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하신 머리가 다시 길어질 때까지

교육의 인간화, 평등화를 생각하며

등록 2002.10.27 15:14수정 2002.11.01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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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영화 보기를 좋아했냐 하면
몇 시간 동안
제 몸이 남에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시 <어머니4> 부분


전남도교육청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심경섭 지부장
전남도교육청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심경섭 지부장
굳게 닫힌 교육청 정문을 사이에 두고 다가가지도 못한 채 먼 발치에서 선생님이 삭발을 단행하시는 모습을 지켜보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애써 참았던 눈물인데 시 한 구절에 그만 주르륵 감정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시인은 태어나서 얼마 안 되어 백일해를 앓았지요. 그 치료로 먹은 한약이 탈이 나 그만 목숨을 잃을 뻔하다가 가까스로 살아나지만 커가면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불구자가 되고 맙니다.

시인의 이런 불행한 이력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한 구절의 시가 감동이 되고 눈물이 될 수는 없겠지요. 우리 교육의 아픈 불구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망국의 입시위주교육을 획책하는 기만적인 '실력전남'의 실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선생님의 삭발의 진실을 또한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묘한 문맥으로 해서 대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남몰래 눈물을 닦아야만 했습니다.

삭발을 마치신 뒤에 정문 틈새로 넘겨받은 마이크를 잡고 숙연하고 결연한 의지의 말씀에 앞서 오래 전 국민학교 시절의 추억담을 들려주시던 선생님의 모습은 너무도 해맑아 보였습니다. 그 시절의 까까중 머리는 그런 대로 예쁘장했는데 지금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다고 하셨던가요? 지금도 맑고 예쁘시다고 그때 속말로만 전해드렸는데요.

저도 국민학교 시절엔 까까중 머리였습니다. 기계 독이 올라 군데군데 작은 운동장이 생긴 그런 머리통이었겠지요. 그 시절 제 짝꿍은 시험마다 빵점을 맞는 아주 기묘한 재주를 가진 아이였습니다. 주관식 문제가 많이 출제되던 그 시절의 사정을 감안한다고 해도 웬만해서는 빵점이 나올 수 없는 확률인데도 그 아이는 시험지를 보나마나 빵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동무의 시험지에 동그라미를 하나 그려주는 것이 제 소원이 될 정도였습니다.

그 시절은 중학교 입시제도가 있던 터라 고학년이 되면서부터는 교과서를 가지고 공부를 하는 날보다 시험을 보는 날들이 더 많았습니다. 채점도 옆 짝꿍과 시험지를 바꾸어 하는 그런 식이었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자연 시간이었는데 저는 동무의 시험지를 받아들고 한 순간 눈이 확 떠지고 말았습니다. 제 소원대로 동그라미를 그려줄 만한 답이 두 개씩이나 눈에 띈 것이었습니다.

김장환 교육감의 '실력전남' 강행에 반발하며 농성을 하고 있는 교사들.
김장환 교육감의 '실력전남' 강행에 반발하며 농성을 하고 있는 교사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인체 해부도를 그려놓고 각 부위를 써넣는 자연 시험이었는데 다른 부위는 전혀 손도 대지 못하고 그래도 작은창자와 항문만은 생각이 났는지 답으로 쓰긴 썼는데 표준어로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작은 창시'와 '똥구멍'으로 써넣은 것입니다. 그런 희한한 답을 저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어 담임 선생님께 여쭈어 정답으로 인정을 받아 모처럼 동무의 시험지에도 눈부신 동그라미 두 개가 그려진 것입니다.


그 당시 담임 선생님은 교사로서 그리 나쁜 성정을 지닌 분은 아니셨습니다. 아이들 하나 하나를 귀히 여겨주시는 그런 마음을 지닌 자상하고 따뜻하신 분도 아니셨지만 말입니다. 지금 기억에 당시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특별한 개성이 없이 모두 그랬던 것 같습니다. 철저한 입시위주교육 체제에서 사랑을 발휘할 여지가 없었던 것이겠지요.

아무튼 우리는 시험이 끝나면 어김없이 틀린 개수대로 매타작을 당해야 했습니다. 당시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자주 전학을 다니다 보니 저도 썩 좋은 성적은 아니어서 매를 자주 얻어맞곤 했지만, 그래도 매일 같이 수 십대의 매를 감당해야만 했던 동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하루는 야구 방망이가 가 닿은 동무의 엉덩이에서 둔탁하고 푹신한 느낌의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즉시 동무에게 옷을 벗어보라고 명하셨고, 사색이 되어 벌벌 떨다가 다시금 재촉하시는 담임 선생님의 호통소리에 그만 아랫도리를 무릎 아래까지 내려버리자 교실 바닥으로 걸레조각이 하나 떨어졌습니다. 매일 당하는 혹독한 매를 견디지 못하여 딴에는 머리를 쓴다고 엉덩이에 걸레를 대고 맞으려다가 들키고 만 것이지요.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터져나온 웃음을 약속이나 한 듯이 뚝 멈추었습니다. 그리고는 숨을 죽인 채 담임 선생님과 그 아이를 번갈아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후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말씀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그때 저는 그 아이가 맞을 짓을 했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엉뚱한 꾀를 쓰느니 그 시간에 공부를 좀더 하지 그랬나 싶기도 하고, 안 죽을 만큼 심한 매를 맞은 동무 아이가 불쌍해 보이긴 했지만 그 일로 담임 선생님을 원망하지는 않았던 것이지요.

