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71

북명신단 (1)

등록 2003.03.09 15:40수정 2003.03.1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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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으음!"

장일정은 나지막한 신음을 토했다. 하마터면 천추의 한을 남길 뻔했기에 그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사부가 남긴 비방은 미완성인 상태였다. 북명신단을 제련해 내기 위해선 그것을 완성시켜야 하였다. 하지만 아직 경륜과 지식이 부족한 장일정으로서는 그것을 완성시킬 능력이 부족하였다.

사부가 살아 있다면 문제는 간단하였다. 물어보기만 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하여 어떻게 하면 될까를 고심하다 결론을 내렸다.

사부가 목숨을 걸고 구한 화관홍선사의 내단을 구했으니 그것과 만년빙극설련실을 배합하면 음양이 조화되어 북명신단이 완성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여 모든 약재들을 준비한 후 마지막 점검을 한다는 생각으로 다시 한번 영단 제련과정을 되짚어 보았다.

그러던 중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화관홍선사의 내단이 지닌 양기로는 만년빙극설련실의 냉기를 중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도 모른 채 영단을 제련하여 복용하였다면 한 덩이 얼음이 되었을 것이다.

"으음! 그렇다면 사부께서 왜 이것을 구하려 하셨을까?"


장일정의 이마에는 깊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며칠동안이나 깊은 상념에 잠겨 있었지만 사부가 왜 화관홍선사를 잡으려 했는지 알 수 없었다. 답답해진 장일정은 사부의 서실을 찾았다. 혹시 단서를 찾아낼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북의는 무엇이든 기록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있는 것이라곤 사무치는 원한을 달래기 위하여 몇 자 끄적인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혹시나 했던 기대가 물거품이 되자 아쉬운 장일정은 낙담하였다. 하여 사부의 서실을 나서려던 그는 서가를 훑어보았다.


거기엔 이백여 권에 달하는 의서들이 꼽혀 있었다. 이미 표지가 닳도록 보아온 것이다. 그렇기에 어디에 무엇이 기록되어 있는 지까지 훤히 아는 것이다. 그것을 훑어 본 것은 습관이었다.

"제길! 저긴 더 볼 게 없어… 어! 저건…?"

서가에 가지런히 꼽혀 있는 의서들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하여 쓴 입맛을 다시며 돌아서던 장일정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문설주 위에 쓰여진 글자 때문이었다.

< 만년뇌혈곤(萬年雷血鯤) >

"만년뇌혈곤? 만년뇌혈곤…? 사부님께서 저기에 왜 저걸 써 놓으셨을까? 앗! 그렇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장일정은 이마를 치며 왜 이 생각을 못했나 싶은 표정을 지었다. 온갖 괴이한 것들을 기록해 놓은 산해경(山海經)에는 만년뇌혈곤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해 두고 있다.

< 동해 한 가운데 있는 천뢰도(天雷島)에는 뇌정(雷井)이 있다. 그 안에는 뇌곤(雷鯤)이 살고 있는데 핏빛이다. 천지간의 모든 영물 가운데 가장 양기가 강한 이것의 비늘은 어찌나 단단한지 도검으로는 손상시킬 수 없다. 집채만한 머리에 이빨 하나의 길이가 무려 삼 척이 된다. (하략) >


"맞아! 뇌곤이 있었어. 내가 왜 이 생각을 못했지? 하하! 이제 되었어. 이제 되었다고… 사부님! 고맙습니다. 이제 북명신단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하하! 하하하하!"

장일정은 너무도 기쁜 나머지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사부가 왜 화관홍선사를 잡으려 목숨을 걸었는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천뢰도는 일년 중 반 이상이 뇌성벽력으로 진동하는 곳이다. 하여 사람이 살기엔 적합하지 않아 제법 큰 섬이지만 무인도이다. 이곳에는 유난히도 벼락이 자주 떨어진다는 뇌정이 있다.

뇌정에는 뇌곤이라는 놈이 살고 있는데 뇌전에 격중 되어도 죽지 않는다고 한다. 천적이 없기에 만 년 이상을 살 수 있으며 피처럼 붉은 빛을 띄고 있어 만년뇌혈곤이라 부른다.

