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교시와 보충수업

최원호의 <교육칼럼>

등록 2002.03.20 12:42수정 2002.03.20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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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입학하기가 무섭게, 학생들은 일명 '별 보기 운동'을 시작한다.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다름 아닌 '대학입학'이라는 지상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뿐더러 인생자체를 그 목표에 맞추는 것이 우리 교육의 독특한 문화적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별을 보며 등·하교하는 고등학생이 학창시절을 누리기는커녕, 예비 수험생이라는 미명 아래 학교와 학원에서 혹사당해온 지금, 드디어 그들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고생(高生)들의 고생(苦生)스런 목소리가 0교시 수업 폐지에 대한 온라인 서명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밤늦게까지 야간강제학습을 마치고 또 다시 학원으로 향하는 학생이 대다수이다 보니 집에서는 당일 과제를 마치기에도 힘들다. 고작 서너 시간 자다말고 새벽같이 달려온 학생들이 수면부족으로 책상에 엎드려 잘 수밖에 없으니 이들을 대하는 교사 역시 난감할 따름이다. 말이 보충수업이지, 특기적성으로 둔갑한 주요 과목의 진도 나가는 소리로 잠을 깨우며 수업을 강행한다지만, 학생들의 집중력과 학습흥미도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과연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 학생들은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물론 보충수업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전의 보충수업은 보다 실질적이고 또한 학교수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환경적 요인이 작용했기 때문에 그 효과가 높았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보충수업이 문제시되는 것은 사설 입시학원의 보습형태가 학교수업보다 능률적이라는 생각에 우선 순위가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입시학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학교수업은 형식적일 수밖에 없는 병폐를 불러일으킨 까닭이다.

학생들은 0교시수업과 보충수업 둘 중에 어느 한 가지만이라도 충실하게 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다. 지금처럼 반강제적인 보충수업만 강행하다보면 의욕부진으로 쉽게 지치고, 학습 흥미가 떨어지며 보충수업 받느라 결국 학원 가는 시간만 늦어지기 때문에 비능률적이고 무의미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막상 고등학생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쉽게 떨쳐 버릴 방법이 없다. 학교 공부만 시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학원에만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 두 가지를 병행해서라도 대학에만 갈 수 있다면 3년 동안 죽었다는 시늉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각오이다.


학교측의 입장 역시 불변이다. 명문 학교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온갖 방법을 총동원하고 있다. 명문학교와 기피학교의 차이는 대학진학률로 판가름하는 세태이니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으려면 대입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공교육만으로도 대학진학이 무난하다는 분위기를 고취하는 것으로 명문학교와 기피학교의 잣대를 바꿀 수 있다면 사교육비 경감은 물론, 공교육이 살아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 주체에 교사가 앞장 서 그 역할을 새롭게 변신해야 한다. 학생들로 하여금 입시학원 강사보다 당연히 실력이나 가르침에 있어 월등하다고 인정받는 교사가 되도록 정진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교원의 사기진작을 위해 다양한 동기를 유발시켜 준다면 교육현장은 확연히 변화할 수 있다.


결국 우리의 현실이 학생, 학부모, 교사를 막론하고 지상과제인 대학입학을 위해 목숨을 걸다시피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이럴 때일수록 수요자 중심의 교육형태로 탈바꿈하기 위한 노력을 시도하여 보다 효율적인 학습이 진행될 수 있어야 한다.

조기 등교와 방과 후 타율학습의 장단점을 보완하여 학교 특성에 맡는 자율학습 형태를 개발함으로써 사교육에 의존하려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공교육을 신뢰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만들 때 0교시와 보충수업은 폐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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