그 시절에는 담임 선생님 집에서 하는 과외가 유행했습니다. 대체로 부유한 집안의 자녀들이 방과후에 선생님 집으로 몰려와 과외공부를 했는데 매일 같이 시험을 보던 당시 상황에서는 다음 날 학교에서 볼 시험문제를 알려주는 일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지요. 반면에 학업성취도가 낮은 아이들을 방과 후에 남게 하여 따로 공부를 시켜주거나 공부를 잘하도록 다정하게 독려해주는 일은 아주 보기 드문 장면이었습니다.

저는 어린 나이이기도 했지만 이런 사실들을 당연하게만 받아들였습니다. 학교가 열등생보다는 우등생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잘못된 처사라는 것을 저는 정작 교사가 되고 난 뒤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교적 학업성취도가 낮은 실업계 학교에서 근무하다보니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고 생활 환경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공부에 대한 욕구나 능력, 심지어는 열심마저도 개인의 선택사항이 아니라는 것도.

작년에 제가 담임한 아이들은 거의 대다수가 가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혼한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만 해도 열 명이 넘었습니다. 결손가정이 아니더라도 부모의 학력이나 생활수준이 낮은 것은 거의 엇비슷했습니다. 쪽지 상담을 하다보면 거의 예외 없이 차별을 하지 말아달라는 요구였습니다. 그것은 제가 듣기에 아이들의 삶을 방기한 채 오로지 시험을 통한 성적만으로 모든 가치를 재려는 우리 교육의 모순이 만들어낸 그들의 깊고 아픈 상처에서 터져나온 소리였습니다.

도교육청에서 관장하는 '학력성취도평가'와 같은 일제고사식 시험을 통해 학교나 학생들을 성적으로 한 줄을 세우는 일은 성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더 중요한 덕목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력전남'의 허구는 정작 그 속에 '아이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도덕성, 학력, 특기적성 세 가지 방침 중에서 학력을 제외한 나머지는 기만에 불과하다는 것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부쩍 불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특기적성교육과 자율학습에 대하여 감독관청으로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는 저들의 모습이 그것을 여실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감사에 대비하여 교사와 학생이 공모하여 공문서를 위조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학생들의 개별적인 요구와는 상관없이 획일적으로 보충자율학습이 강행됨으로써 신이 주신 개인의 소질과 적성이 오히려 학교교육을 통해 망가지고 있는데도 공허한 '실력전남'의 슬로건만을 외치고 있습니다.

닫힌 도교육청 철문 그리고, 제자들인 전경과의 대치...
닫힌 도교육청 철문 그리고, 제자들인 전경과의 대치...
어디 그뿐입니까. 과거에도 도교육청에서 관장하는 일제고사식 성취도평가를 치르면서 얼마나 많은 아픔이 있었습니까? 학교간의 경쟁에만 혈안이 되어 학생들의 부정행위를 눈감아주고 부추기는 일까지 자행했던 그 씻을 수 없는 오욕과 부끄러움을 다시 강요하는 셈이 아닙니까? 진정한 '실력전남'의 길은 그런 비교육적이고 반인간적인 시험제도에 있지 않고 교육환경 개선과 인간 존중에 있다고 역설하신 선생님의 말씀이 지금도 귀에 쟁쟁합니다.

얼마 전에 저는 <파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님으로부터 프랑스 교육에 대하여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국가가 학비를 전담한다는 말보다 더 저를 부럽게 만들었던 것은 유치원에서 산수나 쓰기와 같은 정식 과목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말이었습니다. 인간의 초기 학습 경험은 평생을 좌우하기에 그들은 유치원 교육을 통해서 성적 경쟁이 아닌 서로 화합하고 즐겁게 노는 것을 배우게 한다는 말에는 부러움을 넘어선 아득한 절망감 같은 것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제 동무가 시험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매일 같이 담임 교사에게 엉덩이를 얻어맞아야 했던 그 시절, 저는 동무의 성적이 나쁜 것이 그의 게으름 때문만이 아니라 그도 어찌 할 수 없었던 어떤 정신적 불구 혹은 결핍 때문이었다는 것을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어린 나이였습니다. 그래서 그 동무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더 큰 관심과 사랑으로 결핍된 부분들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채워주기 위해 애쓰지 않으신 것이 담임 선생님의 잘못이라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른이 되었고 더욱이 젊은 청소년들을 지도하는 교육전문가인 교사가 되었기에 저는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성적만으로 한 줄을 세워 사람의 가치를 재는 입시위주 교육은 자라나는 아이들의 생명에 죄를 범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선생님의 삭발의 진실을 저는 그렇게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기 위한 교육자로서의 최소한의 몸짓이라고 말입니다.

존경하는 심경섭 선생님!

이제 곧 겨울인데 머리가 좀 추우시겠습니다. 하지만 겨울이 지나면 어김없이 봄이 오듯이 선생님의 짧은 머리도 곧 길어나지 않겠습니까? 다만 바라기는 선생님의 삭발하신 머리가 길어날 때까지 교육의 인간화와 평등화의 결실들도 그만큼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선생님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인용한 시는 이선관님의 시로,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2(우리교육)> 179쪽을 참고하였음을 밝힙니다.

덧붙이는 글 인용한 시는 이선관님의 시로,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2(우리교육)> 179쪽을 참고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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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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