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는 조간-9월 22일> 한나라당은 북에 쌀 지원하면 안되나?

조선, "야당식 대북‘퍼주기’" 비판

등록 2001.09.21 23:04수정 2001.09.22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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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북한에 쌀 200만섬을 지원키로 한 것을 두고 22일자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야당식 대북 '퍼주기'"라며 한나라당을 다그쳤다.

"...문제는 이 제안의 주체가 한나라당이면서도 그 지원절차와 방식이 한나라당이 그토록 비판해오던 이 정부의 그것을 그대로 답습한 듯한 데 있다..."

<조선일보>는 대북 쌀 지원 제안을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해오던 한나라당이 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이 지금까지 현 정부의 대북정책 비판을 하지 않았었다면 쌀을 지원해도 괜찮다는 말인가?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홍순영 통일부장관으로부터 북한의 식량지원 요청을 보고받은 바로 다음날 당내외의 연구검토도 없이 덥석 200만섬 지원을 들고나온 것부터 졸속이다..."

<조선일보>가 기분이 상한 여러 가지 이유중 하나는 바로 한나라당이 현 정부의 설득에 넘어갔다는 것이다. 물론 한나라당이 북에 쌀을 지원키로 한 것은 갑작스러운 의외의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졸속'은 아니었다. 한나라당의 제안은 당시 '긴급 경제대책회의'를 갖고 논의한 끝에 나온 것이었다.

"...국내산 쌀 200만섬이면 비용으로 5억달러 상당이고, 이건 이 정부 3년 반 동안 대북 직접지원 규모인 2억7000만달러의 2배에 해당한다. 상호주의적 장치도 없이 이런 규모를 지원한다는 것은 야당식 퍼주기일 뿐이다...."

<조선일보>가 기분이 상한 진짜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현 정부보다 한나라당이 더 앞서가니 불안했던 게다. 한나라당 마저 대북지원에 나서면 안되는데 말이다.


"상호주의적 장치 없이..."라고 꼬투리를 잡고 있지만 한나라당은 분명히 '군사용으로 전용 금지', '장기차관형태'라고 못박았다는 것을 <조선일보>만 모르는 것일까?

반면 이날 '한나라당 대북 쌀 지원 문제'를 사설에서 다루고 있는 <중앙일보>, <한겨레 신문> 등은 <조선일보>와는 달리 한나라당의 제안을 환영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한겨레신문>의 시각이 차이가 나는지 한 번 비교해 볼 일이다.

<조선일보> 사설 전문

야당식 대북 '퍼주기'

북한동포의 굶주림을 덜어주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돌연 대북 쌀지원을 들고 나오는 데는 우선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국내 쌀이 600만섬의 적정재고를 300여만섬 초과하니, 이 중 200만섬을 북한에 보내자는 주장이다. 얼핏 들으면 남쪽의 쌀 재고 과잉과 북쪽의 식량난을 동시에 해결하는 그럴 듯한 발상 같기도 하다.

문제는 이 제안의 주체가 한나라당이면서도 그 지원절차와 방식이 한나라당이 그토록 비판해오던 이 정부의 그것을 그대로 답습한 듯한 데 있다. 한나라당은 지금껏 이 정부의 대북지원을 퍼주기와 「졸속」으로 규정하고, 상호주의적 장치의 도입과 국내정치에 이용할 가능성을 차단할 것을 요구해 왔다. 바로 이 비판 기준에 한나라당의 대북 쌀지원 제안을 비춰보면, 한나라당의 자가당착이 드러난다. 홍순영 통일부장관으로부터 북한의 식량지원 요청을 보고받은 바로 다음날 당내외의 연구검토도 없이 덥석 200만섬 지원을 들고나온 것부터 졸속이다. 국내산 쌀 200만섬이면 비용으로 5억달러 상당이고, 이건 이 정부 3년 반 동안 대북 직접지원 규모인 2억7000만달러의 2배에 해당한다. 상호주의적 장치도 없이 이런 규모를 지원한다는 것은 야당식 퍼주기일 뿐이다.

당내에서 흘러나오는 말대로 농민들의 정서가 심상치 않으니 우리가 먼저 치고 나가는 게 낫다라는 발상이라면 대북정책의 국내 이용 바로 그것이다. 더욱 안타깝게 하는 것은 이번 쌀을 보내도 그것이 굶주린 북한동포의 부엌으로 들어갈 것 같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95년 쌀 15만t을 북에 보냈을 때도 그랬었지만 질 좋은 쌀은 당 간부에게 배당되거나 군량미로 전용되는 게 그쪽 현실이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은 이 정부의 「대북 퍼주기」에 쐐기를 박기 위해 5억원 이상 남북협력기금을 사용할 때는 국회동의를 받도록 법개정안을 제출해놓고 있다. 법 개정안의 제출 정신과 이번 즉흥적 쌀지원 제안의 연관성을 한나라당은 설명할 의무가 있다.


