속 130킬로미터, 최고 시속 180, 190 킬로미터로 쏘아도 경찰은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최고의 도로 상태에서, 최고의 풍경을 보며 달리자 파리를 일찍 탈출한 아쉬움은 저만큼 사라졌다.

이 도로를 달리면서 몇 가지를 느꼈으니 우선 자동차 공업국가로서 프랑스의 명성은 이런 터전 위에서 육성된 게 아닌가 싶었다. 삼성차를 인수한 르노 자동차 회사와 푸조-시트로앵, 이 두 회사는 프랑스의 대표적 자동차 회사들로서 세계시장에서 미국, 독일, 일본 차와 함께 경쟁하고 있다. 비슷한 처지의 영국은 이미 영국산 자동차 브랜드를 포기했는데 프랑스의 두 회사는 어떻게 살아 남일 수 있었던가. 이런 도로를 보유하고 있기에, 이런 도로에서 달리는 소비자들을 만족시켜야 했기에 경쟁력이 강화된 것 아닐까.


특히 프랑스가 자랑하는 미쉐린 타어어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미쉐린 회사는 1890년대 세계 최초로 현재의 공기 타이어를 상용화하는데 성공했고, 운전자라면 한번쯤 자기 차의 바퀴에서 읽었을 레이디얼 방식의 타이어를 세계 최초로 생산한 회사다.

결국 자동차 회사의 경쟁력, 타이어 회사의 경쟁력은 무엇보다 그 나라 정부가 얼마나 양질의 도로와 도로망을 공급할 수 있느냐와 직결되는 것 아닐까 하는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이런 점에서 아산만 시험장 외에 무한 질주가 가능한 도로를 갖지 못한 국내 자동차 회사들이 딱해 보였다.


그래도 한국 타이어에서 만든 레이디얼 RA 07타이어를 장착한 현대 자동차의 4륜구동 산타페2.4는 시속 180킬로미터의 실제 프랑스 도로 주행에서도 앞뒤, 좌우 흔들림 없이, 소음도 거의 없이 잘 달려 주었다. 소음량으로 말하자면, 14년 운전 경력의 내 경험으로는 경부고속도로에서 시속 1백킬로미터로 국산 2천 시시급 승용차를 운전할 때 발생하는 소음량과 같았다. 사륜 구동차의 승차감과 소음이 이 정도라면, 상대적으로 우량한 프랑스의 도로 상태를 감안한다 해도 전체적으로 합격점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편으로 한국과 프랑스의 도로를 비교하고는 “현대차가 열악한 여건에서도 선전하는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 유럽과 중근동의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숱한 한국차를 보았고 그때마다 내심 가슴 뿌듯한 마음 숨길 수 없었던 게 사실이다. 한국차 중에서는 현대 액센트와 란트라, 소니카, 대우 마티즈, 기아 슈마가 가장 인기있는 차종이었다. ‘코리아’를 모르는 많은 유럽인들도 ‘서울 코리아’, 2002년 월드컵 코리아’하면 대부분 알아듣는다.

그래도 모르면 그 나라 거리에서 본 자동차나 기업 광고 입간판을 떠올려보고는 윤다이, 현다이, 샘송, 삼송, 다이우, 대우, 엘지의 이름을 늘어놓으면 금방 알아듣곤 한다. 생각해 보면 가방 하나 메고 유럽을 찾는 세계 1백 수십나라 국민 가운데 제 나라에서 자동차라도 만들어 수출하는 나라가 얼마나 되겠는가. 불과 10여개국 안팎이다. 유럽 거리의 국산 자동차, 국내 기업 입간판, 호텔방의 국산 티비, 냉장고 등 전자 제품들은 한국 여행자에게 심리적 안전판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리옹. 그러나 리옹에서의 두 밤을 지낼 호텔을 찾고는 또 한번 놀라야 했으니. 미리 예약해둔 호텔이 리옹의 공장 지대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것 아닌가. 물어 물어 찾아간 별 두개짜리 호텔은 우리로 치면 부평공단 한 가운데에 덩그라니 놓인 호텔과 비슷했다. 옆도, 앞도, 뒤도 모두 공장 또는 창고였다. 아이들은 호텔 바로 앞의 높다란 공장 굴뚝에서 밤이면 불길이 끊임없이 타오르자 멋있다며 좋아했지만 나는 기가 막혔다.

그러나 하루밤 7만원에 4인 가족이 잘 수 있는 호텔은 이 호텔밖에 없었다. 까르푸에서 야채와 소시지를 사서 빵에 끼워먹는 것으로 저녁을 때우고 나니 밤 10시였다.

