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진
조선말 화가 오원(吾園) 장승업의 일대기와 그의 그림을 다룬 영화 <취화선>이 프랑스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모양이다.
전통 한국화를 소재로 한데다가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마다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한지라, "문화의 다양성을 맛볼 수 있었다"는 호평을 얻는다고 한다.
주변에서 하도 칭찬들이 자자하기에, 나도 지난번에 늦게나마 그 영화를 볼 기회를 가졌다. 하지만 영화의 빠른 전개 때문에 장승업 그림들을 하나 하나 느긋하게 감상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한편으로는 영화가 그리고 있는 장승업 일대기가 얼마만큼 사실에 기초한 것인지도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그림으로 만난 세계의 미술가들" 시리즈 한국편으로 나온 이 책을 만났다. 처음 펴낸 날이 금년 1월이니, 영화 "취화선" 보다 훨씬 더 빨리 나왔다. 이것만 봐도 취화선이 뜨니 급조해서 만들어진 조잡한 책은 결코 아님을 알 수 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저자가 한국 회화사를 전공하고 현재 대학에서 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는 사람이기에 더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아동·청소년들을 주 대상으로 놓고 썼으나 그만큼 동양화에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접근하기 쉬운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이 책은 위인전 같이 그렇고 그런 생애 위주의 서술을 하지 않는다. 그보다 전체적으로 화집 성격이 강하여, 작가와 시대적인 배경 및 작품감상이 유기적으로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특히 장승업이 영향 받은 당시의 중국 화풍에 대한 소개와 장승업 그림과의 비교는 그의 작품을 한층 더 깊이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이다.
알다시피, 장승업은 안견, 김홍도와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3대 화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어려서 고아가 되어 여기 저기 떠돌다가 한양에 올라와 어느 종이 파는 집에서 일꾼으로 일하면서 그림을 접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하인이던 그가 그린 그림이 어느 날 주인을 깜짝 놀라게 만들 정도 훌륭한 것이어서 그때부터 주목받아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타고난 눈썰미로 어깨너머 그림을 배웠고 글을 겨우 깨우쳤으나 당대의 어지간한 화가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특출한 데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승업의 특출한 실력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졌다고 보면 오산이다.
아무리 천재성을 타고났다고 하더라도 갈고 닦지 않는다면 그 재능은 어느새 빛이 바래기 마련이다. 그러나 오원은 꾸준히 노력하여 마침내 일가를 이룰 수 있었다. 처음에 중국 원나라 시대 화가들인 조맹부, 왕몽, 오진, 황공망 등에 주로 영향을 받아 그을 모방하며 연습하다가 점차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세계를 가꿔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으로 오원의 치기 어린 초기 작품부터 시작하여 절정기, 원숙기에 이르는 그림들까지를 그 뒷이야기까지 두루 감상할 수 있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오원은 가히 기인(奇人)이라 불릴 정도로 오로지 술과 그림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는 당시의 어수선한 조선말기의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
어찌나 술을 좋아했는지 10폭짜리 병풍을 여러 첩 그리라는 고종의 명을 받고 궁중에 들어가서 작업하다가도 술에 목이 말라 무려 세 차례나 궁중을 몰래 탈출하였다. 당연히 고종은 노할 대로 노했고, 장승업의 재주를 누구보다 아꼈던 민영환의 간곡한 청 때문에 오원은 목숨이 위태했던 위기를 겨우 모면할 수 있었고 전한다.
저자는 장승업 그림에 중국 고사에 관련된 그림이 많아 그의 작품이 격이 낮다거나 사대적이라는 비판 등을 언급하며 그 부당성을 지적한다. 장승업이 그런 그림을 주로 그렸던 것은 당시 그림을 요구한 사람들의 취향에 따른 것이며, 도연명이나 왕희지 같이 현실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기질이 장승업과 잘 맞아 그랬다고 보는 것이 더 바른 평가가 아닐까 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뛰어난 화가가 격변기의 시대를 살면서도, 자신이 본디 비천한 출신임에도, 당시의 사회상을 담아내기 보다는 그와 동떨어진 듯한 그림들을 많이 남긴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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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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