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는조간] '월드컵 열기'에 묻힌 기사들

등록 2002.05.30 20:15수정 2002.05.3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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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FIFA 월드컵 개막일인 5월31일. 기다렸다는듯 이날 모든 신문들은 1면을 비롯한 주요 지면을 '월드컵 이야기'로 가득 채웠다. 이런 '대형 특수'가 있을 때면 주요 지면에 비중있게 실리고도 남을 기사들이 눈에 잘 안띄는 지면으로 밀리거나 아예 빛도 못보게 마련이다.

5월31일자 초판에 실린 기사 가운데 대표적인 기사가 지난해 발생한 녹사평역 기름 유출사고에 대해 주한미군이 처음으로 책임을 시인했다는 보도다. 하지만 이 기사는 <경향>에서 2면 머릿기사로 뽑혀 체면치레했고 <한겨레>에선 사회면 구석으로 밀렸다. 그마나 다른 신문에선 거의 눈에 띄지 않거나 아예 보도조차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건 6.13지방선거 관련 보도. 전날 후보자 등록이 끝난 상태에서 본격적인 선거보도가 시작될 시점이지만 대부분 월드컵 기사 때문에 정치면, 사회면 구석으로 밀려났다. 실제 중앙선관위가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이번 지방선거에서 꼭 투표하겠다는 유권자는 43%로 88년 지방선거 설문 당시 67.8%에 크게 못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그동안 1면이나 사회면 주요 기사로 취급되던 대통령 아들 수사 관련 보도도 사회면 1,2단 정도로 비중이 크게 줄었다.

하지만 정작 월드컵 열풍에 쉽게 묻혀버리는 기사는 노동자 파업, 집회, 시위 등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기사들이다. 민주노총은 30일 현재 전국 95개 사업장에서 3만여명이 파업에 참가하고 있다고 밝혔지만(한겨레) 대부분의 신문에서 파업관련 기사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30일 한강대교 위에 올라가 이틀째 고공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그네틱스 여성노조원들에 관한 보도도 <한겨레> 등 일부 신문을 제외하곤 빠져버렸다.

저마다 월드컵을 찬사하는 유명 기고가들의 글 속에 <한겨레>에 실린 박노자 교수의 칼럼이 유독 눈에 띄는 것도 그런 이유다. 박 교수는 '월드컵의 빛과 그늘'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월드컵 기간중 비정규직, 외국인노동자 등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은 철저히 감추고 '아름다운 모습'만 강조하려는 '월드컵 열기'의 허실을 꼬집었다.

5월31일자 초판 1면 머릿기사


<경향> '꿈의 월드컵' 마침내 막올랐다
<국민> 월드컵의 날 마침내 밝다
<동아> 60억 축구축제 그날이 밝았다
<조선> 21세기 첫 축구제전 막오르다
<한겨레> 월드컵, 날이 밝았다
<한국> '60억 인류 축제' 월드컵의 날 밝았다

사회면 주요 기사


<경향> "길거리 응원, 벌써 짜릿해요" -월드컵 전광판중계 새 풍속도로 자리잡아
<국민> "잔치는 시작됐다" 온국민 한마음
<동아> "승리의 순간만 남았다" -월드컵 준비3인 '희망가'
<조선> '친절 월드컵' 아줌마 파이팅!/ 외국손님 '홈스테이운동'…약소국팀 응원도 앞자
<한겨레> "원더풀 코리아" 세계가 합창-전야제 열기 고조
<한국> "우리응원 보고 슛! 골인"/ "초청장만은 꼬옥 간직" -설렘과 아쉬움…월드컵 동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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