다음날 아침 리옹에 대한 역사를 읽어보니 이 도시는 양잠과 비단 직조 산업이 자리잡으면서 산업도시로 발달한 프랑스 제2의 도시다. 중국의 장안과 낙양에서 시작된 비단길이 1만 킬로미터 이상을 달려 한 점 비단도시를 낳았으니 바로 리옹인 셈이다.

이탈리아 상인들이 동양의 비단으로 폭리를 취하자 프랑스 상인들은 이에 맞서 어렵사리 구한 누에고치를 부화시켜 거기서 비단을 짜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리옹은 이렇게 해서 비단 산업이 발달했고 이 비단 산업은 다시 섬유에 물을 들이는 염색공업의 발달을 가져왔고 이는 또 화학 공업의 발달로 이어졌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다시 이스라엘 민족의 또 누군가를 낳듯 비단에서 시작된 산업은 계속 변천하며 지금도 리옹을 먹여 살리고 있다. 최근에는 화학공업에서 파생된 정유산업과 환경오염방지 산업이 주축이라고 한다.

이처럼 리옹은 전형적인 산업 도시이다. 비행기가 나오기 전 하늘을 날던 비행선, 이 비행선을 발명한 몽골피에 형제가 리옹 사람이다. 전성기의 리옹은 유럽 최초로 증기선이 운행된 지역이었다. 론 강을 따라 50킬로를 거슬러 올라가는 증기선 항로가 열렸다고 한다. 한편으로 리옹은 영화산업의 창시자 격인 뤼미에르 형제가 태어난 곳이다. 거듭 용감한, 영특한 형제 이야기를 읽고 우리 가족은 리옹에 있는 16개의 박물관중 하나인 영화박물관, 뤼미에르 연구소로 향했다.

뤼미에르 연구소의 영화 박물관은 영화가 무엇기고 어떻게 발전했는지 잘 알려주는 곳이다. 이 곳에서는 한 장의 사진이 연쇄 활동 사진으로 발달한 이야기, 초기 영화가 감독도 대본도 없이 기록 영화로 시작했다가 차츰 작가와 감독, 배우가 있는 제7의 예술로 발달해나간 과정, 그림만 보여주던 영화가 소리까지 담게 된 기술상의 발전, 그리고 흑백의 영화가 천연색 영화로 발달해간 과정을 희귀한 과거 필름과 자료들을 통해 잘 재현하고 있다.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인 둘째딸 가온이의 일기장을 잠깐 훔쳐서 원문 그대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영화박물관에는 옛날에 영화를 만들기 위한 카메라들이 있었다. 1초에 20장을 찍어야 영화에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20장 정도의 흑백 사진들이 1초 안에 찍히니까 움직이는 동작이 나오기는 했지만 아주 부자연스러웠다. 그래도 옛날에는 캠코더 같은 것이 없었으니까. 엄마 아빠 말씀에 의하자면 옛날 흑백 영화에는 말이 안 나오고 변사가 설명해주다가 할머니 할아버지 시절부터 흑백인데 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그러다가 칼라 영화가 나왔다. 아주 옛날 사진에는 입체감이 없었고 점점 갈수록 입체감이 늘어나는 것을 사진들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실물 그대로가 영화로 찍힌다. 나는 이 시절에 좋은 영화와 사진을 보고 찍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이제는 컴퓨터 그래픽과 애니메이션까지 등장해 영화로 표현 못할 장면은 없는 듯하다. 뤼미에르 연구소(www.institut-lumiere.org)에서는 이러한 영화의 발전을 찰리 채플린 이전의 무성 영화 필름들부터 시대별 영사기, 주요 기록 영화, 영화의 원리를 설명하는 각종 기계 장치들을 통해 잘 설명해준다. 연구소 밖의 넓다란 잔디밭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온 행복한 영화광들이 어울려 영화 얘기로 시간가는줄 모르고 떠들어댄다.

연구소에서는 아울러 현대 영화 보급과 명 감독 순례 같은 행사들도 개최하고 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에는 셈 페킨파 감독 주간이었다. 그의 대표작은 스티브 코반과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주연의 ‘빌리 더 키드’, 스티브 맥퀸, 알리 맥그로우 주연의 ‘겟터웨이’ 등이 있다. 가무잡잡한 피부와 커다란 눈동자가 특징적인 알리 맥그로우, 그녀는 우리 까까머리 시절의 연인이었는데.