이놈의 주식은 천뢰도에 널려 있는 뱀이었다. 그 가운데 오보절혼사와 같은 극독을 지닌 독사들을 주로 잡아먹었다.

북의가 화관홍선사를 잡아 내단을 취한 이유는 그것을 미끼로 쓰기 위함이었다. 뇌곤의 내단은 천하에 가장 강한 양강지기가 담겨져 있기에 만년빙극설련실과 음양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북명신단은 소림의 대환단이나 무당의 태청신단조차 따를 수 없는 엄청난 신단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복용하면 천의장을 박살낸 흉수 정도는 한 손가락으로 눌러 죽일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가 될 것이다.

장일정은 장차 천하제일인, 아니 영세제일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사형! 사형! 어머! 혼자서 뭐해요? 왜 그러고 있어요?"

한참 싱글벙글하던 장일정은 호옥접의 동그래진 봉목을 보고 피식 미소를 지었다.

"어! 사매 왔어? 사숙은 어디 계셔? 좋은 소식이 있는데…"
"좋은 소식? 뭐가 좋은 소식인데요?"

호옥접은 동갑이었지만 깎듯이 말을 올렸다. 북의와 남의는 사형제지간이고, 장일정과 북의는 사제지간이다.

그녀와 남의의 관계는 조손지간이기에 엄밀히 따지면 장일정이 사숙 뻘이 된다. 하지만 비슷한 나이기에 그냥 사형이라 부르기로 하였던 것이다.

사부의 죽음 이후 며칠 동안 비탄에 잠겨 있던 장일정은 남의와 호옥접이 돌아올 즈음에 그곳으로 향하였다. 사형의 죽음을 알게 된 남의 역시 비통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는 사형의 무덤이 있는 곳에 있고 싶다하여 아예 거처를 옮긴 것이다.

"하하! 드디어 사부님의 원수를 갚을 수 있게 되었어."
"예에? 어떻게요? 무공비급이라도 발견했나요?"

"후후! 그건 아니야. 자세한 것은 가서 이야기할게. 자, 가자!"
"……?"

호옥접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장일정의 뒤를 따랐다.

"으으음!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이야기이구나. 허나 아직은 허락할 수 없구나. 너는 아직 배울 것이 많기 때문이다."

"사숙! 사매와 동행시켜 주십시오. 동해까지 가려면 무지하게 오래 걸릴 것입니다. 가고 오는 동안 사매로부터 침구술과 부술을 배우면 될 듯싶으니 허락해 주십시오."
"흐으으음! 그런 방법이 있었군. 한번 생각해 보자꾸나."

모든 이야기를 들은 남의는 북명신단만 만들어지면 천의장과 의성장의 원수를 갚고도 남을 능력이 생길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기에 반색하였다. 하지만 선뜻 허락할 수 없었다.

그것을 복용하면 능력이야 생기겠지만 여전히 무공이라곤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따라서 어떤 방법으로든 무공을 익혀야 하는 과정이 남아 있는데 자칫 마음이 급하여 사악한 마공이나 사공을 익힐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무공이 아직 무엇인지 모르는 장일정으로서는 그것을 구분할 능력이 아직은 없다. 자칫 마공이나 사공을 익혔다가 심성이 변하면 그야말로 천하를 혈세(血洗) 시킬 대마두가 탄생될 수도 있기에 쉽게 허락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편 장일정과 호옥접은 남의의 입만 바라보며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허락한다면 넓은 세상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면 또 이곳에서 썩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실 이곳의 생활에 이젠 진력이 날대로 난 상황이었기에 매일 매일이 무료하다 느껴졌던 것이다.

"사숙! 저희를 믿어 주십시오. 해내고야 말겠습니다."
"그래요. 할아버지! 가면서도 침구술과 부술은 얼마든지 익힐 수 있잖아요. 보내 주세요. 네?"
"허허허!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꾸나."

남의는 손녀와 장일정의 끈질긴 청에도 불구하고 두고보자는 말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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