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서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까?

줍고, 얻고, 만들어 쓰는 고물의 향기들

등록 2003.02.06 18:28수정 2003.02.06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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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다가옵니다. 이사철입니다. 이제 도시를 떠나 시골로 오려는 분들은 어떻게 짐을 꾸려야 할까요. 과연 시골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제가 처음 물골에 들어올 때의 기억을 되살려 봅니다.


a 부러진 쪽동백가지도 주워다 놓으면 언젠가는 횃대가 되고, 솟대가 된다

부러진 쪽동백가지도 주워다 놓으면 언젠가는 횃대가 되고, 솟대가 된다 ⓒ 이형덕

시골에서 살다 보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서울에서 살 때, 모처럼 캠핑이라도 가려고 이거저거 챙겨 넣다 보면 집안 살림을 몽땅 짊어지고 가게 되더군요. 모기매트부터 물 갈아 먹을 때 쓰는 정로환까지....

며칠 집을 떠나는 데도 그렇게 오만가지 살림을 챙겨들고 나가게 되는데 막상 며칠이 아니라 시골에 머물러 산다 할 때는 얼마나 많은 걸 챙겨들고 오겠습니까?

처음 불당골 농가에 전세로 들어와 살 때, 아내의 친구가 자기 집의 냉장고를 몽땅 털어 가지고 방문했다더군요. 시골에 사니, 모든 게 부족하고, 모자라리라 생각되나 봅니다.

그러나 막상 시골에 들어와 살림을 펼쳐 놓고 보니, 얼마지 않아 부족한 거보다는 내버려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정작 필요한 것은 하나도 없고, 내버려야 할 것들만 잔뜩 끌고 온 셈이었지요.


당장 마당에 풀을 베려는 데 낫이 어떻게 생겼는지, 장마비에 물길을 잡으려는데 곡괭이가 어디 있는지, 바람에 빨래가 지붕 위로 날아갔는데 사다리가 어디 있는지, 하다 못해 전기가 나갔는데 양초 토막이 어디 있는지, 눈만 뜨면 마당에 수북히 쌓이는 나뭇잎들을 쓸어낼 대빗자루며, 발목이 푹푹 빠지게 내리는 눈을 밀어낼 넉가래며...

거기에 비해 죽도록 나르느라 힘만 들인 산더미 같은 책들은 마땅히 둘 데가 없어 광에 놔두었다가 곰팡이와 쥐가 갉아 먹어 불살라 버리게 되고, 화사한 꽃무늬의 양산은 펴들고 나간 적이 없이 굴러다니다가 녹슬어 버리고, 바비큐 통이라고 백화점에서 산 건 딱 한 번 펼쳤다가 아이들 소꼽장난 같아서 내던지고 그 후로는 마당에서 석쇠 올려 삼겹살 후다닥 구워 먹게 되니 어디론가 처박히고, 블랙박스처럼 생겨서 피서 때마다 들고 다니며 파라솔 꽂아 옹기종기 앉던 레저테이블인가는 평상을 펼쳐 놓고는 애물단지가 되어 버리고. 하다 못해 데리고 온 미니핀 애완견도 마당에다 기르니 어느 바람 센 날, 어디론가 날아가고...


시골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a 시골에서 연장은 도구 이상의 필수품이다

시골에서 연장은 도구 이상의 필수품이다 ⓒ 이형덕

가만히 생각해 보면, 몇 자루의 튼튼한 연장들, 그리고 돌멩이와 나무. 가장 흔할 듯하면서도 이것들은 끝없이 필요합니다.

평상을 만들어야 하고, 계단을 만들어야 하고, 무너진 담장을 쌓아야 하고, 큰물에 씻겨 내려가는 흙들을 눌러 놓아야 하고,추녀 끝에 떨어지는 빗물자리에 깔아야 하고, 닭장이나 개장도 지어야 하고...

그래서 시골사람들은 흔한 게 나무이고, 돌멩이라지만 눈에만 띄면 쓸만한 걸 가져다 차곡차곡 챙겨두는가 봅니다. 그 때문에 요즘엔 나도 길을 가다가 나무 토막 하나, 돌 한 개도 예사롭게 보아 넘기지 않습니다. 못 한 개, 노끈 한 도막이라도 언젠가는 요긴히 쓸 때가 있지요. 담장을 타고 기어 오르는 꽃호박 넝쿨 잡아 매주려고, 읍내까지 달려나가 비닐끈을 다발째 사 올 수는 없는 일이며, 장마에 삭아서 부러진 평상 다리 하나 고치러 제재소에 각목 하나 배달 시킬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이러다 보니, 요즘엔 읍내에 들어서는 새 아파트단지에 집들이라도 갈라치면 나는 우선 이사온 사람들이 산더미처럼 내다 버린 물건들을 뒤지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서랍이 달아난 책상은 개장이 되고, 오래된 비닐 장판은 평상을 깔기도 하고, 고추 말리는 깔개가 됩니다. 처음 시골에 들어와 평상을 하겠다고 지물포에 들러 새 비닐장판을 몇 만원이나 주고 샀던 기억이 두고 두고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버리는 데도 돈을 내는 것을, 한쪽에선 또 돈을 주고 사야 한다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a 주워 오고, 얻어온 물건들 - 오래된 책상은 버려진 걸 주워와서 하루종일 문질러 닦았고, 화분은 쓰레기장에서, 고사목은 개울에 떠내려온 걸 주웠으며, 타자기는 옥상에서 내던지는 걸 간신히 말려서 얻어왔다