리옹에는 또 인쇄 박물관(Musee l’ Imprimerie)이 있다. 직지심경과 팔만대장경의 나라에서 온 여행자라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한국이 세계 최초로 인쇄술을 발명하고도 그 대중적 보급의 명예는 서양에 뺏긴 상황에서, 그들이 인쇄술에 대해 어떻게 서술할지 궁금했다.

1447년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서양의 인쇄술을 발명한 직후인 15세기말부터 리옹에서는 인쇄술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 박물관에서는 판화에 가까운 초기 인쇄부터 등사기, 윤전기, 타자기의 발명까지 인쇄의 역사를 한눈에 정리하고 있다. 또 각 시대별, 활자체별 납 활자 모음도 볼 수 있다. 초년병 기자 시절, 차가운 지성을 뜨거운 납 활자에 녹여 만드는게 신문이라고 배웠는데 이제 신문사에서도 출판사에서도 컴퓨터 타이프 세팅 시스템에 밀려났다.

인쇄 박물관의 먹물 듬뿍 묻힌 롤러들, 한장 한장씩 찍어내는 옛날 인쇄기들은 또다른 기억을 끄집어냈다. 등사(謄寫)인쇄이다. 일본말로 ‘가리방’이라고 하던, 가리방을 긁던 시절. 먹물 묻은 롤러를 얇은 청색의 스텐실 페이퍼 위에 대고 한장 한 장 밀어본 경험을 갖고 있는지. 혹 캠퍼스의 어두컴컴한 동아리 방에서, 혹 친구의 자취집에서, 혹 교회의 쪽방에서 그런 경험을 가져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인쇄가 얼마나 생각의 전파에 중요한지.

이 표현이 남루하다면, 이렇게 고쳐 말하고 싶다. “가리방 인쇄물은 우리들의 운명을 바꿔놓았다”고. “그걸 읽고 독재에 가려진 진리와 진상을 알게 되었다”고. 광주에 대한 부채감이 어느정도 의식을 지배하는 우리 세대에게 등사 인쇄는 젊은 말의 초상 중 한 정면이다.

운동권 경력이 찬란하지 못한 나로서는 대학 말년 전주 YWCA의 옥탑 방에서 야간학교 학생들의 교재와 시험지를 밀던 기억을 갖고 있다. “가리방을 밀던 날, 젊은 날, 가난한 날, 책 속의 진리를 순전( 純全)하게 믿던 날”에 대한 향수가 어느새 나를 ‘즐거운 슬픔’속으로 몰아놓었다. 아이들에게 등사 인쇄를 설명해주던 내 목소리는 어느덧 떨리고 있었으니.

인쇄술과 사람의 관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하다. 서양에서 인쇄술의 발달은 종교개혁과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루터는 교황청의 만병통치약식 면죄부 판매에 항의한 뒤 영주의 골방에 틀어박혀 성경의 독일어 번역에 착수했다.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성경을 직접 대중에게 읽히고자 한 것이다. 이때 인쇄술의 발달과 보급은 신교의 발달과 보급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아무리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해도 인쇄술이 뒷받침하지 않았으면 일반 대중은 성경을 자국어로 읽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 서양이 지리상의 발견에 나선 이후 해도(海圖)인쇄술은 이처럼 처음부터 “혁명의 동반자”였다. 리옹의 인쇄 박물관에서 무려 10여 종류에 이르는 시대별 성경 인쇄본을 보면서 해본 생각이다.

인쇄술은 아울러 언론을 만들었다. 박물관에서는 르몽드 지를 비롯한 현대의 프랑스 신문 여러 종류의 인쇄 절차를 볼 수 있다. 인쇄술은 종교적 독과점에서 벗어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이후 정보와 공론, 학문과 사상의 대중화에도 결정적 기여를 했다. 리옹의 인쇄 박물관 한켠에는 프랑스 각 지방의 문자 해독율을 시대별로 도표화 해놓은 게 있다.

리옹은 인쇄의 도시답게 수도 파리와 함께 이미 1800년에 문자 해독률 60%를 자랑하는 지역이었다. 인쇄의 발달, 높은 문자보급률, 학문과 산업의 발달, 높은 소득수준 간의 함수관계를 은근히 강조하는 듯했다.

리옹에는 또한 로마 시대의 노천 원형 극장이 잘 보존돼 있고, 19세기 후반 보불전쟁의 와중에 완공된 아름다운 교회, 생 장 성당이 있다. 노천 원형극장은 유럽 각지에서 볼 수 있는 같은 종류의 극장 중 가장 아름답고, 우아하고 탁 트인 전망과,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분위기를 갖고 있어 리옹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방문 장소로 강력추천하고 싶다. 생장 성당은 바로 극장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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