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환 교육감의 '실력전남' 강행에 반발하며 농성을 하고 있는 교사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인체 해부도를 그려놓고 각 부위를 써넣는 자연 시험이었는데 다른 부위는 전혀 손도 대지 못하고 그래도 작은창자와 항문만은 생각이 났는지 답으로 쓰긴 썼는데 표준어로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작은 창시'와 '똥구멍'으로 써넣은 것입니다. 그런 희한한 답을 저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어 담임 선생님께 여쭈어 정답으로 인정을 받아 모처럼 동무의 시험지에도 눈부신 동그라미 두 개가 그려진 것입니다.
그 당시 담임 선생님은 교사로서 그리 나쁜 성정을 지닌 분은 아니셨습니다. 아이들 하나 하나를 귀히 여겨주시는 그런 마음을 지닌 자상하고 따뜻하신 분도 아니셨지만 말입니다. 지금 기억에 당시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특별한 개성이 없이 모두 그랬던 것 같습니다. 철저한 입시위주교육 체제에서 사랑을 발휘할 여지가 없었던 것이겠지요.
아무튼 우리는 시험이 끝나면 어김없이 틀린 개수대로 매타작을 당해야 했습니다. 당시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자주 전학을 다니다 보니 저도 썩 좋은 성적은 아니어서 매를 자주 얻어맞곤 했지만, 그래도 매일 같이 수 십대의 매를 감당해야만 했던 동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하루는 야구 방망이가 가 닿은 동무의 엉덩이에서 둔탁하고 푹신한 느낌의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즉시 동무에게 옷을 벗어보라고 명하셨고, 사색이 되어 벌벌 떨다가 다시금 재촉하시는 담임 선생님의 호통소리에 그만 아랫도리를 무릎 아래까지 내려버리자 교실 바닥으로 걸레조각이 하나 떨어졌습니다. 매일 당하는 혹독한 매를 견디지 못하여 딴에는 머리를 쓴다고 엉덩이에 걸레를 대고 맞으려다가 들키고 만 것이지요.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터져나온 웃음을 약속이나 한 듯이 뚝 멈추었습니다. 그리고는 숨을 죽인 채 담임 선생님과 그 아이를 번갈아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후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말씀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그때 저는 그 아이가 맞을 짓을 했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엉뚱한 꾀를 쓰느니 그 시간에 공부를 좀더 하지 그랬나 싶기도 하고, 안 죽을 만큼 심한 매를 맞은 동무 아이가 불쌍해 보이긴 했지만 그 일로 담임 선생님을 원망하지는 않았던 것이지요.
그 시절에는 담임 선생님 집에서 하는 과외가 유행했습니다. 대체로 부유한 집안의 자녀들이 방과후에 선생님 집으로 몰려와 과외공부를 했는데 매일 같이 시험을 보던 당시 상황에서는 다음 날 학교에서 볼 시험문제를 알려주는 일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지요. 반면에 학업성취도가 낮은 아이들을 방과 후에 남게 하여 따로 공부를 시켜주거나 공부를 잘하도록 다정하게 독려해주는 일은 아주 보기 드문 장면이었습니다.
저는 어린 나이이기도 했지만 이런 사실들을 당연하게만 받아들였습니다. 학교가 열등생보다는 우등생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잘못된 처사라는 것을 저는 정작 교사가 되고 난 뒤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교적 학업성취도가 낮은 실업계 학교에서 근무하다보니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고 생활 환경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공부에 대한 욕구나 능력, 심지어는 열심마저도 개인의 선택사항이 아니라는 것도.
작년에 제가 담임한 아이들은 거의 대다수가 가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혼한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만 해도 열 명이 넘었습니다. 결손가정이 아니더라도 부모의 학력이나 생활수준이 낮은 것은 거의 엇비슷했습니다. 쪽지 상담을 하다보면 거의 예외 없이 차별을 하지 말아달라는 요구였습니다. 그것은 제가 듣기에 아이들의 삶을 방기한 채 오로지 시험을 통한 성적만으로 모든 가치를 재려는 우리 교육의 모순이 만들어낸 그들의 깊고 아픈 상처에서 터져나온 소리였습니다.
도교육청에서 관장하는 '학력성취도평가'와 같은 일제고사식 시험을 통해 학교나 학생들을 성적으로 한 줄을 세우는 일은 성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더 중요한 덕목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력전남'의 허구는 정작 그 속에 '아이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도덕성, 학력, 특기적성 세 가지 방침 중에서 학력을 제외한 나머지는 기만에 불과하다는 것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부쩍 불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특기적성교육과 자율학습에 대하여 감독관청으로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는 저들의 모습이 그것을 여실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감사에 대비하여 교사와 학생이 공모하여 공문서를 위조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학생들의 개별적인 요구와는 상관없이 획일적으로 보충자율학습이 강행됨으로써 신이 주신 개인의 소질과 적성이 오히려 학교교육을 통해 망가지고 있는데도 공허한 '실력전남'의 슬로건만을 외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