주워 오고, 얻어온 물건들 - 오래된 책상은 버려진 걸 주워와서 하루종일 문질러 닦았고, 화분은 쓰레기장에서, 고사목은 개울에 떠내려온 걸 주웠으며, 타자기는 옥상에서 내던지는 걸 간신히 말려서 얻어왔다 ⓒ 이형덕


모든 게 규격화되고, 거기에 맞춤으로 만들어낸 물건들을 준비해 놓은 도시의 백화점이나 판매점에 비해 시골에서 필요한 것들은 어디서 돈 주고 사기도 어렵거나, 사소한 것들이기에 대체로 스스로 구하고, 만들어내야 합니다.

개울가에 지천으로 웃자란 버들대를 잘라 고춧대를 깎아야 하고, 갈대를 베어다가 원두막의 이엉을 엮어야 합니다. 원두막 이엉을 파는 백화점이나 철물점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엉이란 비에 삭게 마련이고, 해마다 틈틈히 새로 달아 주어야 하니 틈이 나면 한겨울에 베어 놓아야 합니다.

a 갈대와 볏짚으로 엮은 원두막 이엉

갈대와 볏짚으로 엮은 원두막 이엉 ⓒ 이형덕


시골에서는 잘 읽지도 않으며 쌓아두는 책 한 권보다 언제나 손을 벋으면 잡힐 거리에 놓인 망치 한 자루가 더 요긴하지요. 실제로 대학 시절부터 애지중지하며 끌고 다니던 오래된 책들도 시골에 들어와서는 어느 날, 불쏘시개로 아낌없이 던져 넣어 버렸습니다. 시골살이가 주는 매력은 단순해진다는 거지요. 꼭 필요한 것 외에는 모든 게 짐스러워지게 되니까요.

시골에서 살다 보면 여기저기 손을 보아야 할 일들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때마다 남의 손을 빌린다면 그 비용도 만만찮을 뿐만 아니라 제 때에 쉽게 사람을 구하기도 어렵지요. 적어도 시골에서 살려면 바람에 떨어진 문짝이나, 장마비에 새는 지붕 정도는 본인의 손으로 고칠 수 있어야 하겠지요. 그리고 텃밭의 돌을 고르는 고무래 정도는 뒷산의 말라죽은 물푸레나무를 잘라다 자귀로 다듬고, 끌로 구멍을 파내 엉성하게라도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보는 즐거움을 더하는 게 좋은 일이겠지요.

이쯤 되고 보면, 막상 시골집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눈에 보이지요.
잔디밭에 파라솔도 있으면 좋겠지만, 그보다는 집 뒷곁이나 한모퉁이에 널빤지로 얼기설기 지은 광이라도 하나 마련하고, 그 벽에 가지런히 걸린 연장들이 더 소중하다고 느껴지면 시골생활을 할 자격이 생긴 셈이지요.

a 바람에 부러진 다래덩굴로 만든 지팡이

바람에 부러진 다래덩굴로 만든 지팡이 ⓒ 이형덕

예전에 시골에 사시던 분들이 낫 하나로 팽이를 깎고, 톱 하나로 부엌의 시렁을 달고, 자귀 하나로 초가의 기둥을 다듬던 걸 떠올리면 누구든지 손에 익히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지요.

그렇게 솜씨를 익힌 분들 가운데는 아예 집에다 작업실을 달아 지어 놓고는 원형톱이며, 직소, 전동대패 등의 전문적인 공구들을 마련하고 이제는 서랍장, 싱크대, 책꽂이부터 붙박이장까지 만드는 분도 있고 내친 김에 집까지 짓는 분도 있더군요.

그러나 시골생활에 이런 일들에 앞서 정말 필요한 것은, 백화점에 주문하여 가져다 주는 현관문의 손잡이보다 뒷산에서 말라죽은 소나무 옹이 박힌 등걸을 손수 깎아 매달아 놓은 자신의 손잡이를 더 아끼고, 소중히 알 줄 아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위해서는, 그런 여유와 느리게 살아가는 삶, 그것을 지켜주는 작고 가난한 마음... 내게 없는 것을 가지려 하기 보다 내가 가진 것을 덜어내는 마음이 아닐까요.

그런데 이런 욕심이라는 너저분하고, 무거운 쓰레기를 담아 버리는 쓰레기 봉투는 어디서 파는지 아시는 분은 연락 좀 주세요.

덧붙이는 글 | 이형덕기자의 필명은 이시백입니다. 다른 매체에서 이시백이라는 이름으로 인한 혼동이 있을 수 있어 밝혀 둡니다.

덧붙이는 글 이형덕기자의 필명은 이시백입니다. 다른 매체에서 이시백이라는 이름으로 인한 혼동이 있을 수 있어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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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면 광대울에서, 텃밭을 일구며 틈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http://sig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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