<중앙일보> 사설 전문

여야 한 목소리 낸 대북 쌀지원

한나라당이 앞장서서 쌀 2백만섬(30만t 규모) 의 대북 지원을 제안해 정부와 여야가 모처럼 대북 문제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직 지원량과 방식이 확정되지 않았고 북한과의 협의 절차도 남아 있다. 일부에선 너무 많은 양이 아닌가, 대북 '퍼주기' 논란을 주도해온 야당의 갑작스러운 선회에 어떤 정치적 복선이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북한 동포를 구휼(救恤) 하면서 남북 화해.협력 국면을 한 단계 끌어올릴 초당적 쌀 지원 합의는 향후 대북정책에 좋은 선례로 기록될 것이다.

정부의 대북정책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온 야당이 대북 쌀 지원을 선도하는 이런 고무적인 현상이 대북정책 전반에도 지속되도록 정부가 앞으로도 상황을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번 경우를 살펴보면 그 점이 명확해진다.

북한이 제5차 장관급 회담에서 요청한 쌀 지원 문제에 대해 정부가 일방적으로 지원 결정을 했던 지금까지와 달리 야당에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하자 야당이 북한 동포에 대한 인도주의 측면과 국내 쌀 재고 문제 등을 고려해 정부가 어렵게 내려야 할 결단의 문제를 풀어준 것이다. 대북정책이 이런 초당적 방식으로 처리돼야 국민이 수긍하고, 정부의 정책에도 탄력이 붙을 것이다.

국내 쌀값이 국제시세에 비해 여섯배쯤 비싸 금액 면에선 2백만섬 값이 6천억원 정도여서 퍼주기 논란이 일어날 수는 있다. 그러나 지난해 외국산 식량 50만t(8백67억원) 을 외화로 구입해 북한에 지원한 것을 감안하면 국내 재고 쌀 30만t을 지원하는 것이 보관 및 관리에 많은 돈이 들어가는 양정(糧政) 을 위해서나 어려운 실정의 우리 농촌을 위해서도 올바른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문제는 대북 지원 식량의 분배 투명성을 확보하고 북한의 반대급부를 어떻게 확보하느냐다. 우리도 이제부터는 지원 식량의 분배를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북한과 합의해 배분에 관한 의혹을 원천 봉쇄해야 한다. 북한은 이런 문제에서부터 성실성을 보이고 대남 합의사항을 성의있게 실천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한겨레신문> 사설 전문

한나라당의 대북 쌀지원 제안

정부가 내부적으로 북한에 대한 쌀 지원을 검토하고 있는 터에 한나라당에서 200만섬(30만톤)의 쌀을 장기차관 방식으로 북한에 지원하자고 제안했다. 민주당이 즉각 환영한 것은 물론이다. 모처럼 여야가 대북 쌀지원에 뜻을 같이한 셈이다. 그동안 북한에 대한 각종 지원을 `퍼주기'라고 맹비난해온 한나라당이 `군사용으로 전용하지 않을 것'이란 전제를 달긴 했지만 쌀 지원을 먼저 제안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정부로선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에 남쪽에서 남아도는 쌀을 지원하고 싶어도 재정부담과 함께 야당과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좀처럼 입밖에 내지 못하던 터에 한나라당이 물꼬를 터줌으로써 정책결정이 한결 쉬워졌을 것이다.

한나라당의 이런 태도에 비판도 나올 수 있다. 대북지원에 줄곧 부정적 자세를 보이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꾼 것이 혼란스럽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쌀 풍작으로 인한 값 하락에 반발하고 있는 농민들의 환심을 사려는 정략적 발상에서 비롯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그래서 나온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정국을 주도한다는 인상을 주고, 남북 화해 협력을 추구하는 햇볕정책에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다는 정치적 부담도 차제에 털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한나라당의 제안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국내에선 쌀이 남아돌아 걱정인데, 값이 싸다고 외국 곡물을 사서 북한에 지원하느니 남는 쌀을 보내는 것이 재정부담은 되지만 우리에게도 좋다. 이대로두면 쌀 적정재고량을 훨씬 초과해 재고관리에만도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는데 굶주리는 북녘 동포들에게 보낸다면 얼마나 고마와할 것인가. 남북이 서로 부족한 것을 도와가며 산다면 동포애도 살아나고 남북관계 진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번 제안이 정략적인 것이 아니라 민족의 앞날을 깊이 고려한 정책이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남북문제에 전향적으로 나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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