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후 내 딸은 어딜 가야 하나"

장애 청소년 은별이 아버지의 고민

등록 2002.12.04 20:44수정 2002.12.05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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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 수학능력시험 성적이 학생들에게 통보되었다고 한다. 시험을 치른 대부분의 학생들이 가슴을 졸이며 점수표를 받았을 것이다. 신문에서는 고교 3학년 교실에서 자신의 점수표를 받아든 많은 학생들이 울음바다를 이루었고, 점수에 따라 희비가 교차했다고 전하고 있다.

수능시험을 본 학생들과 부모들의 바람을 잘 알고 있지만 수능성적이 마치 평생을 좌우한다고 여기고 절망스럽게 생각하는 학생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수능성적에 의해 대학 입학이 결정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대학이 인생을 결정한다는 위험한 학벌주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어 우리 사회에 '희망이 없음'을 느끼게 한다.

대학 진학 희망자가 입학정원에 미달하는 요즘에도 진학보다도 취업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청소년들이 많다는 사실이 기억되었으면 한다. 그럴 때 우리 사회에 조금은 희망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이든 취업현장이든 갈 수 있는 곳이라곤 하나도 없는 청소년들이 있다. 바로 '장애 청소년들'이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을 향한 '진정한 희망'이 이야기되기 위해서는 묻혀버리기 쉬운 장애 청소년들의 입장이 기억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우리 부부는 며칠 전 천안에서 사는 한 장애 청소년의 부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분의 딸 은별이는 정신지체 2급 장애인인데 어찌되었든 수능을 마쳤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하지만 은별이 아버지는 요즘 뛰어넘기 불가능해 보이는 벽 앞에 선 듯 답답하고 힘들다고 하였다. 은별이의 진로 때문이었다.

은별이는 인지능력은 떨어졌지만 차분하고 온순하여 별다른 문제행동이 없이 일반학급에서 생활해 왔다. 수능 점수가 턱없이 모자랐지만 몇몇 대학에서 장애 청소년들을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세히 알아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경미한 지체 장애인이라면 모를까 정신지체를 가진 은별이는 입학할 수는 없는 조건이었다.

결국 은별이 아버지는 취업을 돕기 위해 백방으로 나섰다. 먼저 은별이가 학교에서 사회성도 좋았고 컴퓨터도 제법 할 만큼 나아졌기에 장애인등록 취소 진단을 시도했다. 하지만 인지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비장애인 대열에 들 수 없었다. 단순 반복적인 일을 하는 작업장 등을 알아봤지만 은별이를 채용하겠다는 곳은 없었다.


은별이 아버지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고 앞으로 은별이의 삶을 어떻게 꾸려줘야 할지 걱정이라며 하소연하였다.

"학교 다닐 때는 그래도 어디라도 일할 곳이 있겠지 생각했는데, 막상 졸업을 하게 되니 일반 고등학교까지 왜 보냈나 싶은 후회가 들어요. 졸업하면 단돈 만원이라도 벌 수 있는 직업을 갖게 하든가, 취미생활이라도 하며 지내게 하는 복지제도 같은 게 있어야 하는데, 전혀 길이 없군요. 장애인도 기본적인 생활을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최소한의 장치도 안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서 깨달았습니다. 어떻게든 해봐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그리고 올해 유치원을 졸업하게 되는 발달지체인 내 딸을 생각해 "하은이는 나중에 일반 중고등학교 보내지 말고 꼭 장래를 위해 직업훈련을 시킬 수 있는 곳을 보내세요"라며 간곡히 당부하셨다.

장애아 부모들과 상담활동을 해온 아내는 은별이 아버지와 상담한 후 오히려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은별이의 사례가 남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발달장애인 딸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걱정을 털어 버리지 못하던 참에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학교 입학과 함께 우리는 장애를 가진 딸과의 인생살이를 이제 겨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도 학교는 제도적으로 되어 있는데, 그 이후는... 미래가 정말 암담하게 느껴진다. 학령기에 있는 장애아동의 부모들이 언제 어떤 학교에 보낼 것인가 고민하듯이 학교를 마친 장애아동 부모들도 똑같은 심정일 것이다. 내 딸 하은이도 언젠가 학교를 마칠텐데 그때 과연 행복한 삶을 꾸려갈 수 있을까?"

그후 우리 부부는 정신지체 장애인의 고용에 대해 우리나라에서는 극히 드문 사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것은 대표적 다국적 기업인 맥도날드 한국지사에서 자국의 경험에 비추어 정신지체 청소년 20명을 채용했다는 내용이었다. 맥도날드의 사례 역시 상업적 발상을 뛰어넘은 것은 아니겠지만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실험이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 고용에 대해 그런 여지 마저도 도외시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장애인 직업훈련기관들이 있고 장애인고용촉진법에 따라 장애인 의무고용을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기업들이 이를 꺼리고 있고 수용하는 기업들도 그 반대급부에 매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장애인 직업훈련도 어디까지나 경증 지체장애인을 염두에 둔 것이고, 정신지체나 중증 장애인을 배려한 복지이념이 자리잡을 여지는 없다는 사실이다.

장애인 고용에 대해 '앵벌이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 앞에서 자라나는 세대들, 장애 청소년들의 희망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많은 장애아동 부모들은 몇 개 안 되는 장애인 작업장, 건물만 있는 장애인 복지시설, 고립되기 쉬운 그룹 홈에서 장애인 자녀를 위한 진정한 대안을 발견하기는 어렵다고들 한다.

아내는 이런 고민을 하면서 무엇보다도 부모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결국 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우리 현실에서 복지이념을 세우고 진보된 제도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결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우리는 약자이든 소수자이든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를 바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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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부모연대 <함께웃는날> 편집위원 장애인교육권연대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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